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0.1점 차이로 아이들을 줄 세우기에는,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귀하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이 한마디는 현재 대한민국 대학입시 제도의 민낯을 정확히 겨냥한다. 점수 몇 점, 등급 한 칸에 울고 웃는 구조 속에서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관리돼 왔다. 그러나 저출생이 일상이 된 시대, 더 이상 과거의 경쟁 중심 대입제도가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교육 현장에서 거세지고 있다.
임 교육감은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학생 한 명 한 명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국가의 소중한 자산으로 바라봐야 할 때”라며 ‘미래 대입개혁 4자 실무협의체’의 조속한 가동을 촉구했다. 임 교육감의 발언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정책적 메시지로 읽힌다.
임 교육감이 올해 초 제안한 미래 대입개혁 4자 실무협의체는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부,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참여하는 구조다.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자치, 대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입시 개혁을 논의하자는 구상이다.
그리고 이 협의체를 “단순한 토론의 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물줄기를 바꾸고 국가 미래의 생존 전략을 짜는 협의체”라고 규정했다. 그만큼 현재 대입제도가 교육 현장과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대학입시는 오랜 기간 ‘정답 맞히기 경쟁’에 머물러 왔다. 상대평가 중심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옆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는 게임에 내몰렸고, 학교 교육은 문제풀이 훈련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임 교육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들은 AI가 0.1초 만에 찾을 수 있는 지식을 밤새워 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시대에, 단순 지식 암기를 기준으로 한 평가 방식은 교육적 타당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현장 역시 상대평가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특정 과목에서 1등급을 가르기 위한 미세한 점수 차이는 실제 학업 역량이나 잠재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로 인해 대학들은 학생부종합전형, 면접, 서류 평가 등 다양한 요소를 도입했지만, 근본적인 평가 체계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다.
임 교육감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상대평가 방식은 이미 대학 현장에서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임 교육감이 제시한 해법은 명확하다. 암기 중심 교육에서 역량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 그리고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의 이동이다. “이제는 ‘무엇을 얼마나 아는가’를 묻는 교육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AI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은 이러한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 정답 고르기가 아니라, 학생의 사고 과정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AI 기술을 활용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면서도, 학생 개개인의 사고력을 입체적으로 담아내겠다는 구상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AI 기반 평가가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지만, 임 교육감은 “지금의 점수 경쟁 체제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인 대안”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문제의식이 개인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임 교육감에 따르면, 최근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부 장관과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대입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 결과 이달 말, 미래 대입개혁 4자 실무협의체 구성을 위한 사전 협의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는 대입제도 개편 논의가 실질적인 실행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을 시사한다.
임 교육감은 “지금이야말로 대학입시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기를 놓치면 또다시 한 세대를 과거의 틀 속에 가두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는 교육 시스템 전반을 흔들고 있으며, ‘많이 뽑아 줄 세우는’ 방식의 입시는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임 교육감의 발언은 교육 문제를 넘어 국가 전략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한 명의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성장 가능성을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임 교육감은 “교육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대학입시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입제도는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변화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시대 변화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0.1점으로 아이들을 줄 세울 수는 없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목적이 경쟁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점을 다시 묻는 질문이다. 미래 대입개혁 4자 실무협의체가 실제로 가동된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비로소 점수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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