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3기 신도시 정책이 출범한 이후 가장 큰 논쟁은 ‘주거 공급 이후의 도시 지속성’이었다. 대규모 주택 공급은 가능하지만, 일자리와 산업 기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남양주 왕숙지구에 3기 신도시 최초 기업이전단지 공급을 공식화하면서, 3기 신도시 정책의 한 축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GH는 30일 남양주 왕숙 진건1·2지구에 총 223필지, 약 8,608억 원 규모의 기업이전단지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토지 분양이 아니라, 기존 기업의 이전과 조기 정착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포용적 이전대책’의 첫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공급의 가장 큰 특징은 산업시설용지를 조성원가로 공급한다는 점이다. 진건1지구에는 97필지(산업 46, 자족 51), 진건2지구에는 126필지(산업 39, 자족 87)가 공급된다. 금액 기준으로 보면 진건1지구 산업시설은 17억~92억 원, 자족시설은 20억~94억 원 수준이며, 진건2지구는 산업시설 12억~180억 원, 자족시설 13억~145억 원으로 책정됐다.
조성원가 적용은 기존 개발사업에서 보기 드문 방식이다. 기업 이전을 강제받는 구조에서 높은 토지가격은 가장 큰 부담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GH는 산업시설에 한해 감정평가가 아닌 조성원가를 적용함으로써, 이전 기업의 자금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자족시설용지는 감정평가 금액이 적용된다. 이는 상업·업무 기능을 통해 신도시 내 자체 경제 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번 기업이전단지는 공급 방식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GH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세 차례 간담회를 열어 이전 대상 기업들과 직접 소통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금 여력과 이전 준비 상황이 공유됐고, 이를 반영해 공급 일정 자체가 조정됐다.
통상 공공개발에서는 일정이 먼저 정해지고, 기업이나 주민은 이에 맞춰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장의 요구가 일정 조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행정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공급 일정은 1월 30일 공고를 시작으로, 2~3월 신청 접수, 3~4월 계약 체결 순으로 진행된다. 이전 기업들이 사업 공백 없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일정이다.
김용진 GH 사장은 “3기 신도시 최초로 기업이전단지를 공급하게 되어 뜻깊다”며 “부지 조성 가속화와 임시사용부지 조기 확보 등 실질적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이전’이 아니라 ‘재정착’이라는 표현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전은 생산 차질, 인력 이탈, 거래선 단절이라는 위험을 동반한다. 단순히 땅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이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GH는 임시사용부지 확보, 기반시설 조기 조성, 단계별 입주 지원 등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신도시 개발기관이 주택 공급을 넘어 산업 생태계 관리자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양주 왕숙지구는 수도권 동북부 핵심 거점으로 조성되는 3기 신도시다. 단순한 주거 집적지가 아니라, 주거·산업·일자리가 조화를 이루는 자족형 도시가 목표다.
이번 기업이전단지는 왕숙지구의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 기업들이 실제로 정착에 성공하고, 고용과 생산 활동이 이어질 경우 왕숙은 3기 신도시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족’이라는 목표에 근접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 이전이 지연되거나, 토지 공급 이후 후속 지원이 미흡할 경우 ‘형식적 이전’에 그칠 위험도 존재한다. 조성원가 공급이라는 파격적 조건이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공급은 단일 사업을 넘어 3기 신도시 정책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주택 공급만으로는 신도시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정책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남양주 왕숙 기업이전단지가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을 경우, 향후 다른 3기 신도시에서도 유사한 이전·재정착 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공공 개발기관의 역할 역시 주택 공급자에서 도시 운영의 조율자로 재정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3기 신도시의 성패는 결국 숫자가 아니라 ‘정착’에 달려 있다. 남양주 왕숙에서 시작된 첫 기업이전단지가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시장과 정책 당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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