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폐업, 질병으로 생계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닥치는 어려움은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절박한 문제다. 하지만 기존 복지제도에 도움을 요청하려면 신청서를 작성하고 소득과 재산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원이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위기에 놓인 시민에게는 버거운 문턱이 될 수 있다.
의정부시가 운영하는 ‘그냥드림’ 서비스는 이 같은 복지제도의 틈을 먹거리로 메우는 사업이다. 도움이 절실한 시민에게 우선 식품을 제공한 뒤 상담을 통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결하는 ‘선지원·후행정’ 방식이다. 지원 대상인지부터 따지기보다 당장 배고픈 시민의 손을 먼저 잡겠다는 취지다.
김원기 의정부시장은 최근 의정부 푸드뱅크마켓을 찾아 그냥드림 서비스 운영 현황을 살펴봤다고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밝혔다. 김 시장은 현장에서 이용자 현황과 물품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시민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시장은 “필요한 분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현장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이 서비스가 단순히 먹거리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이웃에게 우리 지역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일”이라며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복지의 문턱은 낮추고 살핌은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냥드림의 핵심은 긴급한 상황에 놓인 시민에게 우선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생계가 어려운 시민이 푸드뱅크나 푸드마켓 등에 마련된 그냥드림 코너를 방문하면 복잡한 신청 절차나 소득 증빙 없이 기본적인 식료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경기도의 2026년 사업 운영 기준에 따르면 첫 방문자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최소한의 개인정보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즉석밥과 국, 반찬 등 1인당 2만원 한도에서 5개 안팎의 품목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상담을 진행해 긴급복지, 국민기초생활보장, 민간 후원 등 이용자에게 필요한 제도를 연결한다.
이는 식품 지원과 복지 상담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과정으로 묶은 방식이다. 먹거리는 시민이 부담 없이 복지 현장을 찾게 하는 매개가 되고, 상담은 그동안 행정기관이 발견하지 못했던 위기가구를 찾아내는 통로가 된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지만 지원 기준을 잘 모르거나 행정기관 방문을 망설였던 시민, 소득이 갑자기 끊겼으나 기존 복지제도의 지원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시민도 일단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지원 자격이 있는 사람만 찾아오는 복지’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복지’로 접근 방식을 바꾼 셈이다.
푸드뱅크마켓은 이 과정에서 단순한 식품 배분 장소를 넘어 지역 복지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다. 현장 종사자는 반복해서 방문하는 시민의 생활 상태를 살피고,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를 파악한다. 위기 징후가 확인되면 공공과 민간의 복지자원으로 연결해 보다 장기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김 시장이 현장 점검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식품 몇 가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 상황에 놓인 시민에게 지역사회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현장에서 ‘문턱’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걱정, 도움을 받는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위축도 복지서비스 이용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푸드뱅크마켓은 시민이 직접 방문해 물품을 받는 공간인 만큼 이용자의 자존감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세심한 운영이 요구된다. 대기 과정에서 이용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상담 공간을 분리하며, 이용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현장 응대가 중요하다.
김 시장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먹거리의 양뿐 아니라 지원이 전달되는 방식까지 복지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복지는 제도가 얼마나 많이 마련돼 있는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시민이 실제로 제도를 알고 있는지, 위기의 순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한 뒤 존중받았다고 느끼는지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냥드림은 행정의 기준보다 시민의 긴급성을 먼저 살핀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
그냥드림은 2020년 12월 처음 도입돼 2022년 12월까지 운영된 뒤 다시 추진된 사업이다. 경기도는 2026년 5월 18일부터 본사업을 시작해 당시 20개 시·군에서 운영하고, 하반기에는 31개 시·군 48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가 공개한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총 1만5205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 가운데 2617명이 상담을 받았고, 긴급복지와 기초생활보장, 민간 지원 등을 포함해 413건이 실제 복지서비스로 연계됐다. 먹거리 제공을 계기로 기존 행정망 밖에 있던 위기가구를 찾아낸 것이다.
