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필수사업 상당수 9개월분만 편성, 올해 7700억원 감액추경 필요
추미애 지사, 업무추진비 삭감·낭비성 예산 차단 등 4대 정상화 착수
취득세 편중과 복지비 증가가 구조적 압박, 세입 체계 개편이 관건
[이코노미세계] 경기도가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전체 예산은 41조원을 넘지만, 경기도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재원은 3조5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지방채 발행 한도의 99.6%에 해당하는 9430억원의 빚을 냈고, 목적이 정해진 각종 기금에서 5588억원을 끌어다 썼다. 그런데도 올해 상당수 민생·필수사업 예산을 12개월분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경기도는 새로운 공약사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추 지사는 업무추진비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경비 삭감, 낭비성 예산 편성·집행 차단, 조직과 인력 재배치, 세입 구조 개혁을 4대 재정 정상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부동산 거래에 크게 의존하는 세입 구조와 계속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함께 손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세출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느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할지, 사회적 약자와 서민에게 필요한 사업을 어떻게 보호할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의 협조는 물론 중앙정부 차원의 지방세제 개편도 필요해 경기도의 선언이 실질적인 재정 정상화로 이어질지는 후속 조치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 재정에 경고등이 본격적으로 켜진 것은 지난해다. 경기도는 2025년 한 해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약 943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지방채 발행 한도 9460억원의 99.6%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기도가 지방채를 발행한 것은 20년 만이다.
지방채는 도로와 철도, 공공시설 등 장기간 사용하는 기반시설에 투자할 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세입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 발행이 반복되면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쌓이면서 향후 가용재원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 재정 부족을 빚으로 충당하고, 이후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지방채 발행과 함께 각종 기금에도 손을 댔다. 지난해 5월 용도가 정해진 기금의 재원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조례를 개정했다. 이후 제3회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개별 기금에 있던 약 5588억원을 통합계정으로 옮겨 일반회계 등에 사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북협력기금이다. 남북교류와 평화협력 사업을 위해 조성한 남북협력기금 384억원 가운데 340억원이 통합계정으로 이전됐다. 기금에는 44억원만 남았다.
기금은 특정 정책 목적이나 예상하지 못한 재정 충격에 대비해 쌓아두는 재원이다. 당장의 세입 부족을 보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기금을 과도하게 소진하면 정작 기금이 필요한 시점에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추 지사는 “지방채를 발행하고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며 당장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렇게 하고도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며 “미완의 ‘미생 예산’”이라고 했다. 이어 “그 대가는 민생예산의 부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재정난은 올해 본예산 편성 과정에서 도민 생활과 직결된 사업으로 번졌다. 민선 8기 경기도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상당수 민생사업과 필수사업의 예산을 12개월분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3개월분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사업에는 노인장기요양,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친환경 우수 농축산물 학교급식 지원,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 등이 포함됐다. 경기도교육청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급식비 지원, 가족돌봄수당,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지원,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운영 지원도 같은 상황이다.
노인 돌봄부터 아동 의료, 출산 지원, 학교급식, 농업 안전망, 대중교통까지 도민의 일상과 밀접한 사업들이 재정 부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셈이다. 사업을 연말까지 유지하려면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지만 경기도가 동원할 수 있는 여력은 크지 않다.
경기도 예산담당부서의 보고에 따르면 올해 약 7700억원 규모의 감액추경이 필요한 상황이다. 감액추경은 기존에 편성한 사업비를 줄이거나 집행 시기를 늦춰 재원을 다시 조정하는 절차다. 민생·필수사업의 부족분을 채우려면 다른 사업을 줄여야 하는 만큼 사업 간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추 지사는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며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가리는 동안 경기도 재정을 바로잡을 골든타임마저 놓쳤다”고 했다.
재정 상황이 공직사회 내부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추 지사는 취임 직후 상당수 사업이 9개월분만 편성된 사실과 구체적인 재정 실상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더욱 심각한 것은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재정 상황에 대한 공유가 없고 심각성마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전체 예산은 약 41조7000억원이다. 외형만 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지만, 도가 자체적인 정책 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약 3조5000억원에 그친다. 전체 예산의 8% 남짓이다.
나머지는 복지사업과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등 사용처나 부담 규모가 이미 정해져 있다. 국고보조사업이 늘면 중앙정부 지원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매칭 예산도 함께 늘어난다. 전체 예산 규모가 커져도 실제로 경기도가 재량껏 운용할 수 있는 돈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입 구조도 불안정하다. 서울시는 개인·법인 지방소득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세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경기도에는 지방소득세가 귀속되지 않는다. 경기도는 보통교부세도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다. 반면 전체 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거래 상황에 따라 수입이 크게 달라지는 취득세에 의존하고 있다.
