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 화성특례시의회가 35년 만에 독립청사 시대를 열었다. 1991년 초대 화성군의회 출범 이후 처음 마련된 단독 청사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산업·도시 규모의 확대 속에서 특례시로 도약한 화성시의 위상에 걸맞은 의정 기반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신청사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의 규모나 외관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독립된 의정 공간이 시민의 목소리를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내고, 지역 현안을 얼마나 신속하고 세밀하게 해결하는 일터가 되느냐가 관건이다. ‘새집’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더 치열하게 일하는 ‘새로운 의정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화성특례시의회는 1일 신청사 1층 로비에서 개청식을 열고 새로운 의정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개청식에는 이계철 화성특례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과 역대 의장단, 정명근 화성특례시장, 국회의원, 경기도 및 인근 지방의회 관계자, 유관기관·사회단체 관계자, 언론인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신청사 건립 경과보고와 기념영상 상영, 건립 유공자 및 지역발전 모범시민 표창, 의정 슬로건 공표, 기념사와 축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공식 발표된 제10대 화성특례시의회의 의정 슬로건은 ‘신뢰는 실천으로, 변화는 의정으로’다. 선언에 머물지 않고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며,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의정활동으로 만들어내겠다는 뜻이 담겼다. 슬로건은 시민 참여를 통해 선정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명근 시장도 이날 개청식에 참석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출발하는 화성특례시의회를 축하했다.
정 시장은 개청식 당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힘찬 출발을 시작하는 의원님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신청사를 바라보니 지난 2024년 첫 삽을 뜨던 순간이 떠올랐다”며 “무더운 날씨 속에서 흙바닥을 밟으며 ‘이곳이 언제쯤 시민 여러분을 위한 공간으로 완성될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첫 삽을 뜬 지 2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신청사는 화성시청 정문 인근 5519㎡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1만1804㎡ 규모로 건립됐다.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 회의실 등 의정활동을 위한 공간뿐 아니라 다목적강당과 커뮤니티실, 의회마루, 홍보전시공간, 북카페 등 시민 편의·소통 시설도 갖췄다.
공간 구성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열린 의회’다. 의회청사가 의원과 공무원만 출입하는 행정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이 찾아와 의정활동을 살피고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됐다. 시민이 의회에 접근하기 쉬워질수록 행정과 정치에 대한 거리감도 줄어들 수 있다.
독립청사 마련은 의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회는 집행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예산을 심의하고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시정을 견제하는 기관이다. 동시에 지역 발전과 시민 복리 증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집행부와 협력해야 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견제만 강조하면 지역 현안 해결이 늦어질 수 있고, 협력에만 무게를 두면 의회의 감시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견제와 협력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책의 타당성, 예산의 효율성, 사업의 시민 체감도를 꼼꼼히 따지는 것이 지방의회에 요구되는 역할이다.
특히 화성시는 지역별 여건이 크게 다르다. 동탄권의 신도시 문제와 서남부권의 교통·생활 기반 확충, 산업단지 주변의 정주 여건 개선, 농어촌 지역의 균형발전 등 권역마다 필요한 정책이 다르다. 반도체·미래차 등 첨단산업 성장에 따른 교통·주거·환경 문제도 동시에 풀어야 한다.
인구 100만 명을 넘어 특례시가 된 화성은 외형적 성장만큼이나 행정 수요도 복잡해지고 있다. 도로와 철도, 교육과 돌봄, 복지, 환경, 안전, 문화 등 시민 생활과 직접 맞닿은 문제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시의회가 과거보다 높은 정책 전문성과 현장 대응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신청사에 마련된 상임위원회별 의정 공간은 이러한 복합 현안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정책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며, 집행부 사업의 효과와 부작용을 사전에 점검하는 의정활동이 뒤따라야 한다.
정 시장은 새 의정 슬로건에 대해 “슬로건에 담긴 다짐처럼 시민 여러분께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성과를 만들어가는 의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신청사 시대의 성패를 가를 핵심 기준이다.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회의실이나 넓어진 업무 공간 자체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줄었는지, 보육과 교육 환경이 좋아졌는지, 골목상권과 기업이 활력을 되찾았는지, 생활 속 위험과 불편이 해소됐는지가 의정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이계철 의장도 개청식에서 신청사를 의회가 누릴 새집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더 부지런히 일하라고 주어진 일터라고 규정했다. 신청사의 진짜 가치는 앞으로 의회가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증명될 것이라는 취지다. 그는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며, 의정활동에 더 큰 책임으로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청사가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 과정을 시민에게 충실하게 공개하고, 주요 조례와 예산안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와 정책토론회, 간담회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의정활동과 연결돼야 한다.
청사 내 커뮤니티실과 의회마루, 북카페 등도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시민 참여의 통로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의회교실과 주민 정책제안 행사, 지역 현안 토론회, 의정자료 전시 등을 정례화한다면 시민이 지방의회의 역할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생활 민주주의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의정활동의 전문성 강화 역시 과제다. 화성시처럼 도시 규모가 크고 산업 구조가 복잡한 지역에서는 개별 사업의 경제성과 환경성, 재정 부담, 시민 편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의원들의 정책 연구를 지원하고 전문위원과 의회사무국의 분석 역량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시민이 의회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의정활동을 객관적인 지표로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조례 제·개정 실적만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조례가 시민 생활을 어떻게 바꿨는지, 예산 심사를 통해 어떤 낭비 요인을 줄였는지, 행정사무감사 지적 사항이 실제로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독립청사 시대는 의회와 집행부의 관계에도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두 기관은 각각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지방자치의 양대 축이다. 주요 정책을 두고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갈등이 정쟁으로 흐르거나 시민의 불편을 장기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정 시장은 “앞으로도 의회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 108만 화성특례시민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겠다”며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모두의 행복, 더 큰 화성’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는 집행부와 의회의 협력이 도시 발전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다만 긴밀한 협력은 무조건적인 동의가 아니라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의회가 집행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집행부가 이를 시정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협력의 가치도 살아난다.
화성특례시의회 신청사는 1991년 초대 화성군의회 출범 이후 35년 만에 마련된 첫 독립청사다. 2000년 11월 남양읍 현 시청사 부지로 이전한 뒤 26년 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
하지만 개청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민의 혈세로 지어진 공간인 만큼 더 투명한 의정활동과 더 엄격한 예산 심사, 더 적극적인 현장 소통으로 그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새 청사에 걸린 슬로건이 현수막 속 문구에 머물지 않고 조례와 예산, 정책으로 구현돼야 한다.
‘신뢰는 실천으로, 변화는 의정으로.’ 화성특례시의회가 내건 이 약속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35년 만에 열린 독립청사 시대가 화려한 건물의 등장으로만 기록될지, 108만 시민의 삶을 바꾼 의정 혁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을지는 앞으로 의회가 보여줄 실천과 성과에 달렸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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