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휴일 새벽,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 차 대신 사람의 숨소리가 도로를 채웠다. 수원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2026 경기수원 국제하프마라톤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도시의 일상을 잠시 다른 리듬으로 바꿔놓았다. 만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한 이번 대회는 러닝 인구 천만 시대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회의 열기를 전하며 참가자와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또, “5km, 10km, 그리고 하프코스까지. 거리는 달라도 도전의 크기는 같을 것”이라며 “자신만의 한계에 도전하며 힘찬 레이스를 펼친 모든 참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이어 휴일 아침 교통통제의 불편을 이해해 준 시민들과 안전한 진행을 위해 애쓴 자원봉사자, 관계자들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대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이른 아침부터 수원종합운동장 일대는 가벼운 스트레칭과 인증사진 촬영, 서로를 격려하는 참가자들의 표정으로 활기를 띠었다. 경기장 안팎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품고 출발선에 섰다. 기록 단축을 목표로 한 선수, 완주 자체가 도전인 시민, 가족과 함께 달리는 참가자까지. 각자의 속도와 사연이 한 공간에서 교차했다.
러닝은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취미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러닝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러닝 크루’, ‘마라톤 인증 문화’, ‘도심 러닝 코스’ 같은 새로운 도시 문화가 자리 잡았다. 스포츠 브랜드의 시장 확대, SNS 중심의 참여 문화,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가 맞물리며 러닝은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수원 역시 이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있다. 도시 곳곳에 조성된 산책로와 하천변 러닝 코스, 체육시설 인프라 확충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시민 생활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닝 문화의 확산은 도시 공간의 재해석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가 일시적으로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되고, 공공시설은 운동과 커뮤니티 활동의 거점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회 당일 수원종합운동장 주변 풍경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교통통제로 차량 흐름은 제한됐지만, 대신 시민과 참가자의 움직임이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냈다. 자원봉사자들은 새벽부터 안전 관리와 안내에 나섰고, 응원에 나선 가족과 지인들은 도로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휴일 아침의 불편함은 잠시 있었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 공간으로 기능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시민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한 참가자는 “달리는 동안 도시가 나를 응원하는 느낌이었다”며 “완주 순간의 성취감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두 잊게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교통통제가 불편할 수 있지만,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러닝 대회가 도시 정책과 연결되는 지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방정부는 대규모 체육 행사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브랜드 제고 효과를 기대한다. 숙박, 외식, 교통 등 연관 산업 파급 효과뿐 아니라, 도시 이미지를 ‘건강’, ‘활력’, ‘참여’의 가치와 결합시키는 전략이다.
도시사회학자들은 이를 ‘도시 경험의 재구성’으로 해석한다. 스포츠 이벤트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민들은 소비자가 아닌 참여자로 도시 공간을 경험하고, 공동체 의식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마라톤 코스는 일상의 통행로에서 기억과 감정이 축적되는 상징 공간으로 변모한다.
수원시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도시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체육 인프라 확충,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 확대, 생활체육 중심 정책 강화는 단순한 건강 증진 정책을 넘어선다. 이는 도시 경쟁력 확보 전략이자,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접근으로 읽힌다.
러닝 열풍의 또 다른 의미는 ‘개인의 서사’에 있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달리지 않는다. SNS를 통해 자신의 기록과 경험을 공유하고, 도전과 성취의 이야기를 축적한다. 이는 현대 도시인이 추구하는 자기 표현, 건강 관리, 사회적 연결 욕구가 결합된 결과다.
‘2026 경기수원 국제하프마라톤대회’ 역시 이러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기록 경쟁을 넘어, 완주와 참여 자체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대회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숨이 가쁜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피로와 함께 묘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자원봉사자들은 끝까지 박수를 보냈다. 개인의 도전이 공동체의 응원 속에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전문가들은 러닝 문화가 도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신체 건강 증진뿐 아니라 정신 건강, 사회적 유대 강화, 공공 공간 활용도 제고 등 다층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개인 중심 운동 문화가 확산되면서 러닝은 가장 접근성이 높은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과제도 존재한다. 대규모 행사에 따른 교통 혼잡, 안전 관리, 환경 정비 문제는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정부와 시민 사회가 협력 모델을 구축할 경우, 스포츠 이벤트는 도시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대회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건물과 도로, 숫자로만 정의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경험과 감정의 축적으로 도시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휴일 새벽을 가른 만여 명의 발걸음은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와 시민이 함께 만든 집단적 리듬이었고, 변화하는 도시 문화의 단면이었다. 러닝 인구 천만 시대. 도시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숨 쉬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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