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양팔과 손을 이용해 작업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공장과 가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로봇이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향상되면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양산과 산업 현장 투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경기도가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AI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센서, 정밀부품, 로봇 조립 및 실증 인프라가 집적된 경기도의 산업 구조를 활용해 차세대 로봇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전석훈 경기도의원은 28일 도내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의 체계적인 육성과 완결형 산업 생태계 조성을 골자로 한 ‘경기도 휴머노이드 로봇산업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을 직접 지원 대상으로 명시한 지방자치단체 조례는 전국에서 처음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례안이 경기도의회를 통과하면 경기도는 휴머노이드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핵심 기술과 부품 개발부터 시제품 제작, 실증, 창업, 국내외 판로 개척에 이르는 전 주기 지원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은 최근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 기술력을 과시하는 연구개발 성과물이나 전시용 시제품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AI 기술과 정밀 제어, 배터리, 센서, 구동장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실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첨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 로봇기업 유비테크는 2026년 6월 가정용 휴머노이드 ‘U1 시리즈’를 출시해 1만3000대 이상의 선주문을 확보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같은 해 7월 대표이사 직속 ‘RX사업추진실’을 신설하고 제조 현장에 휴머노이드를 단계적으로 투입하는 상용화 계획을 공식화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 산업용 로봇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로봇은 주로 정해진 위치에서 반복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생산 공정이 바뀌면 로봇을 다시 설치하거나 생산라인 자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이 일하도록 만들어진 기존 작업 환경에 상대적으로 쉽게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발로 이동하고 계단이나 문턱을 넘으며, 양팔과 손을 이용해 공구나 부품을 다룰 수 있다. 작업 공간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지 않고도 사람이 수행하던 일부 업무를 맡길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제조업·물류업 등의 인력 부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휴머노이드는 단순한 자동화 장비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위험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로봇이 담당하면 산업재해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변화의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가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직접 규율하거나 지원하는 별도의 법률이 없다. 현행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 로봇산업 육성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지만, 주된 제도는 산업용 로봇과 실외 이동로봇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머노이드는 일반 산업용 로봇과 기술적 특성이 다르다. 이족보행을 위해서는 로봇이 움직이는 동안 무게중심을 정밀하게 유지해야 하고, 사람의 팔과 손처럼 여러 관절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공장이나 가정 등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환경에서 장애물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휴머노이드산업의 경쟁력은 AI 소프트웨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감속기와 액추에이터, 고성능 센서, 정밀 모터, 제어기, 로봇 손 등 하드웨어 부품의 성능과 내구성이 상용화를 좌우한다.
감속기는 모터의 회전 속도를 낮추면서 힘을 높여주는 부품이고, 액추에이터는 전기적 신호를 실제 관절의 움직임으로 바꾸는 핵심 장치다. 사람의 손처럼 물체를 잡고 힘을 조절하는 로봇 손 역시 휴머노이드의 작업 능력을 결정하는 고난도 부품으로 꼽힌다.
전 의원은 기존 AI·로봇 관련 조례처럼 포괄적인 지원 체계만으로는 이들 핵심 부품의 기술적 병목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휴머노이드산업의 특성을 별도로 정의하고,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특정 첨단산업을 별도 조례로 지원하는 것은 예산 편성과 사업의 지속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단체장의 정책적 의지나 개별 부서의 단년도 사업에만 의존할 경우 담당자가 바뀌거나 재정 여건이 악화하면 사업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조례를 통해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면 정책의 연속성을 높일 수 있다.
경기도가 휴머노이드 로봇산업 육성에 나선 배경에는 지역의 산업적 강점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에는 AI와 소프트웨어 기업뿐 아니라 반도체, 센서, 디스플레이, 정밀기계, 전자부품, 자동차부품 기업이 폭넓게 분포해 있다.
