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도의회가 단순한 의정 기록을 넘어 지방의회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대규모 편찬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초대 의회부터 제10대 의회까지 수십 년간 축적된 의정 활동을 집대성하는 작업으로, 단순한 성과 정리를 넘어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기록하는 역사 편찬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은 기존 지방의회 의정사 편찬에서 흔히 나타났던 ‘행정백서식 실적 나열’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료를 교차 검증하는 역사학적 접근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방의회의 역할과 변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전달하는 역사 자산 구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도의회는 26일 의회 예담채에서 ‘2026년 경기도의회사 편찬위원회 제1차 회의’를 개최하고 의회사 편찬사업의 고도화 단계에 돌입했다. 이날 회의에는 박철하 편찬위원장과 이지훈 부위원장을 비롯한 편찬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해 사업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초대 의회부터 제10대 의회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시대사 7권에 대한 1차 검수 결과가 보고됐다. 또한 일반 도민들이 보다 쉽게 의회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대중서 형태의 테마사 기획안도 논의됐다. 아울러 전직 의원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구술채록 사업의 추진 상황도 점검했다.
의회 관계자들은 단순히 연혁과 실적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경기도의회가 걸어온 길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방의회는 주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지만 그동안 중앙정치에 비해 기록과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국회의 경우 다양한 의정사 연구와 자료 축적이 이루어졌지만 지방의회는 체계적인 역사 정리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회는 이번 편찬사업을 통해 지방자치 발전 과정과 주요 정책 결정, 사회적 갈등과 합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편찬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방자치 부활 이후 경기도의회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경기도의회는 지역 현안 해결과 조례 제정, 예산 심의, 행정 감시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로서 인구와 경제 규모가 큰 만큼 의회의 정책 결정이 갖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동안 경기도의회는 도시 개발과 교통 인프라 확충, 교육 정책, 복지 확대, 환경 보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다. 또한 지방분권 강화와 자치재정 확대 등 지방자치 발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면서 지방의회 역사가 단절적으로 인식되는 문제도 있었다.
특히 지방의회가 주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결정하는 만큼 의정 활동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향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편찬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편찬 방식과 차별화된 접근법이다. 그동안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의 역사서 편찬은 대체로 기관 내부 자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의정백서나 회의록, 사업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주요 실적을 정리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객관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기관 내부 기록은 특정 시각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경기도의회는 내부 자료뿐 아니라 외부 사료까지 함께 활용하는 ‘사료 교차 검증’ 방식을 도입했다. 의정백서와 회의록, 조례안 등 내부 기록은 물론 언론 보도와 연구자료 등을 함께 분석해 사실관계를 검증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역사학 연구에서 활용되는 방법론을 지방의회 편찬사업에 적극 적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편찬위원회는 초고 작성 이후에도 경기연구원 전문 감수 과정을 거치는 등 다단계 검증 체계를 구축해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핵심은 구술채록 사업이다. 문서 기록만으로는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모두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갈등은 어떻게 조정됐는지, 어떤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등은 구술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경기도의회는 전직 의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의정 경험과 정책 결정 과정, 지역 현안 대응 사례 등을 수집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식 기록에 남지 않은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역사 자료로 남긴다는 계획이다.
학계에서는 구술채록이 단순한 회고록 수집을 넘어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지방자치 초기 단계에서 활동했던 의원들의 경험은 현재 지방의회 운영 체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방의회의 역사는 단순한 정책 추진 과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여야 간 정치적 경쟁은 물론 지역 간 이해관계 조정, 주민 요구와 행정 효율성 사이의 균형 등 수많은 갈등과 타협이 반복된다.
박철하 위원장이 “이번 의회사 편찬은 갈등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결과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했는지, 사회적 합의를 위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역시 중요한 역사적 가치다.
이번 편찬사업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과정을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정 시기나 특정 정치세력의 관점이 아닌 객관적 자료와 검증 절차를 바탕으로 지방의회 역사를 재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상당수 지방의회는 아직 체계적인 의정사 정리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기록은 존재하지만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고 시대적 맥락을 연결하는 작업은 부족했다.
반면 경기도의회는 대규모 시대사 편찬과 테마사 제작, 구술채록, 사료 교차 검증, 전문기관 감수 등 복합적 방식을 도입하며 역사서 수준의 편찬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관 홍보물이 아닌 학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기록물 구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어 지방자치의 성숙은 기록의 성숙과도 맞닿아 있다. 의회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국 주민들이 만들어 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경기도의회의 이번 의회사 편찬사업이 지방자치 30년의 성과와 한계를 균형 있게 담아내며 전국 지방의회 역사 기록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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