경기도 취득세 수입은 2022년 약 11조원에서 올해 8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4년 사이 약 3조원, 비율로는 30%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 부동산 거래가 줄면 취득세 수입도 곧바로 감소하는 구조여서 경기 침체나 부동산시장 변동이 도 재정에 직접적인 충격을 준다.
세출은 인구 증가와 고령화로 빠르게 늘고 있다. 경기도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49%를 차지한다. 현재의 증가세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60%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2022년 이후 경기도 전체 인구는 약 30만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 증가분의 두 배인 약 60만명 늘었다. 최근 5년간 경기도 고령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6.8%로 전국 평균인 5.4%보다 높다.
고령인구가 늘면 기초생활 보장과 노인 돌봄, 의료, 교통 등 복지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복지 지출의 상당 부분이 법령이나 국가 정책에 따라 의무적으로 집행되는 만큼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줄이기도 어렵다. 취득세 수입은 감소하는데 의무 지출은 늘어나는 ‘세입 감소·세출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경기도가 세수 확대를 기대했던 3기 신도시에서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당초 신도시 개발을 통해 약 6500억원의 취득세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재 예상액은 2300억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애초 전망보다 4200억원 감소한 규모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확대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 적용되면서 경기도에 들어오는 취득세가 예상보다 크게 줄었다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반면 경기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줄지 않았다. 신도시 입주에 맞춰 도로와 대중교통, 소방, 각종 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유치 과정에서도 투자와 세수 간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가 기업 유치를 위해 전력·용수·교통망 확충에 행정력과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해당 시·군으로 귀속된다.
산업 기반 조성과 광역교통망 구축을 주도한 경기도에는 투자 부담이 남지만, 기업 유치로 늘어나는 핵심 세수는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경기도가 단순한 지출 축소를 넘어 지방세 배분 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추 지사가 내놓은 첫 번째 재정 정상화 방안은 고위공직자 경비 삭감과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이다. 도지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업무추진비 등 각종 경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즉시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낭비성 예산 차단이다.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시급하지 않은 사업은 중단하고, 관행적으로 반복해 온 연구용역과 민간위탁·대행사업도 원점에서 재평가하기로 했다. 사업 필요성과 성과를 따져 계속 추진할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세 번째는 조직 재정비다. 참모조직을 개편하고 도청 실·국과 공공기관의 조직·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예산뿐 아니라 행정조직의 기능과 업무까지 손보겠다는 의미다.
네 번째는 세입 구조 개혁이다. 경기도는 지방소비세 확충, 기업 유치에 따라 발생하는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할 방침이다.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취득세 편중과 의무 지출 증가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업무추진비와 행사비, 연구용역비 등을 줄이면 재정 긴축의 상징성과 공직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정 부족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경기도의 재정 정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민생사업 보호다. 재정위기를 이유로 복지와 안전 예산을 일률적으로 줄일 경우 그 부담은 취약계층에 먼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모든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 구조조정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추 지사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그 고통을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삶에 떠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책임이 큰 곳에서 더 많이 부담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관건이다. 중단하거나 축소할 사업의 선정 기준과 절감 목표, 민생사업 부족분을 충당할 방안, 지방채 상환계획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각종 기금에서 가져다 쓴 재원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다.
도의회와의 협의도 피할 수 없다. 감액추경과 주요 사업 조정에는 예산 심의권을 가진 경기도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도비가 투입되는 사업 상당수가 31개 시·군과 연계돼 있어 시·군과의 재원 분담 조정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지방소비세와 법인지방소득세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비율은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바꿀 수 없는 사안이다. 경기도의 재정 비상 선언이 지방정부 세입 구조를 둘러싼 전국적인 논의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추 지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불과 2∼3년 뒤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지금의 어려움을 다음 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더 나은 경기도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거주하고 반도체 등 국가 첨단산업이 집중된 지역이다. 경기도의 재정위기는 한 지방정부의 살림살이에 그치지 않고 복지·교통·교육·산업 기반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41조7000억원의 거대한 예산 뒤에 숨은 3조5000억원의 제한된 가용재원, 취득세 감소와 복지비 증가, 지방채와 기금 소진이 얽힌 구조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민선 9기 경기도정의 첫 시험대가 됐다. 선언을 넘어 실제 재정 체질을 바꾸는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도민과 지역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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