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관 ‘보유 도시’ 넘어 기술 실증·사업화가 이뤄지는 산업도시로
[이코노미세계] 고양특례시가 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의 기술과 인재를 지역 산업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핵심은 ‘연구기관이 있는 도시’에 머물지 않고 연구개발(R&D) 성과를 고양에서 직접 시험하고, 이를 기업의 사업화와 투자·창업으로 연결해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있다. 민경선 고양특례시장은 18일 고양시에 위치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을 찾아 박선규 원장과 연구원 관계자들을 만나 고양시와 KICT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
이번 만남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순한 기관 간 교류가 아니라 고양이 보유한 ‘연구자산’을 실제 지역경제의 자산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민 시장은 스마트시티와 첨단교통, 도시안전, 탄소중립 등 고양시가 추진하는 미래도시 전략에 KICT의 연구 역량을 접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연구와 도시정책을 연결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기술과 성과를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고양의 미래산업 전략이 ‘외부에서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에서 ‘고양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산업으로 키울 것인가’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KICT는 고양시가 새롭게 유치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이미 고양에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국책 연구기관이다.
고양시가 이번 협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원은 약 5만 평 규모에 28개 동의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약 1000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박사급 연구원 650명과 행정인력 350명이 함께하고 있다.
고양시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급 연구인력과 연구시설, 실험·실증 역량이 도시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데 상당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연구기관의 ‘존재’보다 ‘연결’이다. 연구기관이 지역에 있어도 연구성과와 지역 산업이 분리돼 있다면 경제적 파급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연구개발과 기업, 창업, 도시 실증사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양시가 KICT와의 협력에서 바라보는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민 시장은 지역의 연구·실증 기반을 강화하고 연구성과가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결국 ‘연구실 안의 기술’을 ‘도시 안의 산업’으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협력 분야도 폭넓다. 고양시와 KICT는 AI 기반 교통체계와 항공우주·우주건설,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스마트건설·창업, 재난안전 등을 놓고 연구와 정책 역량을 연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고양의 미래산업 전략과도 접점이 있다.
스마트시티를 예로 들어보자. 새로운 교통기술이나 도시안전 기술이 개발돼도 실제 도시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으면 사업화에 한계가 있다. 기업 역시 기술을 개발한 뒤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공간과 데이터를 확보해야 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도시가 ‘실증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기관이 기술을 개발하고 고양시가 행정과 도시 공간을 연계해 실증 기회를 마련하며, 기업이 사업화에 참여하는 구조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고양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도시’가 아니라 기술을 시험하고 발전시키는 ‘생산도시’로 한 단계 이동할 수 있다.
실증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는 또 다른 기술개발로 이어지고, 관련 기업을 끌어들이는 기반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기술개발과 사업화 사이에는 흔히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불리는 간극이 존재한다. 연구실에서 좋은 기술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의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과 인증, 실증, 사업모델 구축, 투자유치와 판로 확보 등 넘어야 할 단계가 많다. 따라서 이번 고양시-KICT 협력의 성패도 단순히 공동 연구과제를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보다는 연구성과를 산업화하는 연결고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양시가 도시를 실증 공간으로 제공하고 KICT가 연구·시험 인프라를 지원하며 기업이 사업화에 참여하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연구개발과 시장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하나의 지역형 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스마트건설 분야에서는 기업과의 연결 가능성도 주목된다. KICT는 올해도 ‘스마트건설 강소기업’ 선정과 혁신기업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스마트건설 분야 유망 중소기업의 성장과 기술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며, 지난 3년간 60개 유망기업이 선정돼 기술개발과 사업화, 해외 진출 등을 추진했다.
연구기관의 기술과 기업 지원 기능, 고양시의 도시 실증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기존 연구지원 사업을 지역 산업생태계와 연결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산업정책에서 기업유치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세제·행정 지원을 제공해 외부 기업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업유치 경쟁이 전국적으로 치열해지면서 단순히 부지와 인센티브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쉽지 않다. 고양시가 KICT와의 협력을 산업전략으로 발전시킨다면 또 하나의 기업유치 논리를 만들 수 있다.
‘고양으로 오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와 협업하고, 첨단 연구시설을 활용하며, 실제 도시에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다’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기업 입장에서 연구기관 접근성과 실증 환경은 입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창업기업 육성과 투자, 인력양성 프로그램까지 결합된다면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모이는 클러스터 형성도 장기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기업 한 곳을 개별적으로 유치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접근이다.
KICT의 최근 연구 흐름도 고양시가 추진하려는 미래도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연구원은 올해 AI 데이터센터와 모듈러 기술, AI 기반 통합물관리 플랫폼, 돌발호우·도시침수 대응기술, 수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건설기술의 영역이 과거 도로와 건축물 같은 전통적인 인프라를 넘어 AI와 데이터, 에너지, 기후대응, 도시안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고양시와 KICT의 협력도 단순한 ‘건설기술 협력’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교통과 안전, 환경, 에너지, 데이터 등 시민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는 미래도시 기술 전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양측은 이번 논의에서 AI 교통, 우주건설, K-UAM, 스마트건설, 재난안전 등 다양한 분야를 협력 대상으로 제시했다. 고양이라는 실제 도시공간과 KICT의 연구 역량을 결합하면 연구성과를 시민 생활 속에서 검증하는 기회도 넓어질 수 있다.