2026년 그냥드림 사업에는 국비 약 11억5800만원, 도비 약 5억8800만원, 시·군비 약 5억6900만원 등 총 23억1700만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경기도는 사업을 통해 최소한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복지 사각지대 발굴망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도 단위의 전체 이용 실적을 의정부시의 성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의정부시 차원의 이용자 수와 상담·서비스 연계 실적, 품목별 수급 현황은 별도로 집계해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사업이 실제 지역 복지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판단하려면 단순한 식품 제공 건수뿐 아니라 상담과 사후 지원 성과까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드림의 운영 기반인 푸드뱅크는 생산·유통·판매·소비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식품과 생활용품, 기금 등을 기부받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식품 나눔 체계다. 아직 먹을 수 있지만 판매가 어렵거나 유통 과정에서 남은 식품을 폐기하지 않고 필요한 시민에게 전달한다.
푸드마켓은 이용자가 매장을 방문해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운영된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진 식품 꾸러미를 지급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가족 구성과 식생활, 건강 상태에 맞는 품목을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푸드뱅크마켓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기업과 유통업체, 소상공인, 시민의 지속적인 기부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정 시기에는 기부가 집중되지만 평소에는 물품이 부족할 수 있고, 쌀이나 즉석식품 등 일부 품목에 수요가 몰릴 가능성도 있다. 신선식품은 보관과 운송, 소비기한 관리에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김 시장이 이용 현황과 함께 물품 수급 상황을 점검한 것도 이러한 운영 여건과 맞닿아 있다. 서비스의 문턱을 낮춰 이용자가 늘어나더라도 필요한 품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의정부시는 지역 기업과 대형 유통업체, 전통시장, 외식업체, 종교·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기부처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필요한 품목을 공개하고 소액 기부와 현물 후원이 쉽게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한다면 시민 참여도 넓힐 수 있다.
그냥드림이 일회성 식품 나눔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사후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복 이용자가 발견되면 단순히 식품을 추가로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직, 질병, 주거 불안, 돌봄 공백 등 위기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경제적 위기는 대개 한 가지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소득 감소가 임대료 체납으로 이어지고, 식비 절감과 건강 악화가 다시 취업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고령 1인 가구라면 식사 문제와 함께 고립·건강·돌봄 문제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그냥드림 현장에서 확인된 위기가구를 동 행정복지센터, 보건소, 고용·주거 지원기관, 민간 복지단체와 신속하게 연결하는 협업 체계가 필요하다.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정보를 안전하게 공유하고, 지원 이후 생활 상태가 나아졌는지를 점검하는 사후 관리도 뒤따라야 한다.
사업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배분한 식품의 양이나 방문자 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 발견한 위기가구 수, 공공·민간 복지서비스 연계율, 재방문 가구의 위기 해소 정도, 이용자 만족도 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그냥드림이 ‘먹거리를 주는 곳’에서 ‘위기를 발견하고 회복을 돕는 곳’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원 문턱을 낮추는 정책에는 일부 중복 이용이나 제도 악용을 우려하는 시선이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긴급 먹거리 지원은 선별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 지원이 절실한 시민을 놓치지 않으면서 반복 이용 때 상담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는 균형 잡힌 운영이 요구된다.
의정부시가 앞으로 살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먼저 시민들이 서비스의 존재와 이용 방법을 몰라 지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행정복지센터와 의료기관, 고용기관, 학교, 주거복지 현장 등을 통한 안내를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사회적으로 고립된 1인 가구를 찾아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물품의 안정적인 확보와 품질·위생 관리, 현장 종사자와 자원봉사자의 업무 부담 해소도 중요하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상담과 재고 관리, 배분, 복지 연계 업무가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책임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인력과 예산, 교육을 뒷받침해야 한다.
김 시장은 “의정부시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제때 손을 내밀 수 있도록 복지 사각지대를 꼼꼼히 살피겠다”며 “나눔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 관계 기관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한 봉지의 먹거리가 모든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행정과 시민을 잇는 첫 접점이 되고, 더 큰 위기를 막는 출발점은 될 수 있다. 의정부시 그냥드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물품을 나눠 줬는지가 아니라, 그 문을 두드린 시민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고 안정적인 삶으로 연결했는지에 달려 있다.
복지의 문턱을 낮추는 것과 위기가구에 대한 살핌을 촘촘하게 하는 일은 서로 다른 목표가 아니다. 누구든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게 하되, 들어온 시민에게 필요한 지원을 끝까지 연결하는 것. 의정부시가 지향해야 할 ‘먹거리 복지 안전망’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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