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체험 확대하며 생활 속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이코노미세계] 탈을 쓰면 신분도, 나이도, 직업도 사라진다. 풍자와 해학으로 권력을 비틀고, 웃음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온 우리 전통 탈춤이 남양주에서 다시 살아났다.
남양주시는 27일 남양주 궁집에서 '2026 남양주 퇴계원산대놀이 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의 대표 무형문화유산을 시민과 함께 계승하고, 문화도시 남양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올해 축제는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가 주최하고 남양주시가 함께 지원해 마련됐다.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 참여형 문화축제'라는 점이다.
과거 전통예술 공연이 단순히 관람 중심이었다면 이번 축제는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체험하며 전통문화를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행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종이 탈 만들기, 퇴계원산대놀이 키링 제작, 즉석사진관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아이들은 직접 탈을 만들며 전통문화에 흥미를 느꼈고 부모들은 가족과 함께 문화유산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전통문화가 더 이상 '옛것'이 아니라 세대가 함께 즐기는 생활문화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본격적인 공연은 퇴뫼산놀이패의 흥겨운 길놀이로 시작됐다. 이어 다산국악예술단과 주현선 국악예술단이 식전 공연을 펼치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행사의 백미는 '제35회 퇴계원산대놀이 정기공연'이었다. 전승자들은 익살스러운 재담과 풍자, 신명 나는 춤사위를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무대가 절정에 이르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고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웃고 어우러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전통 탈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 '공동체성'이 그대로 재현된 순간이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전통 탈춤 가운데 하나다.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전승돼 왔으며, 서민들의 시선으로 권력과 양반사회를 풍자하는 해학이 특징이다.
문화재적 가치도 높다.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됐고, 2022년에는 '한국의 탈춤'의 한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단순히 지역의 문화가 아니라 세계가 보존해야 할 인류 공동의 문화자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어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는 보존보다 전승에 있다. 건축물은 형태를 유지하면 되지만 공연예술은 사람이 직접 배우고 익혀야만 명맥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역시 이러한 철학 아래 정기공연과 전수교육, 각종 체험사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역 청소년들에게는 전통예술 교육의 장이 되고, 시민들에게는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며 세대 간 문화적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축제가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평내동 주민자치회와 마을미디어 '마방', 산대지기 등 지역 단체들이 행사 운영과 홍보에 함께하며 축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지방정부와 문화예술단체, 주민 공동체가 협력하는 새로운 문화 거버넌스 사례로 평가받는다.
문화는 행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들고 즐길 때 비로소 지역의 문화자산은 살아있는 콘텐츠가 된다.
이번 공연이 열린 남양주 궁집은 역사적 공간성과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장소다. 오랜 세월의 시간을 품은 공간에서 펼쳐진 탈춤 공연은 현대식 공연장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선사했다.
전통 건축과 국악, 탈춤이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지며 관람객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문화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문화유산과 문화재 공간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은 지역 문화관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광덕 남양주시장은 축사를 통해 퇴계원산대놀이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주 시장은 "남양주 궁집에서 퇴계원산대놀이 정기공연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조합으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남양주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라며 "우리의 자랑이고 역사이자 문화유산인 퇴계원산대놀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며 남양주시도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전통문화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도시 브랜드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 지역만의 문화콘텐츠를 도시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획일적인 도시개발만으로는 차별화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유산은 다른 도시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퇴계원산대놀이는 남양주만이 가진 고유한 문화자산이다. 또 공연과 교육, 관광, 체험 프로그램으로 확대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문화관광 콘텐츠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번 축제는 전통문화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시민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아이들은 탈을 만들며 전통을 배우고, 청년들은 공연을 즐기며 문화의 가치를 느끼고, 어르신들은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겼다.
세대를 잇는 문화의 힘은 이처럼 현장에서 완성된다. 남양주시는 앞으로도 퇴계원산대놀이가 시민들에게 전통문화예술의 흥과 멋을 전하는 대표 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보존과 전승, 활용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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