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한여름 무더위가 이어진 17일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思陵).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잠든 능역에 엄숙한 제례 음악이 울려 퍼졌다.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최현덕 남양주시장이 제단 앞으로 나아가 첫 잔을 올렸다.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난 지 505년을 맞아 봉행된 제향에서 초헌관을 맡은 것이다.
국가유산청이 주최하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주관한 이날 제향에는 정순왕후의 친정인 여산 송씨 종친과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 가문과 인연이 깊은 해주 정씨 종친 등도 참석했다. 시대와 가문을 넘어 이어져 온 추모의 마음이 사릉에 모였다.
최 시장은 제향을 마친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몹시 무더운 날씨 속에서 예복을 입고 사모관대까지 착용하니 땀이 많이 났다”며 “자주 해보는 의례가 아니어서 신경도 많이 쓰였지만, 제례를 주관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이끌어줘 무난하게 마무리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제향은 500여 년 전 한 왕비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례에만 머물지 않았다. 정순왕후의 굴곡진 삶을 되짚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사릉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어떻게 더 가까이 돌려줄 것인지 묻는 자리이기도 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엄격하게 보존하면서도 시민들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향을 계기로 다시 부각됐다.
정순왕후는 조선 왕실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산 왕비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440년 태어난 정순왕후는 1454년 단종의 왕비로 책봉됐다. 당시 정순왕후는 열다섯 살, 단종은 열네 살이었다.
그러나 왕비로서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단종은 1455년 상왕으로 물러났고, 1457년에는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 영월로 유배됐다. 정순왕후 역시 왕비의 지위를 잃고 노산군부인으로 강등됐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생이별했다. 이후 단종은 영월에서 열일곱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정순왕후는 왕궁 밖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다시 왕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152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을 홀로 살아야 했다.
정순왕후의 삶은 단종의 죽음과 왕위 찬탈이라는 거대한 정치사의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순왕후를 단순히 ‘단종의 비’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확산하고 있다. 권력의 격랑에 휩쓸려 왕비의 지위를 빼앗긴 뒤에도 긴 세월을 견뎌낸 한 인간의 삶과 내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별아가 정순왕후의 생애를 소재로 쓴 장편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도 이런 관점에서 탄생했다. 작품은 역사 기록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정순왕후의 슬픔과 기다림, 단종을 향한 그리움을 문학적으로 그려냈다.
최 시장도 “비운의 왕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의 삶은 정말 파란만장했다”며 “남편을 여읜 왕비는 여든 살이 넘도록 고된 삶을 이어가야 했고, 다행히 사후에 복권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정순왕후는 생전 왕비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된 것은 사후인 1698년, 숙종 때였다.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난 지 177년 만이었다. 이때 능호도 ‘사릉’으로 정해졌다. ‘생각할 사(思)’ 자를 사용한 사릉이라는 이름에는 단종을 향한 정순왕후의 그리움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사릉은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정순왕후가 1521년 노산군부인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시가인 해주 정씨 집안에서 장례를 치렀다. 묘 역시 현재의 해주 정씨 집안 묘역에 조성됐다.
정순왕후는 후사가 없었다. 말년에는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의 집에 의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주 정씨 집안은 왕실에서 폐위된 정순왕후를 외면하지 않았고, 사후 제사도 맡았다. 권력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지만 정순왕후와의 인연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1698년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되면서 정순왕후의 묘는 왕릉인 사릉으로 다시 조성됐다. 원칙대로라면 왕릉 안에 있던 민간 묘역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숙종은 정순왕후를 보살핀 해주 정씨 집안의 의리를 고려해 묘역을 그대로 두도록 했다. 이 때문에 사릉에는 지금도 왕릉과 해주 정씨 묘역이 함께 남아 있다.
사릉은 외형에서도 검소함이 두드러진다. 능침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았다. 석양과 석호도 각각 한 쌍만 배치됐고 무석인도 없다. 정자각과 비각, 수라간, 수복방, 홍살문 등 왕릉의 기본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전체적인 규모와 석물 구성은 비교적 간결하다.
비각 안 표석에는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이라고 새겨져 있다. 한때 왕비에서 노산군부인으로 강등돼 생을 마감했던 정순왕후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역사 속 이름과 지위를 되찾았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남양주 진건읍에 자리 잡은 사릉은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2009년에는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릉은 한 왕비의 능을 넘어 조선 왕실의 정치사와 가족사, 폐위와 복권, 가문 간 의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 현장인 셈이다.
