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근 시장 “숭고한 뜻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이코노미세계] 한 도시의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표지가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가 응축된 상징이다. 경기도 화성특례시에 ‘만세구’가 탄생한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만세’라는 두 글자에는 1919년 화성 곳곳을 뒤흔든 독립의 함성과 일제의 폭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주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희생된 선열들, 거리와 장터에서 태극기를 들었던 이름 없는 주민들, 그리고 그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오늘의 시민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정명근 화성특례시장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은 15일 기념식에 참석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겼다.
정 시장은 “빛을 되찾은 그날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기적이 아니었다”며 “자유와 독립을 향한 수많은 선열의 저항과 투쟁,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화성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벌어진 참혹한 희생에도 주민들은 굴하지 않았고, 끝까지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정 시장의 메시지는 광복절에 맞춘 통상적인 추념사를 넘어선다. 화성의 독립운동 역사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시민의 정체성과 도시의 미래를 형성하는 기반이라는 점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화성은 3·1운동 당시 경기도에서 항일운동이 거세게 전개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장터와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나섰고, 농민과 상인, 종교인 등 다양한 계층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화성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사건은 1919년 4월 15일 발생한 제암·고주리 학살이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은 이날 오후 제암리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이어 출입문과 창문을 막고 주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뒤 교회와 민가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으로 부녀자 2명을 포함해 제암리 주민 23명이 희생됐다. 일본 군경은 인근 고주리로 이동해 주민 6명을 추가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모두 29명의 목숨이 하루 사이에 희생된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계획적인 보복이었다.
학살은 마을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희생자의 가족과 생존자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일제가 지우려 했던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는 사건 직후 현장을 찾아 참상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제암리와 화성 일대에서 자행된 일제의 폭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총칼과 불길로 현장을 없애려 했던 일제의 시도는 오히려 식민통치의 잔혹성을 세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제암·고주리 학살은 한 마을의 비극을 넘어 독립과 인권,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정 시장이 광복을 “하루아침에 찾아온 기적이 아니었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이어진 독립운동과 수많은 민중의 저항,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의 희생이 쌓여 이뤄진 역사적 결실이었다.
화성의 독립운동 역시 특별한 몇몇 인물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장날을 맞아 시장에 나온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었고, 농촌 마을 주민과 종교인들이 함께 독립을 외쳤다. 일제의 무력 진압과 체포, 고문에도 만세운동의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암리와 고주리의 희생은 그 저항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제가 주민을 상대로 대규모 보복에 나선 것은 그만큼 화성지역의 만세운동이 조직적이고 강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화성에서 광복절은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지역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공동체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날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정 시장은 “그 역사의 중심에 우리 화성특례시가 있었다”며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벌어진 참혹한 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의 선열들은 끝까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의 의미는 단순히 국권을 회복한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스스로 삶을 결정할 권리를 되찾았다는 의미까지 품고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와 시민주권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독립운동이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방자치는 주민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화성의 독립운동 정신은 2026년 새로운 행정구역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25년 1월 특례시로 출범한 데 이어 2026년 2월 1일 만세구·효행구·병점구·동탄구 등 4개 일반구 체계를 갖췄다. 인구 100만 도시의 행정 수요에 대응하고 주민 가까이에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변화였다.
이 가운데 만세구라는 이름은 시민의 의견을 거쳐 선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정 편의를 위해 붙인 방위나 숫자 중심의 명칭이 아니라 화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 시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정 시장은 “올해 새롭게 출범한 4개 구의 이름을 시민 여러분께서 ‘만세구’로 지어주셨다”며 “일상의 공간과 언어 속에 독립운동의 정신을 담아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이어가겠다는 시민 여러분의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명은 매일 반복해 불리는 생활 언어다. 시민은 주소를 쓰고, 공공기관을 방문하고, 학교와 직장, 상점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만세구’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기념일에만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되풀이되는 셈이다.
