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행정업무·처우·학교민주주의·교육환경 등 학교 구조 전반 손질 요구
안민석 교육감, 가능한 과제부터 신속한 개선 방침
경기도교육청이 ‘100가지 요구’를 어떻게 정책으로 바꿀지 교육계 주목
[이코노미세계] 학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육정책을 만드는 교육 당국도, 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도 중요하지만 매일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며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만큼 학교 현장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누적된 불합리한 관행을 교사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손보겠다고 나섰다.
출발점은 경기교사노동조합이 마련한 ‘불합리한 학교 현장 대전환을 위한 현장 교사들의 100가지 요구’, 이른바 ‘G-Needs(지니즈) 100’이다.
안 교육감은 15일 경기교사노조로부터 이 요구안을 전달받았다.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에는 방학 기간임에도 800명이 넘는 교사가 의견을 냈다. 교사노조는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해 비교적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나눠 100가지 과제로 정리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온 불필요한 업무와 행정 부담을 줄이고, 교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며,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업무를 덜어내 달라는 요구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안 교육감도 이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교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교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현장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번 ‘100가지 요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안민석 경기교육이 내걸어 온 ‘현장 중심 교육행정’이 실제 학교에서 얼마나 구현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요구안의 출발점은 지난 7월 열린 교권 포럼이었다. 안 교육감은 당시 교사들에게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는 불합리한 문제를 교사의 시각으로 직접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육청이 정책을 먼저 만들고 학교에 내려보내는 기존의 ‘하향식 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문제를 발굴한 뒤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취지였다.
교사들의 반응은 컸다. 방학 기간임에도 800명이 넘는 현장 교사들이 의견을 제시했고, 경기교사노조는 이를 취합해 100가지 개선 과제로 정리했다. 공개된 관련 보도에 따르면 요구안에는 교권 보호와 행정업무 간소화 등을 포함한 학교 현장의 개선 과제가 담겼다.
여기에는 경기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녹아 있다. 교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에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각종 공문 작성과 행정처리, 민원 대응, 행사 준비 등 수업 이외의 업무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개별 업무만 놓고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행정업무가 하나둘씩 쌓이면 교사가 학생과 수업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안 교육감이 이를 ‘먼지 같이 쌓여 있는 불합리한 관행’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 현장의 대전환이 거창한 제도 하나를 만드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지치게 하는 작은 관행을 하나씩 걷어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번 요구안이 처음부터 모두 새로운 내용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교사들이 앞서 제안했던 일부 요구사항은 이미 정책에 반영됐다.
안 교육감은 교사들이 먼저 제안했던 두 가지 요구를 반영해 올여름부터 방학 중 교사 근무를 없앴다고 밝혔다. 또 8월 말 퇴직 교사를 위해 교육지원청별로 환송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자신도 양평교육지원청 환송회에 참석해 퇴직 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작은 변화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행정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적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업무나 관행 가운데는 법률이나 제도 때문이라기보다 ‘원래 그렇게 해 왔다’는 이유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작업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예산보다 행정의 의지가 중요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업무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향후 100가지 요구 가운데 교육청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얼마나 신속하게 개선되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어 학교 현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교권이다. 안 교육감 역시 취임 전부터 교권 회복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지난 6월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도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며 교권 회복을 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요구안에서도 교권 보호는 핵심 영역이다. 안 교육감은 현재 교권보호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례안이 경기도의회 심의를 앞두고 있으며, 이른바 ‘교권 3법’으로 불리는 교원지위법·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위해 국회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교권 문제는 교육청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행정업무 경감과는 차이가 있다. 학교 내부 행정업무는 교육청 지침이나 조직 개편 등을 통해 일정 부분 조정할 수 있지만, 교원의 법적 보호 문제는 법률 개정과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청과 지방의회, 국회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특히 교사가 정당한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과 분쟁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교권 보호 정책의 핵심으로 꼽힌다.
교사 개인이 민원과 법적 분쟁을 홀로 감당하도록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교사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교권 보호 정책의 성패는 선언보다 시스템에 달려 있다.
