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남양주시가 추진 9년 만에 유니세프(UNICEF)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시점만 놓고 보면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22번째로 다소 늦었다. 그러나 남양주시는 이번 인증을 사업의 완성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인증 현판을 내거는 데 머물지 않고 아동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생활권 곳곳에서 아동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민선 9기에는 아동참여위원회의 외연을 읍·면·동 단위까지 넓히고, 아동과 부모의 목소리가 시정에 반영되는 소통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아동친화도시를 노인·여성·장애인 친화정책과 연계해 모든 세대와 계층이 함께 살아가기 좋은 도시로 확장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최현덕 남양주시장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소식을 알렸다. 인증 현판 제막식에는 초·중·고교 학생들로 구성된 남양주시 아동참여위원회 위원과 학부모, 시의원 등이 참석해 인증 획득을 축하했다.
최 시장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시작한 지 꼭 9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며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밝혔다.
남양주시의 아동친화도시 조성은 최 시장이 과거 남양주시 부시장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출발했다. 당시 최 시장은 아동의 권리를 도시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공직자들에게 인증 추진을 독려했고, 시는 이를 뒷받침할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조례 제정 이후 실제 인증에 이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 사정으로 인증 절차가 지연되면서 남양주시의 인증 순서는 경기도 내 22번째, 전국적으로도 중후반에 해당하게 됐다.
통상 아동친화도시 인증은 조례 하나를 제정하거나 특정 시설을 확충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정 전반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아동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아동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남양주시가 9년에 걸친 준비 끝에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아동을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기존 행정에서 벗어나,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는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인증 획득이 곧 아동친화도시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선언과 제도가 실제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이들이 통학로와 공원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충분한 놀이와 휴식의 기회를 누리는지, 자신의 의견을 행정에 전달할 통로가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최 시장이 인증 직후 공직자들에게 민선 9기 4년간의 큰 그림과 단계별 이행계획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증을 일회성 성과로 소비하지 않고 향후 4년간 추진할 아동정책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양주시가 제시한 아동친화도시 정책의 핵심은 아동의 역할을 바꾸는 데 있다. 아동을 행정이 돌봐야 할 수동적인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정책 주체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는 아동참여위원회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의 참여 구조를 읍·면·동 생활권 단위까지 넓혀 더 많은 아동이 지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위원 수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아동과 행정이 주기적으로 만나는 소통 체계를 마련하고, 제안된 의견이 실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운영의 내실도 높여야 한다.
아동의 생활 여건과 요구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신도시 지역에서는 과밀학급이나 통학 안전, 놀이공간 부족이 주요 현안이 될 수 있다. 농촌과 외곽 지역에서는 대중교통과 교육·문화시설 접근성이 더 절실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읍·면·동별 참여위원 확대는 이처럼 서로 다른 생활권의 목소리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동 참여가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책 결정 과정과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회의에서 제안된 의견을 담당 부서가 검토하고, 수용 여부와 추진 상황을 아동에게 설명하는 환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채택하기 어려운 의견에 대해서도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야 참여 경험이 행정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회의 진행 방식도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행정용어나 복잡한 문서 중심의 회의에서 벗어나 현장 방문과 토론,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연령별 이해도와 관심 분야를 고려해 참여 방식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아동이 직접 통학로의 위험 요소를 살피거나 공원과 놀이터의 불편 사항을 조사하고, 개선안을 제안하도록 한다면 정책의 현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행정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를 실제 이용자인 아동의 시선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는 아동 참여 확대와 함께 부모와의 소통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로 이어지려면 보호자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아동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이 자신의 생각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공동체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에게도 아동 권리와 참여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려를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와의 소통 확대는 정책의 사각지대를 발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돌봄 공백이나 교육·문화시설 이용의 어려움, 장애아동과 다문화가정 아동이 겪는 불편 등은 가정과의 긴밀한 소통이 있어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아동친화정책의 범위 역시 아동복지 부서에만 한정돼서는 안 된다. 도시계획과 교통, 공원, 교육, 문화, 체육, 보건, 안전 등 시정의 거의 모든 분야가 아동의 삶과 연결돼 있다.
신규 도시개발 단계에서부터 학교와 공원, 보행로의 배치를 아동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어린이보호구역과 통학로의 위험 요인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 공공시설을 조성할 때도 아동의 접근성과 이용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 아동 관련 예산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 분석하고, 정책 추진 전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평가 기준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를 실행하려면 부서 간 협업을 총괄할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담당 부서만의 사업으로 접근하면 아동친화도시 정책이 일부 복지사업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주요 정책을 수립할 때 아동에게 미칠 영향을 살피고, 부서별 추진 실적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아동친화도시의 성패는 인증 현판이 아니라 아동이 체감하는 일상의 변화로 평가받는다. 통학로가 더 안전해졌는지, 집 가까운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지, 문화와 체육 활동을 누릴 기회가 늘었는지, 도움이 필요할 때 쉽게 지원받을 수 있는지가 실질적인 판단 기준이다.
최 시장은 공직자들에게 “아동이 안심하고 마음껏 뛰어놀며 행복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이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언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사업과 일정, 예산으로 연결해야 한다.
우선 지역별 아동 생활환경을 면밀히 조사하고 안전·돌봄·놀이·교육·건강·참여 분야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과제와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기반시설 사업을 구분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책 성과를 수치와 사례로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동이 제안한 의견 가운데 몇 건이 정책에 반영됐는지, 통학로와 놀이시설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지역별 이용 격차는 줄었는지 등을 시민에게 정기적으로 알려야 한다. 아동과 부모가 정책을 평가하고 보완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남양주시는 넓은 행정구역 안에 도시와 농촌, 신도시와 구도심이 공존한다. 지역별 인구구조와 생활환경의 차이도 크다. 획일적인 사업을 모든 지역에 적용하기보다는 생활권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아동 수가 많거나 급격히 증가하는 지역에는 학교와 돌봄시설, 공원 등 생활 기반시설을 적기에 확충해야 한다. 반면 아동 인구가 적은 외곽 지역에는 교통과 이동 지원을 강화해 교육·문화 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양주시의 구상은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그치지 않는다. 최 시장은 민선 9기가 지향하는 ‘시민주권시대’에 맞춰 노인친화도시와 여성친화도시, 장애인친화도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아동과 노인, 여성, 장애인을 각각 분리된 정책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통합적 접근이다. 실제로 안전한 보행로와 편리한 대중교통, 접근성이 높은 공공시설은 특정 계층에만 필요한 정책이 아니다. 아동에게 안전한 길은 노인과 장애인에게도 안전하고, 유모차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공간은 휠체어 이용자에게도 편리하다.
각종 친화도시 정책을 서로 연계하면 사업의 중복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공공시설을 조성하거나 도시 공간을 정비할 때 아동·노인·여성·장애인의 요구를 함께 검토하는 통합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다만 여러 친화도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수록 목표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증 획득 자체가 행정의 최종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생활 속에서 체감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9년 만에 받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은 남양주시에 값진 성과이자 무거운 과제를 안겼다. 늦게 출발한 만큼 다른 도시의 경험을 면밀히 살펴 시행착오를 줄이고, 남양주만의 생활권별 정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인증 현판을 내건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아동의 제안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약속한 사업을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는지, 지역 간 격차를 어떻게 줄이는지에 따라 인증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아동이 자신의 문제를 말하고 행정이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도시, 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도시, 모든 세대와 계층이 존중받는 도시. 남양주시가 9년의 기다림 끝에 받은 인증을 시민의 일상 변화로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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