최근 단종의 유배 생활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심을 끌면서 단종이 잠든 영월 장릉뿐 아니라 정순왕후의 사릉을 찾는 방문객도 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관심을 실제 문화유산 방문으로 연결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단종 관련 역사 관광은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 등이 있는 영월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반면 정순왕후가 잠든 남양주 사릉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단종의 비극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와 생이별한 뒤 60여 년을 더 살아야 했던 정순왕후의 삶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릉 주변에는 숲과 어우러진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왕릉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정순왕후의 생애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휠체어가 출입구까지 접근할 수 있는 동선과 장애인 주차 공간, 유모차 대여 등 기본적인 관람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현장을 찾은 방문객 사이에서는 능침을 충분히 살펴보기 어렵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일반 관람객이 접근할 수 있는 구간이 제한돼 있어 정자각을 지나 능침 가까이에서 왕릉의 구조와 석물을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 시장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사릉 둘레 산책길이 잘 조성돼 있지만, 방문객들이 정작 왕릉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정자각까지만 다가갈 수 있어 아쉽다”며 “문화유산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방문객들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했다.
왕릉은 보존이 최우선인 국가유산이다. 관람 구역을 무조건 넓히거나 방문객의 접근을 제한 없이 허용할 수는 없다. 능침 주변의 자연환경과 원형을 보호하고 제례 공간으로서의 경건함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접근성 개선은 개방과 통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훼손을 막으면서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제한적인 능침 특별관람을 운영하거나 디지털 영상과 증강현실 해설을 도입하고, 정자각 인근에서 능침의 구조와 석물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안내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남양주시는 사릉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릉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시민과 관광객이 체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이다.
사릉의 경쟁력은 공간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있다.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됐다가 폐위된 정순왕후, 단종과의 생이별, 왕궁 밖에서 보낸 60여 년, 해주 정씨 집안과의 인연, 사후 177년 만의 복위까지 한 편의 서사로 이어진다. 이를 역사 해설과 공연, 문학, 교육, 산책 프로그램 등에 접목하면 사릉은 ‘한 번 둘러보고 떠나는 왕릉’에서 ‘이야기를 따라 머무는 역사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정순왕후 제향을 시민 참여형 역사문화 행사로 확장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제향의 형식과 의미를 설명하는 사전 해설, 전통 복식과 제례 절차를 배우는 체험, 청소년 대상 역사교육을 함께 운영한다면 어렵게 느껴지는 왕실 제례를 시민에게 한층 가깝게 전달할 수 있다.
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과 연계한 문학 산책, 정순왕후의 생애를 다룬 낭독 공연과 소규모 야외극, 단종의 영월 장릉과 정순왕후의 남양주 사릉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도 검토할 만하다. 남양주와 영월이 공동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면 두 지역에 흩어진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하나의 역사문화 관광축으로 묶을 수 있다.
사릉 인근 지역과의 연계도 중요하다. 방문객이 왕릉만 보고 곧바로 떠나는 구조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지역 상권과 대중교통, 주변 관광지, 산책로를 연결한 체류형 동선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해설·공연·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특히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국가유산청과 남양주시, 역사·건축 전문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방문객 증가가 소음이나 교통 혼잡, 능역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루 관람 인원과 운영 시간, 행사 규모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문화유산 활용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느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방문객이 정순왕후의 삶과 사릉의 가치를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지역 주민에게 어떤 문화적·경제적 효과가 돌아갔는지, 문화유산의 원형이 온전히 보존됐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정순왕후의 삶은 단종의 비극에 딸린 부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왕비에서 폐서인된 뒤에도 긴 세월을 견뎌낸 한 여성의 독립적인 역사다. 사릉은 그 삶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권력에 희생된 인물을 후대가 어떻게 복권하고 추모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이번 505주기 제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정순왕후와 사릉을 다시 시민 앞에 불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전통 제례를 계승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릉의 역사적 가치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남양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키워야 한다는 과제도 남겼다.
최 시장은 “정순왕후의 삶을 되돌아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사릉에 더 많은 분이 방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왕릉은 죽은 이의 무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현재에도 살아 움직인다. 505년 동안 이어진 정순왕후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면서 시민에게 더 가까이 전하는 것, 그것이 이제 남양주시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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