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기준을 '약자 보호'에 둔 민선 9기 노동정책 본격 추진
[이코노미세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던 간호사가 끝내 세상을 떠난 사건이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노동인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개인의 비극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은 지방정부의 노동정책 전반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주의 한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던 간호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은 힘 있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원칙이 아니라 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도 부당함을 말할 수 있고, 그 목소리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입장 표명은 단순한 애도의 메시지를 넘어 노동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기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세 가지 핵심 대책을 즉시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기관 내 직장문화 개선부터 노동권 보호체계 강화, 지방노동감독 기능 확대까지 노동환경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이다.
가장 먼저 추진되는 것은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다. 병원 조직은 강한 위계질서와 교대근무 체계, 높은 업무 강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고위험 노동환경으로 꼽힌다. 특히 의료현장의 괴롭힘은 업무 특성상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장기간 고통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도는 익명 의견수렴과 현장 면담을 병행해 조직 내부에 숨어 있는 문제까지 폭넓게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신고된 사례만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문화 전반을 진단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건 발생 이후 사후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계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가해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와 관리체계의 문제인 만큼 지속적인 점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두 번째 대책은 마을노무사를 활용한 노동권 보호 강화다. 경기도는 도내 120여 명의 마을노무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보다 쉽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임금체불과 부당해고는 물론 근로계약 분쟁,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포함한다. 특히 무료 상담과 권리구제 절차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법은 복잡한 절차와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영세사업장 노동자나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마을노무사 제도는 이러한 제도적 장벽을 낮춰 노동자가 보다 쉽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노동복지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노동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담과 권리구제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가장 주목되는 정책은 지방노동감독관 조직 신설이다. 경기도는 총 562명 규모의 지방노동감독관 전담 조직을 순차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오는 2027년 상반기부터는 30인 미만 사업장과 취약 노동현장을 우선 대상으로 임금체불과 부당한 근로조건, 산업안전 위반,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집중 점검하게 된다. 소규모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노동감독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경우도 많고, 사업장 특성상 노동관계법 위반이 장기간 방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도는 이러한 노동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예방 중심의 감독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행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정책과 차별성을 갖는 대목이다.
이번 정책은 단순히 특정 사건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민선 9기 경기도가 지향하는 노동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추 지사는 "일터에서 누구도 괴롭힘과 부당함을 홀로 견디지 않게 하는 것이 민선 9기 경기도가 말하는 공정"이라며 "일하는 사람이 존엄을 잃지 않는 경기도, 부당함을 말하면 보호받는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공정의 기준을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장에 두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지역 여론들도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조직문화와 노동환경 전반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피해자 보호와 함께 예방체계 구축, 신속한 조사,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기도의 종합대책 역시 이러한 방향에 맞춰 예방과 조사, 상담, 감독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제도 도입 자체보다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되느냐에 달려 있다.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조사체계, 피해자 보호장치, 신속한 권리구제, 지속적인 감독이 함께 이뤄질 때 비로소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더 이상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하느냐가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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