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도 하남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집값 하락을 막겠다며 입주민들이 카카오톡 비공개 오픈채팅방을 통해 조직적으로 가격 담합을 벌이고,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공인중개사들을 집단 공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주민 간 정보 공유 수준을 넘어 가격 하한선을 정하고, 이를 어긴 중개업소를 표적으로 삼아 허위신고와 민원 폭탄을 퍼부은 정황까지 확인되면서 부동산 시장 왜곡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는 22일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하남시 소재 A아파트 단지 소유주 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카카오톡 비공개 단체 대화방을 활용해 아파트 매매·전세 가격 하한선을 설정하고, 그 이하 가격으로 매물을 등록한 공인중개사들의 영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이른바 ‘집값 담합’ 의혹이 실제 수사와 검찰 송치로 이어진 대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과 익명성을 활용한 조직적 여론전, 허위 민원, 디지털 방식의 압박이 결합된 신종 부동산 카르텔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도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179명이 참여한 비공개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며 ‘매매 11억 원 이하 금지’, ‘전세 6억5천만 원 이하 금지’ 등의 가격 가이드라인을 공유했다. 단지 내 시세 방어를 명분으로 특정 가격 이하의 거래를 사실상 차단한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거래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실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물을 등록한 공인중개사들은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참여자들은 특정 매물과 중개업소를 지목하는 이른바 ‘좌표 찍기’를 통해 집단 행동에 나섰고, 하남시청과 네이버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센터(KISO)에 무더기 신고를 접수했다.
경기도 조사 결과 이들이 제기한 신고는 하남시청 73건, KISO 84건에 달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실제 허위매물로 판명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사실상 정상 매물을 허위매물로 몰아 광고를 차단시키고, 중개업소를 압박하기 위한 조직적 신고였다는 의미다.
수사기관은 이들의 범행이 단순한 자발적 행동이 아니라 역할 분담까지 이뤄진 체계적 구조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도자로 지목된 A씨는 집단 민원 서식을 직접 제작·배포하며 공격 전략을 총괄했고, B씨는 신고 대상 매물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나 가상번호를 활용해 익명으로 항의 전화를 하는 방식까지 공유됐다. 참여자들에게는 특정 중개업소에 반복적으로 전화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요령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참여자인 C씨는 전화 공세와 집단 민원을 주도했고, D씨는 특정 공인중개업소를 지목해 온라인상에서 악의적으로 시세를 비방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E씨는 인공지능 챗봇인 ChatGPT를 활용해 민원 양식을 자동 생성하고 단체 신고를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집값 담합이 얼마나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일부 주민 카페나 오프라인 모임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오픈채팅방과 SNS, AI 기술까지 활용되며 조직화·자동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피해도 적지 않았다. 피해 공인중개사 F씨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협박성 연락과 반복 민원으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네이버 부동산 광고가 차단되면서 중개 의뢰가 끊기는 등 영업상 피해도 발생했다.
부동산 시장 측면에서도 파장이 있었다. 저가 매물 광고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시장에 노출되는 가격 자체가 인위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주변 시세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실수요자들은 왜곡된 가격 정보를 접하게 되고, 거래 시장의 투명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행 공인중개사법 제33조는 특정 가격 이하로 중개 의뢰를 제한하거나 개업공인중개사의 정당한 광고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집값 담합은 익명성과 폐쇄성 탓에 적발이 쉽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의미를 갖는 이유도 수사기관이 디지털 증거와 단체 대화 기록 등을 확보해 조직적 공모 관계를 입증했다는 데 있다.
경기도는 최근 국무조정실 부동산감독추진단이 주관하는 ‘부동산 불법행위 대응 협의회’에 참여하며 국토교통부·경찰청·국세청 등과 수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관계기관 공조 과정에서 수사가 본격화된 사례다.
경기도는 또 다른 부동산 카르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용인시 일대에서는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친목회를 구성해 비회원 업소와의 공동중개를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명 조치를 하는 등 배타적 영업 질서를 형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도는 다음 달 중 해당 친목회 운영진 3명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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