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형·수상형 태양광 등 공급원 다변화
장주기 ESS 실증·허브 구축도 추진
[이코노미세계] 세계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앞선 공정기술을 확보했는지, 얼마나 많은 생산시설을 갖췄는지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했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다. 반도체 공장을 움직이는 막대한 전력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 하는 ‘에너지 경쟁력’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와 탄소 감축에 속도를 내면서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된 경기도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산업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협회(SEMI)를 비롯해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ASML,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서 온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제기된 핵심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재생에너지’였다. 추 지사가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SEMI 측은 세계 주요 반도체 생산국인 대만·한국·일본 가운데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가장 낮으며 세계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추 지사는 이를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경쟁력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SEMI 사이피 부사장의 지적에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경쟁이 기술과 생산능력을 넘어 에너지 공급체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도가 제시한 방향은 분명하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0%로 끌어올리고 재생에너지 10GW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태양광 발전시설을 늘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농지와 수면, 도로와 철도 주변 등 기존에는 적극적인 에너지 생산 공간으로 활용되지 않았던 곳까지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는 우선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사를 계속 지으면서 농지 위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농업 생산과 에너지 생산을 같은 공간에서 병행한다는 점에서 토지 이용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경기도가 영농형 태양광을 ‘실증사업’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실제 농업 현장에서 농작물 생산과 발전을 어느 수준까지 조화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발전량 목표만 제시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농업 현장과 지역 주민의 수용성, 기존 산업과의 조화 등을 함께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경기도의 실증사업은 이런 현실적 과제를 검증하는 첫 단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경기도는 재생에너지 생산 공간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수상형 태양광과 도로·철도변 유휴부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지 확보다. 대규모 발전설비를 설치하려면 상당한 면적이 필요하지만 수도권은 토지 가격이 높고 개발 수요도 많다. 주민 수용성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기존 시설과 유휴공간을 활용해 발전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새로운 토지 개발에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생산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방정부이면서 대도시와 농촌, 산업단지와 신도시가 함께 존재하는 지역이다. 도시와 농촌의 공간적 특성이 크게 다른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 역시 획일적인 방식보다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찾아야 한다.
농촌에서는 영농형 태양광을 실증하고, 활용 가능한 수면에는 수상형 태양광을 검토하며, 도시와 산업지역에서는 도로·철도 주변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결국 핵심은 기존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위해 새로운 대규모 공간을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지만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공간을 에너지 생산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구상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에너지저장장치(ESS)다. 도는 전기를 장시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ESS’ 실증과 허브 구축에도 앞서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질 수 있다. 전력이 많이 생산되는 시간과 실제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시간이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공급하는 시스템의 중요성이 커진다. 경기도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확대와 함께 장주기 ESS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발전설비 확대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ESS는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한 산업이다. 생산공정의 특성상 전력 인프라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이 산업 기반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가 장주기 ESS 실증과 허브 구축을 추진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정책을 단순 발전설비 확대에 한정하지 않고 생산·저장·활용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생태계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번 간담회에서 주목할 부분은 재생에너지 정책이 환경 분야만의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담회에는 글로벌 반도체협회뿐 아니라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ASML,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 정보기술(IT)·반도체 산업을 움직이는 기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반도체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의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가 논의됐다는 뜻이다. 이는 경기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기도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장과 연구시설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력과 기반시설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투자 환경의 중요한 요소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반도체 산업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별개의 영역으로 나눠 접근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의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역시 이런 변화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것은 탄소 감축이라는 환경적 목표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기업이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환경을 조성한다는 경제적 의미도 갖는다.
경기도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GW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 실제 발전설비를 구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앞으로 관건은 실행이다.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수상형 태양광과 도로·철도변 유휴부지 활용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장주기 ESS 실증과 허브 구축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등이 정책 성패를 가르게 된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발전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지 확보와 주민 수용성, 인허가, 전력망 연계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움직인다.
따라서 경기도가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 30%’와 ‘10GW’라는 목표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업을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실증사업은 실증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실증을 통해 경제성과 기술성,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성과가 검증된 사업은 실제 보급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타날 경우 이를 보완하는 정책적 유연성도 요구된다.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각국과 지역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지방정부의 산업정책이 기업에 산업용지를 제공하고 도로와 용수 등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에너지 공급체계까지 산업 경쟁력의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 비교해 낮다는 지적은 경기도에 적지 않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더라도 글로벌 기업들이 요구하는 에너지 환경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반도체 생산시설과 관련 기업이 밀집한 경기도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저장 기반을 빠르게 확대한다면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반시설을 확보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를 환경정책에 머물지 않고 산업정책으로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경기도가 내놓은 구상의 핵심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재생에너지 공급량 확대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 30%, 10GW라는 목표가 그 중심에 있다.
둘째는 발전 공간의 다변화다. 영농형 태양광을 실증하고 수상형 태양광과 도로·철도변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생산 공간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에너지 저장 인프라다. 장주기 ESS 실증과 허브 구축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요구되는 저장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세 가지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경우 경기도의 에너지 정책은 ‘발전설비 확대’라는 단일 정책에서 벗어나 생산과 저장, 산업 활용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관건은 속도와 실행력이다. 2030년까지 남은 시간 동안 30%와 10GW라는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의 구체화와 지속적인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수요와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전망이다.
추 지사는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들이 던진 한국의 낮은 재생에너지 비율에 대한 지적을 ‘분발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였다.
그 답으로 내놓은 것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 30%, 재생에너지 10GW, 영농형·수상형 태양광과 도로·철도변 유휴부지 활용, 그리고 장주기 ESS 실증 및 허브 구축이다.
세계 반도체 경쟁의 전선은 이제 공장 안의 미세공정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장 밖에서 그 생산라인을 움직이는 전력을 어떻게 만들고 저장하고 공급하느냐까지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거점인 경기도가 ‘반도체와 재생에너지’를 하나의 산업 전략으로 연결하려는 이유다.
2030년 재생에너지 30%와 10GW라는 목표가 선언을 넘어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경기도의 에너지 전환 실험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저작권자ⓒ 이코노미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