교권 보호와 함께 중요한 축은 행정업무 경감이다. 안 교육감은 “선생님은 가르치기만 하십시오. 불합리한 짐을 덜어 드리는 일은 교육청이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정책적으로는 상당히 무거운 약속이다. 교사가 수업과 학생 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학교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은 현재 일부 교육지원청을 중심으로 관련 시범 운영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전체 교육지원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안 교육감은 선거 과정에서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문서 처리 등 교원 행정업무 자동화를 제시했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줄여 학생과 직접 만나는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때문에 ‘100가지 요구’와 AI 기반 행정업무 경감 정책이 어떻게 연결될지도 관심사다. 단순히 업무를 전산화하는 데 그칠 것인지, 불필요한 업무 자체를 없앨 것인지에 따라 현장의 체감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종이 문서를 전자 문서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업무가 줄어들지 않는다. 보고해야 할 문서와 결재 단계가 그대로라면 시스템만 바뀔 뿐 업무량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경기교육의 행정업무 경감 정책은 ‘업무의 디지털화’보다 ‘업무 자체의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100가지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무엇을 언제까지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일정이 뒤따라야 한다. 과제의 성격도 각각 다르다. 교육감의 판단이나 교육청 지침 변경만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제가 있는 반면 예산이 필요한 사안, 경기도의회 협조가 필요한 사안, 교육부 또는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100가지 요구를 일률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과제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즉시 개선 가능한 과제, 단기 개선 과제, 중·장기 제도개선 과제 등으로 나누고 각각의 추진 상황을 공개한다면 정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안 교육감도 요구안을 전달받은 뒤 개선 상황을 교사들에게 계속 보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100가지 요구를 일회성 행사나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정책의 진행 상황을 현장과 공유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음 분기점은 10월이다. 안 교육감은 더 폭넓게 교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오는 10월 7일 소속과 관계없이 교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는 ‘100가지 요구’ 이후 경기교육청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확인하는 첫 번째 공개 점검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장에서는 교육정책이 발표되는 순간보다 실제 학교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좋은 취지로 만든 제도라도 학교에 새로운 서류와 보고 업무를 만들어내면 오히려 교사의 행정부담을 늘릴 수도 있다. 때문에 정책 수립 단계에서 현장 교사의 의견을 듣는 것뿐 아니라 시행 이후 다시 현장의 평가를 받아 수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100가지 요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요구→검토→정책 반영→현장 적용→교사 평가→재개선’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안민석 교육감은 지난 7월 1일 민선 6기 경기도교육감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경기교육대전환’을 내걸고 AI 시대에 맞는 미래교육과 현장 중심 교육행정을 강조했다.
취임 전부터 현장 소통도 강조했다. 당선인 시절 경기지역을 돌며 진행한 ‘경기교육대전환 경청투어’에서도 “교육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취지의 현장 중심 접근을 내세웠다.
그런 점에서 교사들의 ‘100가지 요구’는 취임 초기 안민석 경기교육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과제가 됐다. 교육청이 정책을 만들고 학교가 따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교육청이 이를 해결하는 구조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와 지속성이다. 교사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거대한 정책보다 학교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불편 하나를 없애는 것이 현장에서는 더 큰 변화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100가지 요구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의욕이 새로운 행정 절차와 평가 시스템을 낳는다면 정책 취지가 퇴색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100개 과제를 숫자로 관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요구가 나왔는지 학교 현장의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이번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교사가 실제로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느냐는 것이다.
행정업무가 줄었는지, 부당하거나 과도한 민원을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지, 교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교육청이 실질적인 보호막 역할을 하는지, 불필요한 관행이 사라졌는지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100가지 가운데 몇 가지를 해결했다는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교사의 업무가 줄어들면 그 시간은 결국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사가 행정서류 대신 수업을 연구하고, 민원 대응 대신 학생을 상담하며, 불필요한 행사 준비 대신 아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다면 행정업무 경감은 단순한 교원 복지 정책을 넘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된다.
안 교육감은 선생님들의 부담을 하루라도 빨리 덜고 개선 상황을 직접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경기교육의 과제는 그 약속을 학교 현장의 변화로 증명하는 것이다.
800명이 넘는 교사가 방학까지 반납하며 모아놓은 100가지 요구는 어쩌면 거창한 교육개혁론보다 학교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목록일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그 100개의 목소리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안민석표 ‘경기교육대전환’의 현장성이 평가될 전망이다.
학교를 바꾸는 출발점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교사를 지치게 했던 오래된 불편 하나를 없애는 데 있을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저작권자ⓒ 이코노미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