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투표권이 없으면 학생들의 목소리는 지워지는 것일까요?” 21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짧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단문으로 시작된 글은 곧바로 단정으로 이어졌다. “결코 그렇지 않다.” 투표권 유무와 무관하게 학생들의 목소리는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교육의 본질은 승패를 가르는 표 한 장이 아니라 ‘참여의 효능감’을 체득하는 데 있다는 메시지였다.
교육감의 발언은 단순한 SNS 의견 표명을 넘어, 최근 다시 불붙은 선거연령 하향 논의와 맞물리며 교육 현장과 정치권, 학부모 사회 전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생 참여의 의미는 어디까지이며, 학교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그리고 교실은 정치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가.
임 교육감의 글은 선거연령 논쟁을 직접적으로 찬반 구도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시선을 교실로 돌린다.
학생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표 한 장보다, 내 제안이 학교를 바꾸고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참여의 효능감”이라는 대목은 교육 철학을 응축한다. 민주주의를 단순한 제도 교육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로 해석한 것이다.
학교를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배움과 실천의 장”으로 규정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최근 교육 담론에서 강조되는 ‘숙의’, ‘공론’, ‘사회적 학습’과 맞닿아 있다.
임 교육감은 선거연령 하향 논의에 대해 보다 신중한 시각을 드러낸다. “학생을 배제하려는 고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핵심 논지는 교실의 정치화 우려다. 학교가 정치적 선전장이 되는 것을 막고, 학생들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 주체로 성장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선거연령 논의의 프레임을 정치권 중심에서 교육 현장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선거권 확대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환경과 성장 조건의 문제라는 접근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치적 판단 능력은 단순 연령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경험과 교육 과정의 축적 문제다. 투표권을 주는 것과 민주 시민을 기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 교육정책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 임 교육감 발언의 가장 강한 대목은 이 문장에 응축된다. “지금도 우리 학생들의 목소리는 투표함 속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투표권 중심 민주주의에 대한 간접적 문제 제기다. 민주주의를 선거 행위로 환원하는 사고에 대한 교육적 반론으로 읽힌다.
실제로 청소년 정책 참여 통로는 확대되고 있다. 지방정부 청소년 의회, 학생 참여 예산제, 교육정책 제안 플랫폼 등 제도적 장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투표권이 없어도 정책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일정 부분 현실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반론도 존재한다. “참여 경험이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투표권은 상징적·실질적 권리다. 목소리의 무게 자체가 달라진다.” 청소년 인권 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교실 정치화 논쟁은 선거연령 논의의 핵심 쟁점이다. 우려하는 측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가치가 교육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반대로 비판하는 측은 정치와 사회를 분리한 교육이 현실을 외면한다고 주장한다.
임 교육감 발언은 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정치적 선전은 경계하되, 민주주의 경험 교육은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미묘한 긴장이 감지된다. “사회 이슈를 다루는 순간 정치 논란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완전히 배제하면 학생들의 현실 인식이 빈약해진다.” 한 교사의 토로다.
임 교육감은 글 말미에서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한다. “거창한 정치 구호보다 내 삶을 바꾸는 작은 변화를 이끄는 힘, 그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경기교육 현장에서 먼저 실천하겠다.”
이어 임 교육감은 선거연령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투표인가, 경험인가. 권리의 확대가 먼저인가, 시민 역량의 형성이 먼저인가. 교육과 정치, 권리와 성장, 제도와 경험 사이의 긴장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학생 참여와 민주 시민 교육이 더 이상 주변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투표권 유무를 넘어 학생 목소리의 실질적 영향력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교육 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감의 SNS 질문은 짧았지만, 그 파장은 길다. 교실과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향한 논의는 이제 막 다시 시작됐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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