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쇼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대형 아울렛 한편에 작은 공연장이 마련됐다. 화려한 조명이나 거대한 무대는 없었지만, 청년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기타 선율이 공간을 채우자 시민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췄다. 가족과 함께 쇼핑에 나선 시민부터 젊은 연인, 어린이와 중장년층까지 자연스럽게 관객이 됐다.
남양주시가 1일 다산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SPACE 1)에서 개최한 ‘정약용의 후예’ 미니 버스킹 첫 공연의 모습이다. 공연장을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행사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 앞에 설 기회를, 시민에게는 생활 가까이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거리 공연을 넘어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술 분야에 진입하려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관객과 만나는 ‘첫 무대’다. 그러나 신인이나 지역 기반 예술가가 안정적으로 공연 기회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공연장을 빌리는 데 비용이 들고, 관객을 모으는 일도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남양주시는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시민들이 많이 찾는 상업 공간을 청년 예술가들의 무대로 활용했다. 문화공연을 특정 시설이나 축제 기간에 한정하지 않고 시민들의 일상으로 옮겨왔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무대에는 남양주시 청년 네트워크 사업인 ‘정약용의 후예’에 소속된 청년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출연진은 보컬과 기타 연주 등을 선보이며 아울렛을 찾은 시민들과 호흡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쇼핑을 하던 시민들이 무대 주변에 모여들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정해진 좌석에 앉아 조용히 감상하는 전통적인 공연 방식과 달리, 시민들은 이동하다 잠시 멈춰 음악을 듣거나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버스킹의 장점은 공연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다. 관객의 표정과 반응이 공연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무대 위 청년 예술가의 긴장과 열정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출연자에게는 자신의 공연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전 경험이 된다.
특히 문화예술 공연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민도 쇼핑이나 여가 활동 중 부담 없이 무대를 만날 수 있다. 별도의 입장 절차나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생활밀착형 문화행사의 특징이다.
대규모 공연이나 지역축제가 도시의 문화적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 소규모 버스킹은 시민의 일상에 문화예술을 스며들게 한다. 규모는 작지만 시민과 예술가가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문화 향유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행사 명칭인 ‘정약용의 후예’에는 남양주의 역사성과 청년의 미래를 연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토대로 오늘날 남양주 청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약용의 후예’는 남양주시 청년 인재들의 문화예술 활동과 사회 참여를 뒷받침하는 청년 네트워크 사업이다. 청년을 단순한 정책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주체로 세우는 데 의미가 있다.
지역 청년 정책은 그동안 취업과 창업, 주거, 복지 분야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물론 청년의 경제적 자립과 생활 안정은 가장 기본적인 정책 과제다. 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려면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를 펼칠 수 있는 참여 공간도 필요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에게 무대는 곧 경력이다. 관객 앞에서 공연한 경험이 쌓일수록 표현력과 현장 대응 능력이 높아지고, 다른 예술가나 기관과 협업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 미니 버스킹은 청년들이 준비해 온 역량을 실제 공간에서 선보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첫걸음의 성격을 갖는다.
청년 예술가의 공연은 도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역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활동하고 시민들이 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문화예술은 일회성 소비를 넘어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지역 청년이 외부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활동을 이어가려면 지속적인 기회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두 차례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 경험이 새로운 창작과 협업, 시민 참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버스킹이 열린 곳은 전통적인 공연장이 아닌 대형 아울렛이다. 시민들이 쇼핑과 외식, 여가를 위해 자연스럽게 방문하는 공간을 문화예술 무대로 전환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일상적인 동선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공공 문화시설뿐 아니라 시민의 왕래가 잦은 민간 공간을 활용하면 문화행사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청년 예술가에게도 기존 공연장과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경험을 제공한다. 특정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 우연히 공연을 접한 시민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는 도시 규모가 커지고 생활권이 넓어지면서 지역별로 문화 향유 기회를 고르게 제공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들이 가까운 생활권에서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대형 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원과 광장, 상업시설 등 시민이 자주 찾는 공간을 활용한 소규모 공연을 꾸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니 버스킹은 적은 규모로도 공연자와 시민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문화 정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역의 여러 생활공간이 공연장으로 활용되면 시민은 도시 곳곳에서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청년 예술가는 더 많은 활동 무대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사업이 지속성을 갖추려면 공연 횟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청년 예술가의 성장 과정도 체계적으로 살펴야 한다. 출연자 모집과 선발, 공연 준비, 무대 운영, 시민 반응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참여 청년들이 다음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공연 이후에도 참여자 간 교류와 공동 기획을 이어가고 지역 축제나 공공행사, 민간 문화공간과 협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면 사업의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시민의 관람 경험과 출연자의 활동 성과를 축적하는 것도 향후 사업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과제다.
‘정약용의 후예’ 미니 버스킹은 모두 세 차례 진행된다. 첫 공연에 이어 오는 9일에는 김예빈·김소윤 씨가 무대에 오른다. 17일에는 이은정 씨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각기 다른 개성과 역량을 지닌 청년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만나면서 공연마다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의 행사로 끝내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후속 공연을 진행하는 만큼 시민에게 사업을 알리고 청년 예술가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남양주시는 앞으로도 미니 버스킹을 비롯해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협업 기회를 마련하고, 이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청년 지원과 시민 문화향유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하나의 무대에 담았기 때문이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공연 경험과 시민과의 접점을 제공하고,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기회를 열었다.
공연은 짧지만 그 무대가 청년에게 남기는 경험은 작지 않다. 시민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연주를 선보인 순간은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시민이 보내는 관심과 박수 역시 청년 예술가의 가능성을 키우는 지역사회의 응원이다.
다산 정약용의 이름을 잇는 오늘의 청년들은 거창한 무대가 아닌 시민의 일상 한가운데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아울렛 한편에 울려 퍼진 노래와 기타 선율이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남양주의 청년 문화예술 생태계를 키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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