휴머노이드는 하나의 기술이나 부품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와 카메라, 정보를 처리하는 반도체, 행동을 결정하는 AI, 관절을 움직이는 모터와 감속기, 이를 조립하는 생산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관련 산업 기반이 집적된 경기도는 휴머노이드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도내에서 연결할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 부품업체, 대학, 연구기관을 연계하면 기술개발부터 부품 생산, 완제품 조립, 실증에 이르는 ‘완결형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조례안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 담길 예정이다. 우선 경기도가 5년 단위의 휴머노이드 로봇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매년 시행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기술개발과 산업 육성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도내 산업의 규모와 기업별 기술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도 실시한다. 현재 어떤 기업이 어떤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지, 기술개발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부족한 인력과 시설은 무엇인지 등을 조사해야 효율적인 지원 정책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천기술과 핵심 부품 개발, 시제품 제작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한다. 휴머노이드 부품은 기술개발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시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형성되지 않아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기술이 있어도 시제품 제작과 성능 검증, 완성품 기업과의 연계에 실패해 사업화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조례안은 이 같은 ‘사업화의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기술개발 이후 단계까지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창업 지원과 국내외 시장 진출, 전문인력 양성, 실증 공간 확보를 위한 특화단지 조성, 재정지원 근거 등이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휴머노이드산업에서 실증은 기술개발 못지않게 중요하다. 로봇이 실험실에서 움직이는 것과 실제 공장에서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조 현장에는 작업자와 이동 장비, 다양한 장애물이 혼재한다. 바닥의 상태와 조명, 온도, 소음도 일정하지 않다. 휴머노이드가 이런 환경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려면 넘어짐과 충돌 등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반복 작업에서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정과 돌봄 현장에서는 안전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다. 어린이와 노인 주변에서 작동하는 로봇은 작은 오작동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카메라와 센서의 활용 범위, 사고 발생 때 제조사와 운영자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실증 특화단지는 단순히 기업에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사용 환경을 구현하고 안전성·내구성·작업 정확도를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시설이 돼야 한다. 제조·물류·의료·돌봄 등 분야별 실증 체계를 마련하고, 실증 결과가 제품 개선과 인증, 공공·민간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부문의 역할도 주목된다.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는 기업이 초기 수요를 확보하기 어렵다. 경기도와 산하 공공기관이 위험 시설 점검, 재난 대응, 물류 운반 등 적합한 분야를 발굴해 제한적으로 실증하면 기업은 현장 데이터를 축적하고 제품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로봇을 성급하게 공공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산업 육성과 도민 안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증 단계와 평가 기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례안이 통과되면 경기도가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다. 지방정부가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조례 제정이 곧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례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예산과 전담 조직, 단계별 사업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기존 AI·로봇·반도체 지원사업과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정책 간 역할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지원 대상과 방식 역시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로봇 완제품 기업을 유치하는 데 그칠 경우 도내 중소 부품업체가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감속기와 액추에이터, 센서, 로봇 손 등 기술적 파급력이 큰 핵심 분야를 선별하고, 지역 기업이 대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인력 확보도 과제다. 휴머노이드 개발에는 기계·전자·제어·AI·소프트웨어 분야의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 대학 교육과 기업 수요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재직자가 새로운 로봇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 과정도 마련해야 한다. 산업 육성이 일부 연구기관이나 대기업 중심으로 흐르지 않도록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참여 문턱을 낮추는 장치도 요구된다.
중앙정부와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제품 인증과 안전 기준, 개인정보 보호, 산업 표준, 사고 책임 등은 지방정부 조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경기도가 실증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와 제도 개선 과제를 중앙정부에 제안하고, 국가 연구개발사업과 연계해야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제조업과 물류, 의료, 돌봄, 재난 대응 등 여러 분야의 일하는 방식을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 동시에 일자리 변화와 안전사고, 개인정보 침해, 기술 격차와 같은 새로운 문제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산업을 빠르게 키우는 것만큼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함께 살피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경기도의 이번 조례 추진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닌 새로운 산업정책의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관건은 조례 제정 이후다. 계획과 예산, 기업과 연구기관의 참여, 안전한 실증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경기도가 가진 산업 기반이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의 주도권 경쟁은 이미 연구실 밖에서 시작됐다. 경기도의 선제적 제도 마련이 국내 로봇산업의 핵심 부품 자립과 공급망 구축을 이끄는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저작권자ⓒ 이코노미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