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6곳 확대 이어 노인보호구역까지 적용 추진
스마트도시의 핵심은 첨단기술이 아닌 시민 안전이라는 메시지
[이코노미세계] 횡단보도에 진입한 어린이가 보행신호가 끝나기 전 도로를 모두 건너지 못한다. 초록불이 깜빡이기 시작하자 아이는 마음이 급해지고, 정지선 앞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 운전자도 긴장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보행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시민에게 짧은 횡단보도 신호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용인특례시가 이 같은 보행자의 불안과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마트 횡단보도를 확대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미처 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AI 카메라가 상황을 감지하고 보행신호 시간을 자동으로 늘려주는 방식이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초등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AI 스마트 횡단보도 17곳을 추가 설치한다고 밝혔다. 현재 용인시는 초등학교 주변 29곳에서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추가 설치가 완료되면 용인시의 AI 스마트 횡단보도는 모두 46곳으로 늘어난다.
AI 시스템이 보행신호를 연장할 때는 전광판과 음성안내 장치를 통해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신호 연장 상황을 알려준다. 보행자는 신호가 갑자기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덜고, 운전자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남아 있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단순히 횡단보도 신호 시간을 일률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보행자의 움직임을 확인해 필요한 경우에만 시간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교통신호 운영방식과 차이가 있다. 교통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보행 속도가 느린 교통약자의 안전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기존 횡단보도 신호는 도로 폭과 차량 통행량, 일반적인 보행 속도 등을 기준으로 시간을 설정한다. 그러나 같은 횡단보도라도 이용자의 연령과 신체 조건에 따라 실제 횡단에 필요한 시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성인에게 충분한 시간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부족할 수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이동하는 어린이 집단이나 가방과 준비물을 든 학생, 휠체어나 지팡이를 사용하는 시민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보행신호가 종료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횡단보도 중간에 사람이 남아 있어도 차량 신호가 바뀌면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늦게 발견하거나 보행자가 차량을 피하기 위해 갑자기 뛰는 과정에서 사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AI 스마트 횡단보도는 이러한 문제를 ‘사람 중심’의 신호 운영으로 보완한다. AI 카메라가 횡단보도와 주변 상황을 살피다가 보행자가 도로에 남아 있다고 판단하면 보행신호를 연장한다. 정해진 시간에 보행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의 실제 이동 상황에 맞춰 신호가 조정되는 것이다.
이는 도시 교통정책의 기준이 차량 흐름에서 보행자 안전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 교통정책이 차량 정체 해소와 통행 속도 향상에 무게를 뒀다면, 최근에는 어린이와 노인 등 교통약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용인시의 이번 확대 계획도 이 같은 정책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기존에 운영 중인 29곳에 17곳을 더해 총 46곳으로 늘리는 것은 AI 스마트 횡단보도를 일회성 시범사업이 아니라 생활권 교통안전 시설로 정착시키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용인시가 AI 스마트 횡단보도를 초등학교 주변에 우선 설치하는 이유는 어린이보호구역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 앞 도로는 등교와 하교 시간에 학생과 학부모, 학원 차량, 일반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는 성인보다 키가 작아 불법 주정차 차량이나 대형 차량 주변에서 운전자의 시야에 늦게 들어올 수 있다.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판단하는 능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주변 상황에 집중하지 못한 채 횡단보도에 진입하는 경우도 있다.
운전자 역시 학교 앞에서는 여러 방향에서 움직이는 어린이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 횡단보도 신호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뒤늦게 도로를 건너는 어린이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AI 스마트 횡단보도는 이러한 돌발 상황을 줄이는 보조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남아 있는 경우 신호를 연장하고, 전광판과 음성으로 그 사실을 알림으로써 운전자의 주의를 다시 환기하기 때문이다.
전광판은 차량 운전자에게 보행자가 횡단 중이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음성안내는 보행자에게 신호 연장 사실을 알려 갑자기 뛰거나 당황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운전자와 보행자 양쪽에 동시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교통안전시설은 설치 자체보다 이용자가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전자가 신호 연장의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단순한 신호 지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전광판을 통해 보행자 보호를 위한 연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정지 상태를 유지하고 주변을 살필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행자도 음성안내를 통해 자신이 안전하게 횡단할 시간이 확보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신호 종료에 쫓겨 무리하게 뛰는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I 스마트 횡단보도의 핵심은 첨단기술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위험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카메라와 신호제어 장치, 전광판, 음성안내 시스템이 하나의 체계로 작동해야 실제 안전 효과를 낼 수 있다.
AI 카메라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남아 있는지를 정확히 식별해야 한다. 비나 눈이 내리는 날, 야간이나 역광 상황, 여러 명이 동시에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낙엽이나 그림자, 차량 불빛 등을 사람으로 잘못 인식해 불필요하게 신호를 연장하는 일이 반복되면 운전자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보행자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면 시스템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따라서 설치 이후에도 감지 정확도와 신호 연장 횟수, 장비 고장 여부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신호 연장 시간도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짧으면 보행자를 보호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길면 차량 정체와 운전자 불편이 커질 수 있다. 횡단보도의 길이와 도로 구조, 보행자 이용량, 인근 학교의 등하교 시간 등을 반영해 장소별로 적정 시간을 설정해야 한다.
