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선박 유치 확대하고 친환경 항만 운영 기반 강화
[이코노미세계] 표준 승용차 약 9300대를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운반선이 평택항에 처음 입항했다. 세계 해운업계가 선박 대형화와 친환경 연료 전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수출입 물동량 1위 항만인 평택항도 변화하는 해상운송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이번 입항은 단순히 대형 자동차 운반선 한 척이 평택항을 찾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완성차 수출입 거점으로 성장한 평택항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글로벌 자동차 물류망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앞으로 친환경 선박의 운항 확대에 맞춰 항만시설과 연료 공급 여건, 입출항 지원체계를 얼마나 신속하게 갖추느냐가 평택항의 경쟁력을 가를 전망이다.
경기평택항만공사는 글로벌 자동차 운반선 전문 선사인 유코카캐리어스㈜가 운항하는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운반선 ‘아틱 테른(Arctic Tern)’이 지난 22일 평택항 국제자동차부두에 처음 입항했다고 밝혔다.
아틱 테른은 세계적인 자동차 운송·물류기업인 왈레니우스 빌헬름센(Wallenius Wilhelmsen)이 새롭게 도입한 차세대 자동차 운반선 시리즈 ‘셰이퍼 클래스(Shaper Class)’의 첫 번째 선박이다. 유코카캐리어스는 이 선박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자동차 운송 항로에 투입한다.
아틱 테른은 길이 228m, 폭 38m, 총톤수 8만6200톤에 달한다. 재화중량톤수는 1만5750톤이며, 자동차 적재능력은 9300CEU(Car Equivalent Unit)다. CEU는 자동차 운반선의 적재능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아틱 테른은 표준 승용차를 기준으로 약 9300대를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다.
자동차 운반선의 대형화는 해운·물류업계의 효율성 경쟁과 맞닿아 있다. 한 번의 운항으로 더 많은 차량을 운송하면 차량 한 대당 물류비를 낮추고 항로 운영의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과 소비시장이 세계 각지로 확대되면서 완성차 업체와 전문 선사들은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대형 선박과 항만을 요구하고 있다.
대형 자동차 운반선의 운항이 늘어나면 항만에도 더 높은 수준의 처리 역량이 필요하다.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는 안벽과 수심은 물론, 짧은 시간에 많은 차량을 선적·하역할 수 있는 작업공간과 운영체계를 갖춰야 한다. 배후 야적장과 육상 운송망의 연계성도 항만 경쟁력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꼽힌다.
아틱 테른의 평택항 기항은 이 같은 세계 자동차 물류시장의 변화 속에서 이뤄졌다. 경기평택항만공사는 글로벌 선사가 차세대 주력 선박으로 도입한 대형 자동차 운반선이 평택항을 찾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평택항이 국내 완성차 수출입 항만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자동차 물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평택항은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수출입 항만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처리한 자동차는 총 161만6086대로, 전국 항만 가운데 자동차 수출입 물동량 1위를 기록했다.
평택항에서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의 수출 차량과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입 자동차 물량을 함께 처리하고 있다. 국내 생산기지에서 출고한 차량을 해외시장으로 내보내는 수출 전진기지인 동시에, 수입 차량이 국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관문 역할도 맡고 있는 셈이다.
평택항의 강점은 자동차 물량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두시설에 있다. 자동차를 취급하는 동부두 2∼5번 선석의 안벽 길이는 모두 1110m다. 이들 선석에는 3만∼5만 재화중량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다. 자동차 운반선 여러 척이 입출항하는 상황에 대응하고 대규모 차량을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게 공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평택항은 수도권과 중부권의 자동차 생산·소비시장에 접근하기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다. 항만의 경쟁력이 단순한 선적·하역 능력에서 배후 산업 및 육상 물류망과의 연결성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자동차 물동량 전국 1위라는 실적은 글로벌 선사를 유치하는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아틱 테른이 평택항에 처음 입항한 것도 평택항이 축적해 온 자동차 물류 처리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선사 입장에서는 대형 선박을 안전하게 접안시키고 수천 대의 차량을 계획대로 처리할 수 있는 항만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정기적인 기항으로 이어지려면 선박 운항 일정과 하역 작업, 차량 반출입 과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아틱 테른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친환경 연료 전환에 대비한 추진체계를 갖췄다는 점이다. 이 선박에는 기존 선박연료와 메탄올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 추진체계가 적용됐다.
