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6월 27일 경기도의회 소회의실에선 잊혀진 국가폭력의 비극을 다시 마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은미 의원이 주최한 ‘선감학원 화해와 치유를 위한 정담회’가 열려,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과 역사·문화 공간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 유해 안치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됐다.
동시에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통과됐다. 선감학원의 공식 폐원일인 10월 1일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오랜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드디어 제도적 울림이 더해지고 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부터 1982년까지, 경기 안산 선감도에 위치한 아동 수용시설이었다. 보호자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소년들이 강제로 수용돼 노동과 폭력에 시달리며 비극적인 삶을 이어갔다.
정담회 현장에는 피해 생존자 가족도 자리했다. 김영호(가명·67세) 씨는 당시 선감학원에 끌려갔던 형의 이름을 몇 해 전 유해 명단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형이 없어졌을 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선감학원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게 됐고, 형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졌다. 이제라도 제대로 추모하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현재 수습된 155구의 유해는 인근 공설묘지로 이장될 예정이지만, 시민사회는 이에 그치지 않고 상징적 공간 조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안산시민네트워크, 평화아카데미, 수원여성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단순 납골당이 아닌 역사와 교육이 함께하는 추모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지 안산시민네트워크 활동가는 “선감학원은 국가가 가한 폭력의 실체이다. 기억의 공간은 단지 조형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올해 건축기획 용역을 시작으로 오는 2027~2028년 착공을 목표로 역사·문화 복합 공간 조성에 나설 예정이다. 이은미 의원은 “피해자, 지역사회, 시민단체가 함께 만드는 치유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통과된 조례안은 선감학원 사건의 공식적인 ‘기억의 날’을 지정한 상징적 제도다. 조례에 따라 매년 10월 1일은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되어, 경기도 차원의 추모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안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최지은(29세) 씨는 “선감도가 가까운 곳이지만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 이제라도 추모의 날이 지정돼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례 제정과 정담회 개최를 두고 “진정한 과거사 복원의 시작”이라며 평가했다.
이정훈 한국인권정책연구소 박사는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배려는 민주사회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거를 복원한다는 건 단순히 상처를 덮는 게 아니라, 드러내고 말하는 용기이다”라고 말했다.
장윤석 평화교육 활동가는 “선감학원은 단지 한 시절의 비극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어떻게 사각지대에서 폭력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치유 공간은 다음 세대가 이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배움의 장’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은미 의원은 “선감학원은 우리 근현대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라며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시민사회의 뜻이 반영된 공간이 되도록, 도의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담회와 조례 제정은 선감학원 사건을 둘러싼 진상 규명과 치유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억은 지속돼야 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계속 울려야 한다.
이제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침묵을 깼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보듬고 공감하는 일이 남았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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