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화성특례시가 저장 강박으로 고립된 시민을 제도적으로 돕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화성특례시의회는 24일 열린 제242회 제1차 정례회 제3차 본회의에서 위영란 의원이 대표 발의한 ‘화성시 저장 강박 의심 가구 지원 조례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번 조례는 저장 강박 증세로 인해 주거환경이 폐쇄되고,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인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굴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조례안은 단순한 환경정비 차원을 넘어선다. ▲지원 대상의 선정 절차 ▲저장 강박 실태 조사 실시 ▲자원봉사 연계 지원 ▲지역 내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 방안 등 다층적 지원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복지, 정신건강, 주거환경 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저장 강박 가구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이번 조례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6월 발생한 고령 독거노인의 극단적 사례다. 화성시 화산동에 거주하던 80대 노인이 수십 년간 저장 강박 증세로 인해 각종 생활 폐기물이 가득 찬 공간에서 홀로 생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외부와 단절된 채 폐쇄된 공간에서 고립되어 지내던 노인은 민·관 협력으로 이루어진 복지담당자와 이웃의 설득 끝에 도움을 받아 점차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화산동 주민 김정순(66) 씨는 “그분을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늘 조용히 지내시고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셨죠. 이번 일을 계기로 시가 세심하게 살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라며 제도적 대응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위영란 의원은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위생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사각지대가 만들어낸 복합적 위기 상황”이라며 “이번 조례를 통해 저장 강박으로 인해 위험에 놓인 시민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현장에서 활동 중인 자원봉사자들도 제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역 자원봉사단체 ‘행복나눔회’ 김민지 대표는 “실제로 저장 강박이 있는 가정을 돕다 보면 단순 청소가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신뢰 형성이 중요합니다. 시와 함께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저장 강박을 단순한 성격 특성이나 청결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은경 교수는 “저장 강박은 종종 트라우마, 상실, 불안 장애와 연관된 정신건강 문제다. 이를 방치하면 삶의 질 저하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고립과 위생·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화성시처럼 지자체 차원에서 제도적 개입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화성시는 향후 이 조례를 바탕으로 각 동 행정복지센터와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민간 자원봉사단체 등이 연계된 협력체계를 구축해 현장 중심의 선제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실태조사 매뉴얼 마련, 민관 협업 체계 구축, 정비·청소 서비스 제공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준비 중이다.
이번 조례 통과를 통해 화성시가 저장 강박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고립된 공간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데서부터, 지역 공동체의 진정한 복지와 연대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례는 상징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가진 의미 있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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