AI 시스템이 모든 위험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 주정차, 과속, 신호위반 등이 이어진다면 스마트 횡단보도만으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차량 속도 저감시설과 단속카메라, 방호울타리, 보도 정비, 통학로 개선 등 다른 교통안전 대책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학교와 학부모, 주민을 대상으로 한 안내도 필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이 설치돼도 보행자와 운전자가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학교 안전교육과 연계해 음성안내가 나올 때의 행동요령, 신호가 연장되더라도 주변 차량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 등을 알릴 필요가 있다.
용인시는 AI 스마트 횡단보도 설치 대상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노인보호구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요양원과 경로당, 노인복지관 주변 등 노인보호구역 10곳에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한 예산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인보호구역 확대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생활밀착형 교통정책이라는 의미가 있다. 고령자는 근력과 균형감각이 떨어져 횡단 속도가 느릴 수 있다. 신호가 끝나기 전에 길을 건너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 넘어지거나 방향을 잃을 위험도 있다.
노인복지관과 경로당, 요양원 주변은 고령자의 통행이 집중되는 곳이다. 지팡이나 보행기를 이용하는 시민, 보호자와 함께 이동하는 고령자도 많다. 횡단보도 신호가 일반 성인의 보행 속도에 맞춰져 있다면 실제 이용자는 불편과 위험을 동시에 겪을 수 있다.
AI 스마트 횡단보도가 노인보호구역에 설치되면 보행자의 이동 상황에 따라 신호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횡단 중인 노인이 도로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시간을 확보해 주고, 운전자에게도 보행자 보호 필요성을 알릴 수 있다.
다만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보다 운전자의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제한속도와 단속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위치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AI 횡단보도 설치와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와 노면 표시를 정비하고 운전자 대상 홍보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시는 향후 예산 편성과 설치 대상지 선정 과정에서 실제 고령자 통행량과 사고 위험, 도로 폭, 주변 시설 이용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단순히 시설 주변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상지를 정하기보다 위험도가 높은 장소를 우선 선정해야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용인시는 이미 초등학교 주변 29곳에서 AI 스마트 횡단보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 운영 경험은 앞으로 17곳을 추가 설치하고 노인보호구역까지 확대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우선 기존 설치지역에서 보행신호가 얼마나 자주 연장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대별 연장 횟수와 평균 연장 시간, 어린이 이용이 많은 등하교 시간의 작동 현황 등을 분석하면 실제 수요를 파악할 수 있다.
운전자와 학부모, 학교 관계자의 의견도 중요하다. 시스템 설치 이후 횡단보도 이용이 편리해졌는지, 전광판과 음성안내가 잘 인식되는지, 차량 정체나 소음 등 불편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같은 운영자료가 공개된다면 시민의 정책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 몇 곳을 설치했는지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보행안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에는 설치 대수보다 운영 성과가 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 AI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보행자 대기시간과 횡단 안전성이 개선됐는지, 운전자의 정지선 준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장비 유지·관리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교통안전시설은 한 번 설치하면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카메라 렌즈 오염이나 통신장애, 전광판 고장, 음성안내 불량이 발생하면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정기 점검과 신속한 고장 신고·복구 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시민들이 장비 이상을 발견했을 때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안내번호나 QR코드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행정기관의 정기 점검만으로 모든 고장을 즉시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시민 참여형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어 AI와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스마트도시 정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다. 교통량을 분석해 신호체계를 조정하거나 주차 가능 공간을 안내하고, 재난 상황을 감지하는 기술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이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스마트도시 정책은 일상에서 위험과 불편을 줄여주는 기술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와 노인의 발걸음을 감지해 신호를 늘려주는 시스템은 첨단기술이 시민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의 수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가다. 보행 속도가 빠른 시민에게 횡단보도 신호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에게 몇 초의 신호 연장은 안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용인시가 AI 스마트 횡단보도를 기존 29곳에서 46곳으로 확대하고, 노인보호구역 10곳 설치까지 추진하는 것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시작한 정책이 고령자 생활권으로 넓어지면 세대별 특성을 반영한 보행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설치지역을 합리적으로 선정하고, AI 감지 정확도를 높이며, 운영성과를 지속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불법 주정차와 과속 단속, 통학로 정비 등 기존 교통안전정책과의 연계도 필요하다.
AI 스마트 횡단보도가 성공적인 교통안전 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곳에 설치했는가’보다 ‘보행자가 얼마나 안전해졌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시민의 발걸음을 기다려 주는 횡단보도는 단순한 첨단시설을 넘어 도시가 교통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용인시의 AI 스마트 횡단보도 확대가 어린이와 노인 모두가 안심하고 길을 건널 수 있는 보행환경 조성으로 이어질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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