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국내 반도체 산업이 초격차 경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첨단 공정 확대와 함께 환경 부담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생산체계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반도체 공정수 재이용 확대를 권고하면서 산업 경쟁력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행정권고를 실시했다. 권고의 핵심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사용되는 공정수의 활용 비율을 기존 계획보다 높이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 수준으로 공정수 재사용 횟수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번 권고는 행정절차법 제48조에 근거한 행정권고 형식으로 추진됐다. 강제성이 있는 행정명령은 아니지만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정책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물 집약 산업이다. 웨이퍼 세정과 화학공정 등 대부분의 제조 과정에서 초순수가 대량으로 사용된다. 생산 규모가 확대될수록 물 사용량 역시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될 경우 막대한 공업용수 확보가 지역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물 공급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한 공정수를 반복적으로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행정권고 역시 이러한 정책 방향의 연장선에 있다.
경기도가 제시한 핵심 모델은 대만 TSMC다. TSMC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수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 물 사용 효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경기도 역시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수준의 재이용 체계를 구축할 경우 물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폐수 발생량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수 재사용 확대는 단순한 물 절약 차원을 넘어 기업의 ESG 경영 강화와 탄소중립 정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규 용수 확보 비용 절감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번 권고에는 지역사회의 환경 우려도 반영됐다. 현재 안성시에서는 산업단지 폐수 방류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단지가 확대되면서 생산시설 증가에 따른 폐수 처리 문제가 지역사회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경기도는 공정수 재사용 비율을 높이면 신규 취수량과 폐수 방류량을 동시에 줄일 수 있어 지역 주민들의 환경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환경과 산업을 대립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기술혁신을 통해 상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추 지사는 이번 권고와 함께 "31개 시·군에 골고루 공정 혁신과 포용의 도정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특정 지역만 산업 발전의 혜택과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아니라 도내 전체가 균형 있게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기도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이지만 산업 발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문제 역시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경기도의 기본 방향이다.
행정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있는 처분은 아니다. 따라서 실제 효과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에 달려 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도 공정수 재활용 확대는 추가 설비 투자와 운영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만큼 경제성과 기술적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ESG 경영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친환경 생산체계 구축은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행정권고는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첨단산업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과 기후위기 대응을 동시에 추진하는 가운데 공정수 재이용 확대는 산업 경쟁력과 환경 보호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정책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도의 권고를 어떻게 수용할지,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물 순환형 산업단지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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