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 배수로에 방제둑 설치, 소화수·빗물 전량 흡입 처리
2024년 관리천 오염사고 교훈으로 모의훈련, 초기 대응력 높여
최원용 시장 “앞으로 열흘이 고비, 완전히 해결할 때까지 점검”
[이코노미세계] 밤사이 내린 비는 평택시 청북읍 토진리 화재 현장에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왔다. 불길은 잡혔지만, 현장에 남은 화학물질이 빗물에 섞여 인근 관리천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이 끝났다고 해서 재난 대응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가 내리면서 보이지 않는 ‘2차 오염’과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최원용 평택시장은 17일 새벽 현장 근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빗물 유입 상황부터 확인했다. 밤사이 비가 내렸다는 소식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아직 화재 현장 정리가 끝나지 않은 만큼 잔류 화학물질과 빗물이 섞여 배수로를 타고 관리천으로 흘러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최 시장은 이날 현장을 직접 찾아 화재 지점에서 관리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따라 이동했다. 직원들과 햄버거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뒤 설치된 8개의 저지선과 빗물 흐름을 차례로 살폈다. 마지막 점검 지점은 관리천 입구였다.
배수로 곳곳에서는 살수차가 저지선에 고인 물을 번갈아 흡입하고 있었다. 흡입한 물은 관리천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공공하수처리장으로 옮겨 처리한다. 빗물이 현장에 머무르는 순간부터 흡입·운반·처리되는 전 과정을 관리해 하천 유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방식이다.
최 시장은 “직원들이 노력한 덕분에 관리천은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었다”며 “함께 현장을 살피고 직접 상황을 확인하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지난 11일 0시께 평택시 청북읍 토진리의 위험물 보관창고인 PJK 평택1센터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현장에는 위험물이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진화에 나섰고, 평택시는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화수가 인근 하천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한 방제에 착수했다.
위험물을 보관한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불길만 잡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창고 내부 물질과 소화용수가 뒤섞일 경우 오염수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 물이 배수로나 농수로를 따라 하천으로 유입되면 수질오염으로 번질 수 있다.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는 화재 진압과 생태계 피해를 차단하는 환경 방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평택시는 화재 발생 약 5시간 뒤인 오전 5시께부터 유해물질과 소화수의 공공수역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사업장 안에 있는 장비를 이용해 하천 연결 수로의 유출구를 막고 유입수를 흡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화재가 계속되면서 현장 진입이 어려워지자 계획을 바꿨다.
시는 관리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수로에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굴착기를 동원해 임시 방제둑을 쌓았다. 오전 5시 30분부터는 살수차를 투입해 수로에 고이는 물을 흡입했다. 이후 화재 현장과 관리천 사이 약 500m 구간에 모두 8개의 저지선을 설치했다.
저지선을 여러 겹으로 구축한 것은 하나의 방제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음 방어선에서 오염수를 다시 차단하기 위해서다. 화재 현장에서 흘러나온 물을 단계적으로 가두고, 각 지점에 고인 물을 살수차로 흡입하는 방식이다. 관리천까지는 약 3㎞ 떨어져 있지만, 배수로가 연결돼 있는 만큼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택시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처리한 소화수는 1476t에 달했다. 이 기간 투입된 살수차는 55대였다. 이후에도 현장 정리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물과 수로로 흘러드는 자연수, 빗물 등을 처리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화재 진압보다 훨씬 긴 사후 대응이 필요한 셈이다.
평택시가 이번 화재 초기부터 소화수 차단에 행정력을 집중한 배경에는 2024년 1월 발생한 관리천 오염사고가 있다.
당시 평택과 인접한 화성시 양감면의 위험물 보관창고에서 불이 났다. 창고에 보관돼 있던 화학물질과 소화수가 섞인 오염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었고, 하류에 있는 평택 관리천까지 영향을 받았다. 하천수가 비취색으로 변하면서 주민 불안이 커졌고, 농업용수와 주변 농지에 대한 피해 우려도 제기됐다.
화성시와 평택시 등 관계기관은 관리천 곳곳에 방제둑을 설치하고 오염된 하천수를 수거했다. 방제와 수습 작업은 한 달 넘게 이어졌으며, 처리한 오염수만 약 25만t에 달했다. 환경오염은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비용과 행정력뿐 아니라 주민의 일상과 지역사회 신뢰까지 흔든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고였다.