메탄올은 황 성분이 거의 없어 기존 선박연료와 비교해 황산화물과 입자상물질 등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체연료다. 재생에너지나 바이오매스 등을 활용해 생산한 친환경 메탄올을 사용하면 연료 생산부터 선박 운항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다.
아틱 테른은 현재의 연료 공급 여건에 따라 기존 연료를 사용하면서도 향후 친환경 메탄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친환경 연료의 생산량과 공급망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장기적인 탄소 감축에도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해운산업의 친환경 전환은 선박만 바꾼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선박이 실제로 운항하려면 항만에도 안전한 연료 공급과 저장, 선박 입출항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친환경 선박의 취항 확대는 항만에 새로운 화물을 가져오는 동시에 시설 투자와 운영체계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겨주는 변화이기도 하다.
평택항으로서는 자동차 물동량 처리 능력에 더해 친환경 선박을 지원하는 항만 기반을 확보해야 하는 시점이다. 친환경 자동차 운반선의 입항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항로 유치로 연결되려면 글로벌 선사들이 실제 운항 과정에서 겪는 불편과 제도적 애로사항을 줄이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경기평택항만공사는 글로벌 자동차 운반선사와의 협력망을 강화하고 친환경 항만 전환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선사와 지속해서 소통하며 입출항 및 화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이어갈 계획이다.
아틱 테른을 운항하는 유코카캐리어스는 왈레니우스 빌헬름센이 지분 80%, 현대자동차그룹이 20%를 보유한 자동차 운송 전문 선사다. 자동차뿐 아니라 건설기계 등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거나 바퀴를 이용해 선박에 싣고 내릴 수 있는 화물을 세계 각지로 운송하고 있다.
유코카캐리어스와 평택항의 협력 확대는 국내 완성차 수출 물류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자동차산업은 생산뿐 아니라 항만까지의 육상운송과 선적, 해상운송, 해외 현지 인도 등이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한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지면 수출 일정과 비용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동차 물동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평택항도 기존 성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동차 운반선의 대형화에 맞춘 접안 능력과 하역 효율을 지속해서 점검하고, 수출입 차량을 보관할 공간과 육상 운송체계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이 늘어날 경우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항만 운영 전략 역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선사와 화주가 항만을 선택하는 기준은 실제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다. 입출항 절차가 신속한지, 차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 각종 규제와 행정절차로 인한 지연을 줄일 수 있는지가 항만의 재기항 여부를 좌우한다. 공사가 선사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자비에 르루아(Xavier Leroi) 유코카캐리어스 대표이사는 “평택항은 글로벌 자동차 물류의 중심이자 유코카캐리어스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자동차 제조사와 물류 고객에게 더욱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금규 경기평택항만공사 사장 직무대행은 “평택항 첫 입항은 자동차 해상운송 시장의 대형화와 친환경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평택항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글로벌 선사의 차세대 선박과 자동차 물동량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친환경 선박의 입출항을 지원할 수 있는 항만 운영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틱 테른의 첫 입항은 자동차 물동량 전국 1위인 평택항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기존의 물동량 경쟁을 넘어 대형 선박을 안정적으로 수용하고 친환경 연료 전환까지 지원하는 항만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항이 이번 입항을 정기적인 항로와 물동량 확대로 연결한다면 국내 자동차 수출입 거점이라는 기존 위상도 한층 공고해질 수 있다. 또 선박 대형화와 탈탄소 전환이라는 세계 해운시장의 흐름 속에서 평택항이 ‘글로벌 자동차 물류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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