[이코노미세계] 도로 확장과 가로등 설치, 배수로 정비를 요구하던 주민 간담회가 안성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정책 토론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시민들은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과 청년, 교통, 안전, 귀촌 등 지역의 중장기 과제를 제안했다. 행정의 지원을 받는 ‘정책 수혜자’에서 지역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정책 설계자’로 시민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3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주 동안 진행한 ‘시민과의 대화’를 모두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민선 9기 시정 방향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15개 읍·면·동을 비롯해 농민·노동자·공동주택 관계자 등과 모두 18차례에 걸쳐 정책공감토크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의 핵심은 단순한 민원 접수를 넘어 시민과 행정이 지역 문제의 해법을 함께 모색했다는 점이다. 학생과 학부모, 청년, 귀촌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면서 토론 의제도 생활민원에서 안성의 미래를 결정할 정책 과제로 넓어졌다.
김 시장은 “민선 9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민 여러분께 시정 방향을 설명하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시민들이 시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하는 주민 간담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도로와 주차장, 가로등, 배수시설 등 생활 기반 시설에 관한 요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민의 일상과 직접 연결된 문제인 만큼 해결이 시급하지만, 간담회가 개별 민원을 전달하는 창구에 머무르면 지역 전체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안성시의 정책공감토크 역시 처음에는 도로를 넓혀 달라거나 가로등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 배수로를 정비해 달라는 민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행사가 이어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안성시의 설명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안전한 통학 환경과 교육 여건을 이야기하고, 청년들은 자신들이 안성에 머물며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했다. 귀촌인들도 농촌에서 생활하며 느낀 문제와 지역 공동체의 발전 방안을 토론 테이블에 올렸다.
시민들의 관심이 ‘내 집 앞 불편’에서 ‘우리 지역의 미래’로 확장된 셈이다. 생활민원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별 민원을 지역 전체의 정책과 연결해 바라보려는 변화가 나타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도로 확장 요구는 단순히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주변 상권과 주거 환경, 보행자 안전, 학생들의 통학로, 고령자의 이동권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가로등 설치와 배수로 정비 역시 주민 안전과 재난 예방, 농촌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정책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 시장은 이번 정책공감토크에서 시민들이 이 같은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민 참여의 수준이 민원을 제기하는 단계에서 정책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단계로 한 걸음 나아갔다는 평가다.
정책공감토크에서는 같은 공간을 두고도 시민마다 서로 다른 요구가 제기됐다. 차량 정체를 걱정하는 주민은 원활한 교통 흐름을 원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차량 속도를 낮추고 안전한 통학로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고령층은 어르신보호구역 확대와 보행 안전시설 설치를 필요로 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시민들은 연령과 직업, 생활환경에 따라 같은 지역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행정이 어느 하나의 요구만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시민의 불편이나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 시장은 “교통 흐름을 걱정하는 어른도 있고, 안전한 통학길을 바라는 학생도 있다”며 “어르신보호구역이 필요하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포함해 서로 다른 목소리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했다.
결국 지방행정의 과제는 다양한 요구 가운데 무엇을 먼저 추진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있다. 예산과 행정력은 한정돼 있어 모든 요구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의 시급성과 공익성, 수혜 범위, 안전에 미치는 영향,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충분한 설명과 숙의다. 행정은 사업을 추진하거나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시민은 자신과 다른 처지에 놓인 이웃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정책공감토크가 단순한 민원 전달 창구를 넘어 시민들 사이의 이해와 합의를 넓히는 공론장이 돼야 하는 이유다.
김 시장도 “정책공감토크는 누구의 의견이 맞고 틀린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면서 안성의 우선순위를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민과의 대화에서는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한 민원도 다시 제기됐다. 주민 입장에서는 생활 불편을 반복해서 호소했는데도 변화가 없으면 행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행정기관은 법령과 토지 소유권, 사업비, 관계기관 협의 등 여러 제약 때문에 주민 요구를 바로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행정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을 단순히 ‘불가능하다’고 통보하는 데서 그칠 때 발생한다. 즉각적인 해결이 어렵더라도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대안을 검토하며, 추진 과정과 한계를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보완책과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사업을 구분해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시장은 장기 미해결 민원을 접할 때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모든 문제에 당장 해결을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그렇다고 ‘안 된다’는 말로 끝낼 수는 없다”며 “관련 부서와 함께 현장을 다시 찾고 주민들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끝까지 고민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는 민원 처리의 성패를 당장의 해결 여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해결이 어려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가능한 대안을 함께 찾는 과정 자체가 시민 신뢰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의견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후속 절차가 중요하다. 현장에서 접수한 제안을 담당 부서별로 분류하고, 법적·재정적 타당성과 사업의 시급성을 검토해야 한다.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사업, 추가 협의가 필요한 사업, 중장기 계획에 반영할 사업을 구분해 시민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는 체계도 요구된다.
정책공감토크의 실질적인 성과는 행사 횟수나 참석 인원이 아니라 시민의 의견이 정책과 예산에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현장에서 나온 제안이 담당 부서에 전달되지 않거나 검토 결과가 시민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면 시민과의 대화는 일회성 행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 편성은 시민 참여가 실제 행정으로 연결되는 핵심 단계다. 시민이 제안한 사업 가운데 타당성과 공익성이 인정되는 사업은 내년도 본예산이나 중장기 투자계획에 반영하고, 당장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은 단계별 이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 사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재정 여건 때문인지, 법적 제한이나 부지 확보 문제가 있는지, 상위 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한지 등을 알기 쉽게 공개해야 한다. 이 같은 환류 과정이 정착돼야 시민도 자신의 제안이 어떻게 검토됐는지 확인하고 다음 논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김 시장은 “보내주신 의견 하나하나를 꼼꼼히 검토해 내년도 정책과 예산에 최대한 담아내겠다”며 “앞으로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답을 찾는 시정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주 동안 18곳을 찾은 이번 정책공감토크는 민선 9기 초반 안성시정의 방향을 시민에게 설명하고, 지역별·계층별 요구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읍·면·동 주민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 공동주택 주민을 별도로 만나 생활환경과 이해관계가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시민 참여 행정이 지속되려면 정기적인 대화와 함께 상시적인 의견 수렴 구조가 필요하다. 대면 행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청년과 직장인, 돌봄 종사자, 이동이 불편한 시민도 정책 제안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창구와 소규모 간담회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시민 의견을 단순히 많이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조정하고, 시급성과 공공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세우며, 결정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민에게도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경청하고 지역 전체의 이익을 함께 고민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정책공감토크를 통해 확인된 변화는 시민이 더 이상 행정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은 자신의 경험과 필요를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행정은 이를 검토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과 행정의 관계가 ‘요구와 처리’에서 ‘제안과 공동 해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김 시장은 “시민들 곁으로 더 가까이 가야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를 정책과 예산, 사업 일정으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안성시가 이번 대화를 일회성 소통 행사가 아닌 상시적인 시민 참여 행정의 출발점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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