당시의 경험은 이번 대응을 바꿔 놓았다. 평택시는 사고가 발생한 뒤 수습에 나서는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시설 화재로 오염수가 발생할 상황을 가정한 사전 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PJK 평택1센터에 위험물이 보관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지난해 5월 배수로에 물 50t을 흘려보내는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소화수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를 확인하고 방제둑과 흡입 장비를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를 점검했다. 같은 해 11월에도 추가 훈련이 이뤄졌다.
훈련에서 확인한 물길과 장비 배치 지점은 실제 화재 현장에서 초기 대응 시간을 줄이는 데 활용됐다. 화재가 발생한 직후 공무원들이 관리천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차단하고, 굴착기와 살수차를 신속히 배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전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 대응에서 매뉴얼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실제 지형과 물길, 장비 동원 시간, 관계부서 간 역할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서류상 계획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다. 이번 사례는 과거 사고의 교훈을 모의훈련으로 연결한 것이 실제 재난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현장 대응의 핵심은 시설과 장비만이 아니었다. 화재 발생 직후부터 공무원과 소방대원, 살수차 운전기사, 주민들이 현장을 지켰다.
담당 공무원들은 교대로 배수로와 방제둑을 살피며 물의 흐름을 확인했다. 저지선에 고이는 물의 양이 늘어나면 살수차를 불러 흡입하고, 수거한 물은 공공하수처리장으로 옮겼다. 비가 내리면 유입되는 물이 갑자기 늘 수 있어 휴일과 야간에도 감시를 멈출 수 없었다.
살수차 운전기사들도 방제둑 사이를 오가며 흡입과 운반 작업을 반복했다. 토진3리 이장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행정기관과의 연락을 이어갔다. 불길이 사라진 뒤에도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관리천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방어선이 유지될 수 있었다.
최 시장은 “쉬는 날에도 현장을 지키며 애써주고 있는 공무원과 살수차 운전기사, 토진3리 이장 등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햄버거로 끼니를 대신한 현장 직원들의 모습은 장기 재난 대응의 현실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화재와 연기처럼 눈에 보이는 위험에 관심이 집중되지만, 현장 정리와 오염수 처리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는 관심에서 멀어지기 쉽다. 그러나 하천 오염을 막는 일은 마지막 소화수와 빗물이 안전하게 처리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번 대응이 현재까지 관리천 오염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화재 발생 직후 설치한 방제둑뿐 아니라, 이후 여러 날 동안 이어진 감시와 흡입 작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는 가장 큰 변수다. 강수량이 늘면 현장에 남아 있던 물질이 빗물과 함께 이동할 수 있고, 방제둑에 고이는 물의 양도 빠르게 증가한다. 살수차의 흡입·운반 능력보다 유입량이 많아질 경우 저지선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방제둑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저지선별 수위를 점검하는 한편, 살수차와 대체 장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흡입한 물의 안전한 처리와 방제둑 주변 토양, 인근 농지에 대한 점검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화재 현장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빗물과 접촉했을 때 어떤 오염 가능성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천 유입이 차단됐더라도 현장과 배수로에 남은 침전물, 방제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최 시장은 관리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앞으로 약 10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속한 종결을 선언하기보다 현장을 끝까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서두르기보다 끝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며 “끝까지 챙기고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화재는 평택시의 초기 방제 대응이 효과를 거둔 사례이지만, 동시에 위험물 보관시설에 대한 예방관리라는 과제도 남겼다.
대형 산업시설과 물류창고가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화재 대응체계와 환경오염 방지체계를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소방당국이 불길을 잡는 동안 지방자치단체 환경부서는 오염수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안전부서는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는 통합 대응이 필요하다.
위험물 보관시설별로 인근 하천과 배수로, 농수로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한 ‘오염수 이동 지도’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시설 내부에 소화수를 가둘 수 있는 집수시설과 차단밸브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외부 배수로로 곧바로 흘러가지 않도록 방지시설이 작동하는지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주민에게 사고 진행 상황과 수질검사 결과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과거 오염사고를 경험한 주민에게 ‘현재까지 유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항목을 검사했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지속적으로 공개해야 불안을 줄일 수 있다.
평택시가 구축한 8개의 저지선은 관리천으로 향하는 오염수를 막는 물리적 방어선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방어선은 과거 사고를 잊지 않고 훈련을 반복하는 행정, 위험시설을 사전에 관리하는 제도, 마지막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2024년 비취색으로 변했던 관리천의 기억은 이번 화재 현장에서 ‘초기 차단’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번 대응 경험을 다시 매뉴얼과 예방정책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불길은 꺼졌지만 평택의 재난 대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열흘, 관리천을 지키는 싸움의 성패는 눈에 띄는 성과보다 저지선의 수위와 빗물의 흐름을 끝까지 확인하는 데 달려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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