민경선 시장이 이번 방문에서 제시한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연구가 실증으로, 실증이 기업유치로, 기업유치가 일자리로 이어지는 고양”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고양이 가진 이 소중한 연구자산을 지역경제와 연결해야 한다”며 미래산업의 해답을 현장에서 찾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이를 산업정책의 흐름으로 풀면 네 단계다. 첫째는 연구개발, 둘째는 도시 실증, 셋째는 기업유치와 사업화, 넷째는 지역 일자리 창출이다.
지금까지 지방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협력이 공동행사나 업무협약, 일부 연구과제에 머무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면 고양시가 제시하는 방향은 연구성과를 실제 지역경제의 결과물까지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이를 실현하려면 선언을 넘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실증사업과 규제·행정지원 체계, 연구원과 기업 간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창업지원, 투자유치, 전문인력 양성 등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몇 개 기업을 유치했는가’만이 아니라 실증에 참여한 기업 수, 사업화 성과, 신규 투자, 창업, 지역 고용 등 구체적인 지표를 설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첨단산업 정책이 시민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최종적으로 생활의 변화와 연결돼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것이 일자리다. 특히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산업 생태계는 연구개발 인력뿐 아니라 기업경영, 행정, 기술지원, 시설운영, 서비스 등 다양한 고용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 청년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고양에서 교육받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기업과 연구기관, 창업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미래산업 육성이 정주 여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교육기관과의 연계도 뒤따라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지역에서 양성하고, 연구기관의 전문인력이 교육에 참여하며, 청년들이 인턴과 공동연구·창업 등을 통해 산업 현장에 진입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연구기관-기업-대학-지방정부’가 연결되는 지역 혁신 생태계가 필요한 이유다.
KICT와 고양의 관계는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다. KICT는 1997년 일산 본원 준공 이후 약 30년간 고양시와 협력해 왔다. 이번 간담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미래융합관과 구조실험동, 방파제실험동, 스마트건설지원센터 등을 둘러보며 첨단 인프라 기술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살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오랜 ‘공존’을 산업적 ‘협력’으로 얼마나 발전시키느냐다. 연구기관이 고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역경제가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와 기업이 만나고 기술과 자본이 연결되며, 연구성과가 실제 도시에서 시험되고 다시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국책 연구기관은 지역의 ‘소재 기관’을 넘어 지역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고양시는 오랫동안 대규모 개발과 교통망 확충, 기업유치 등을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KICT와의 협력 구상은 이와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외부에서 새로운 시설이나 기업을 끌어오는 것뿐 아니라 이미 지역 안에 존재하는 연구기관과 인재, 기술을 발굴해 산업화하는 ‘내부 혁신’ 전략이다. 이는 외부 기업유치 전략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보완할 수 있다.
기업이 들어올 만한 연구·실증 환경을 먼저 조성하면 기업유치의 기반 자체가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중심 기업은 공장 부지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수한 연구인력과 협력기관, 시험·인증시설, 실증 기회, 전문인력 확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고양이 KICT를 중심으로 이러한 환경을 갖춰나간다면 수도권이라는 입지 조건에 연구개발과 실증이라는 새로운 경쟁요소를 더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후속 조치다. 한 차례의 방문과 협의가 장기적인 산업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양시와 KICT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기업 참여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어떤 기술을 고양에서 실증할 것인지, 어떤 기업이 참여할 것인지, 연구성과를 어떻게 사업화할 것인지, 시민에게 어떤 효과가 돌아갈 것인지가 구체적인 사업으로 제시돼야 한다.
또한 실증사업이 일회성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 진출과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고양시는 행정과 도시공간을, KICT는 연구·기술과 실험 인프라를, 기업은 사업화 역량을 제공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협력의 지속성도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지방정부의 역할은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가 가진 자원을 찾아 서로 연결하고 연구기관과 기업, 투자자, 시민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플랫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고양시와 KICT의 이번 만남이 주목받는 이유는 거창한 신규 개발계획 때문이 아니다. 이미 고양에 있는 것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약 1000명의 인력과 대규모 연구시설을 갖춘 국책연구기관이 도시 안에 존재하고, 그곳에서 미래도시와 관련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 이를 지역 산업과 연결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성장전략 가운데 하나다.
연구실의 기술이 도시로 나오고, 도시에서 검증된 기술을 들고 기업이 시장으로 진출하며, 다시 기업과 인재가 고양으로 모이는 구조다. 그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면 KICT는 단순히 ‘고양에 위치한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지리적 의미를 넘어 고양의 미래산업을 키우는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민경선 시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고양의 미래산업,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방향을 사업과 제도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연구가 실증으로, 실증이 사업화와 기업유치로, 다시 지역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구조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양시와 KICT의 협력이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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