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광명시가 ‘성장’의 단계를 넘어 ‘완성’의 시대로 진입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8년간 축적된 시민 중심 정책을 토대로 2026년을 도시 가치 완성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행정 주도가 아닌 시민 참여, 개발 중심이 아닌 지속가능성, 경쟁이 아닌 공존을 키워드로 내세운 이번 구상은 광명시정의 방향 전환을 넘어 지방정부 모델의 진화를 예고하는 선언으로 읽힌다.
박 시장은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광명의 변화 동력을 ‘유능한 시민’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지금의 광명은 행정이 주도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며 만들어 온 도시”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광명시는 이미 2020년 전 동 주민자치회 전환, 2025년 동장공모제 시행 등 제도적 실험을 통해 시민참여 구조를 제도화해 왔다. 8회에 걸친 500인 원탁토론회, 160여 개 시민위원회 운영 역시 형식적 참여를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 권한을 실질적으로 이양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광명시 정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시민 역량 강화에 대한 집요한 투자다. 대표적 사례가 평생학습 정책이다. 50대 시민 평생학습지원금 지급, 온라인 통합플랫폼 구축, 광명자치대학 운영은 교육 정책을 복지나 문화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도시 경쟁력 전략으로 재정의한 접근이다.
이 같은 정책은 단순한 학습 기회 확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업 구조와 고용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 개인의 역량 변화는 곧 도시의 회복력과 직결된다. 실제로 광명시는 평생학습을 시민 삶의 안정성과 연결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문제 해결 역량 강화라는 집단적 가치로 확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기후 대응 정책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읽힌다. 시민참여형 탄소중립 실천 운동 ‘1.5℃ 기후의병’ 가입자가 1만 7천 명을 넘어선 것은 행정 주도 캠페인의 성과라기보다 시민 주도 행동 모델의 정착을 의미한다. 기후 위기가 거시 담론을 넘어 생활 영역으로 침투한 현실에서, 시민 참여 기반의 정책 구조는 지속가능성 확보의 핵심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광명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거주 형태별 맞춤형 무상수거 체계도 주목된다. 이는 환경 정책이 규제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민 불편 해소와 자원순환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 모델은 지방정부 환경 행정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박 시장은 광명시 정책의 철학적 기반으로 정원도시와 사회연대경제를 제시했다. 정원도시는 도시 공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한다. 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을 잇는 시민정원 벨트, 안양천 국가정원 지정 추진, 목감천 친수공간 조성은 도시를 단순 생활 기반이 아닌 ‘경험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이다.
도시 경쟁력이 고층 건물이나 대규모 개발에서 비롯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삶의 질, 환경, 여가, 심리적 안정성이 도시 가치의 핵심 지표로 부상한 상황에서 정원도시 전략은 광명의 도시 정체성을 규정하는 상징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연대경제 정책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박 시장은 이를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을 선택한 시민 가치의 결과”로 설명했다. 지역순환경제 강화, 사회적경제혁신센터 개관, 광명사랑화폐 확대 정책은 지역 자본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고 공동체 내 재투자를 유도하려는 구조적 접근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유지 전략에 가깝다. 수도권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베드타운화’, ‘지역 소멸형 공동체 붕괴’ 문제에 대응하는 지방정부 차원의 실험으로 해석된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 메시지는 ‘기본사회’였다. 광명시는 전국 지방정부 최초로 기본사회 조례를 제정하고 기본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박 시장은 “기본사회는 하나의 사업이 아닌 모든 행정의 토대”라고 규정했다.
이는 기존 복지 정책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기본사회는 특정 계층 지원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최소 권리 보장을 행정의 기본 전제로 삼는 개념이다. 돌봄 통합지원 조례, 재택의료센터 운영, 틈새돌봄 사업은 이 철학을 구체화하는 정책 장치다.
특히 재택의료센터 모델은 고령사회 대응 정책의 진화를 보여준다. 의료·간호·복지 전문가가 팀 단위로 가정을 방문하는 구조는 병원 중심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하고 돌봄 사각지대를 줄이는 실질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광명시가 강조하는 기본사회는 단순한 복지 확장이 아니라 행정 구조 자체의 재설계를 의미한다. 정책 판단 기준을 성장률이나 개발 성과가 아닌 시민 삶의 안정성과 존엄으로 이동시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시장은 인공지능 기반 행정 혁신 계획도 밝혔다. ‘AI 광명 추진계획’을 통해 3년간 단계적 행정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스마트도시 정책과 맞물려 광명시 행정 운영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기술 도입과 동시에 인간 중심 가치가 강조됐다는 점이다. 광명인생행복학교 추진 계획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시민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정책 영역으로 끌어들인 사례다.
AI 행정이 효율성과 자동화를 지향하는 반면, 삶·행복 중심 정책은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을 목표로 한다. 광명시는 이 두 축을 병행함으로써 기술 혁신과 인간 존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대규모 도시개발 구상도 핵심 의제로 제시됐다. 5만 석 규모 K-아레나 유치 전략, 7개 철도망 확충 계획은 광명의 도시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사업으로 꼽힌다.
K-아레나는 단순 공연장이 아니다. 문화·관광 산업, 지역경제, 도시 브랜드 가치까지 연결되는 복합 성장 엔진이다. 수도권 서남부 문화 거점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도 크다.
철도망 확충 역시 도시 경쟁력의 핵심 변수다. 월곶판교선, 신안산선, 광명시흥선, GTX-D·GTX-G 추진 노력은 광명을 수도권 교통 네트워크 중심축으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교통 인프라 변화는 곧 인구 구조, 산업 구조, 부동산 시장, 생활 패턴까지 연쇄적 영향을 미친다. 박 시장이 “지금의 결정이 광명의 미래 100년을 좌우한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단순한 시정 계획 발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광명시는 시민참여, 기본사회, 탄소중립, 스마트도시, 정원도시, 사회연대경제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복합 도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지방정부가 성장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삶 중심 가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박 시장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회복력’ 역시 같은 맥락이다.
또한, 경제 위기, 기후 위기,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더 이상 물리적 개발이 아니다. 시민 신뢰, 공동체 결속, 정책 안정성이 도시 생존력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광명시 정책 전반에 반영되고 있다.
이어 박 시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더 낮게 듣고, 더 깊이 묻겠다”고 밝혔다. 이는 광명시가 선택한 도시 전략의 핵심 문장으로 읽힌다. 성장의 속도보다 방향, 개발의 규모보다 가치, 행정의 권한보다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도시. 2026년 광명시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방정부 정책 실험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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