“화성시 만세구”라는 주소에는 100여 년 전 거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주민들의 목소리가 겹쳐 있다. 과거의 사건을 박물관과 기념비에만 가두지 않고 도시의 현재와 결합한 상징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만세구에는 제암리·고주리 사건을 비롯해 화성 독립운동의 주요 현장이 자리한다. 지역의 지리와 역사, 행정 명칭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면서 도시의 정체성도 더욱 분명해졌다.
역사적 지명을 채택한 것만으로 기억의 계승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에 담긴 의미를 시민과 다음 세대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지속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화성시는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중심으로 희생자 추모와 독립운동사 연구, 교육·전시 활동을 이어 왔다. 기념관은 화성지역 3·1운동의 전개 과정과 독립운동가, 제암·고주리 학살의 진상, 유족들의 삶 등을 알리는 역사교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역사교육을 시민의 일상으로 더욱 넓히는 일이다. 학교 교육과 현장 답사, 시민 참여형 추모사업, 지역 문화·관광 콘텐츠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이 교과서 속 한 줄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의 역사로 제암리와 고주리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직접 걷고,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접할 때 역사는 추상적인 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록 보존과 교육도 강화할 수 있다. 희생자와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사진과 지도, 증언을 결합한 온라인 콘텐츠를 마련한다면 지역과 세대를 넘어 화성의 독립운동사를 알릴 수 있다.
만세구라는 지명 역시 행정 명칭을 넘어 역사문화 자산으로 발전시킬 여지가 크다. 제암리와 고주리, 발안장터 등 독립운동 현장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길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시민 해설사를 육성한다면 ‘기억하는 도시’라는 화성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역사 콘텐츠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희생의 의미가 가볍게 소비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방문객 수를 늘리는 것보다 사건의 진실과 희생자의 존엄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화성특례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인구 100만 명을 넘어 특례시로 출범했고, 4개 일반구 체계를 도입하며 대도시 행정의 틀을 갖췄다.
반도체와 미래차, 바이오 등 첨단산업이 성장하고 대규모 택지개발을 통해 새로운 주민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 도시의 외형과 경제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는 만큼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줄 정체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급성장하는 도시는 자칫 오래된 마을의 역사와 기억을 잃기 쉽다. 새로 조성된 도시와 전통적인 농어촌 지역 사이에 생활환경과 문화적 경험의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때 화성의 독립운동사는 서로 다른 지역과 세대, 생활권을 연결할 수 있는 공동의 자산이 된다. 제암리와 고주리의 역사가 특정 지역 주민만의 기억이 아니라 화성시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역사로 자리 잡을 때 도시의 성장은 깊이를 얻는다.
만세구라는 이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는다. 행정구역 개편이 단순히 조직과 관할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화성이 어떤 가치를 계승할 것인지 보여주는 선언이 됐기 때문이다.
도시 경쟁력은 산업단지의 규모나 인구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이해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도시 정체성으로 확립하는 일은 미래 발전과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광복 81년이 흐르면서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과 교육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기억은 과거를 반복해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 인권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재 세대가 깨닫게 하는 일이다. 동시에 국가폭력과 전쟁, 차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제암리와 고주리의 비극을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열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자유를 오늘의 삶에서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시장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음을 잊지 않겠다”며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 다짐이 일회성 메시지에 머물지 않으려면 기념과 교육, 기록 보존, 시민 참여를 아우르는 지속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광복절과 3·1절, 제암·고주리 추모일뿐 아니라 시민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독립의 가치가 이어져야 한다.
1919년 화성의 주민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07년이 지난 지금, 그 함성은 화성특례시의 행정구역 이름이 돼 시민의 주소와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제암리의 교회와 마을은 불탔지만 독립을 향한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 총칼로 침묵시키려 했던 만세의 함성은 세대를 건너 오늘의 도시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화성이 ‘만세구’를 통해 남겨야 할 것은 단지 독특한 지명이 아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역사를 다음 세대의 미래로 이어가겠다는 시민 공동체의 의지다.
역사를 기억하는 도시만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 광복 81주년을 맞은 화성에서 ‘만세’는 더 이상 과거의 외침만이 아니다. 시민이 매일 부르는 이름이자 미래를 향해 지켜야 할 가치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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