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안’에 ‘수도권 외 지역’ 우대 조항을 담으면서, 국내 최대 반도체 집적지인 경기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용인·평택·이천·화성 등 세계적 반도체 생산거점을 품고 있는 경기도는 “국가 반도체 경쟁력과 공급망 전략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시군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정부 설득에 나섰다.
경기도는 28일 경기도청 율곡홀에서 현병천 미래성장산업국장 주재로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 수도권 배제 관련 도-시군 긴급 현안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도내 주요 시군 실·국장과 차세대융합기술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한국나노기술원 등 반도체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시행령안에 ‘반도체클러스터 지정 요건’으로 사실상 수도권 제외 기준을 명시한 데 따른 대응 차원에서 마련됐다. 경기도는 이미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공식 의견서를 제출해 수도권 배제 및 비수도권 우대 조항 삭제를 요청한 상태다.
경기도가 문제 삼는 핵심은 정부의 기존 반도체 전략과 새 시행령안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용인·평택·이천·화성 등을 중심으로 한 ‘K-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축 전략을 국가 핵심 산업정책으로 추진해왔다. 실제 경기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총 1126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이 집중돼 있으며, ASML·AMAT·LAM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기업들도 잇따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안이 수도권을 반도체클러스터 지정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할 경우, 정부가 스스로 육성해 온 산업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의 주장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시군들은 지역별 산업 전략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산시는 AMAT 등 글로벌 장비기업과 연계해 추진 중인 연구단지 조성 사업이 위축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부천시는 DB하이텍과 연계한 외국기업 투자 협의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고, 성남시는 판교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팹리스 10배 육성 전략과 시행령안이 정책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천시는 지식정보타운과 방첩사·경마장 부지를 활용한 AI·AX 신산업 전략에 차질 가능성을 우려했고, 시흥시는 피지컬 AI 특화지역 조성과 첨단산업 생태계 위축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연결된 배후 산업도시들의 위기감도 컸다.
평택시는 삼성전자 5·6공장과 연계한 배후도시 조성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투자 유치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화성시는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 준비 과정에서 수도권 배제 조항이 발표되면서 지역 산업계 불안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역시 삼성전자 중심 연구특화지역 및 경제자유구역 추진 과정에서 정책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경기 남부 반도체벨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복합적이다. 경기 북부 접경지역 지자체들은 “수도권 규제가 또다시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발했다.
연천군과 가평군은 인구감소지역과 접경지역이라는 이중 부담 속에서 수십 년간 각종 중첩규제를 감수해왔는데, 이번 시행령안까지 더해지면 첨단산업 유치 기회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양시는 산업 성장 정체와 산업단지 분양 부진 상황에서 향후 남북관계 개선 이후 기대했던 성장 동력마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정부시는 반환공여구역과 경제자유구역 개발 전략이 규제에 가로막힐 가능성을 언급했고, 김포시는 공항·항만과 연계한 첨단산업 잠재력이 있음에도 성장동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시행령안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시행령안의 수도권 배제 조항은 기존 K-반도체벨트 전략과 정책 정합성이 맞지 않는다”며 “제15조에 수도권 배제 조항을 넣으면서 다른 조항에는 ‘수도권 외 지역 우대’ 표현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제도 체계상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2019년부터 용인·평택·이천·화성 중심의 메가클러스터 전략을 추진해왔는데, 이제 와 수도권을 제외한다면 기존 국가 전략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집적 효과’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미국은 애리조나와 텍사스, 일본은 구마모토, 대만은 신주과학단지 등 기존 산업 거점을 중심으로 인프라·인재·장비·소부장 기업을 집중 배치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반면 수도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은 산업 생태계의 연쇄 효과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정부와 비수도권에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첨단산업까지 수도권에 몰릴 경우 지방 산업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지방 여러 지역에서는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과 첨단기업 유치를 미래 생존 전략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은 ‘국가 경쟁력 중심 전략’과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충돌하는 대표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도는 앞으로 수도권 지자체 및 관계기관과 연대해 대응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반도체 올케어 TF를 중심으로 시군별 산업 특성을 반영한 공동 논리를 개발하고, 입법예고 및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시행령안 논란은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첨단산업 전략의 방향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또 정부가 ‘균형발전’과 ‘산업경쟁력’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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