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 북부의 한 철도역 이름이 해외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양특례시 대곡역 이야기다.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은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대곡역이 일본에서 ‘오타니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넘어 세계적 스포츠 아이콘이 된 오타니 쇼헤이의 이름과 한자 표기가 같다는 점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다. 한글로는 대곡(大谷), 로마자로는 Daegok.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이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단순한 웃음거리를 넘어 도시 브랜드 전략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철도망의 결절점이라는 물리적 가치에 더해, 이름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상징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대곡역은 GTX-A, 지하철 3호선,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수도권 광역 교통망 재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 역이 이제는 ‘글로벌 에피소드’라는 새로운 서사를 얻고 있다.
도시 브랜딩의 세계에서 ‘이름’은 강력한 자산이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뉴욕의 브루클린, 도쿄의 시부야처럼 지명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기능한다. 대곡역 사례는 그 출발점이 다르다. 의도된 전략이 아니라 우연한 언어적 중첩에서 비롯됐다. 일본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온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름 하나가 도시의 인지도를 넘어 감정적 반응을 자극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연은 기회일 뿐, 전략이 뒤따르지 않으면 일회성 화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역 브랜드 컨설턴트들은 공통적으로 ‘스토리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다. 단발성 밈(meme)으로 소비되는 대신, 도시 정체성과 연결되는 내러티브로 확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곡역의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교통이다. GTX-A 개통과 함께 수도권 북서부 접근성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대곡역의 전략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서울 도심과의 시간 거리 단축, 광역 생활권 통합, 주변 지역 개발 촉진 효과는 이미 다양한 정책 보고서에서 언급돼 왔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물리적 가치와 상징적 가치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대곡역은 단순한 환승역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 ‘이동의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한다. 여기에 글로벌 에피소드가 더해지면서 역은 기능적 공간에서 문화적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될 가능성을 얻는다.
도시사회학자들은 이를 ‘인프라의 문화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철도, 공항, 항만 같은 기반 시설이 단순한 물류 장치를 넘어 도시 서사를 구성하는 핵심 무대로 변모하는 흐름이다. 실제로 유럽 주요 도시의 중앙역들은 공연, 전시, 문화 이벤트를 통해 도시 이미지를 재구성해 왔다.
이동환 시장의 발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스포츠 한류도 좋지만, 이참에 ‘고양 한류’도 더 넓게 퍼지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도시 브랜드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지방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을 암시한다.
지방 도시의 글로벌 인지도는 대개 대형 이벤트, 산업 클러스터, 관광 자원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프트 파워, 즉 이야기와 이미지의 힘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도시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구조화하느냐다. 관광 콘텐츠로 연결할 것인가, 도시 마케팅 캠페인으로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문화 프로그램과 결합할 것인가. 대곡역 사례는 도시 브랜딩 전략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대곡은 대곡입니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대곡이라면 더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지향성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다. 이는 도시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민이다. 지역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국제적 매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다.
대곡역의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이 지닌 해석과 의미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지역 문화, 역사, 도시 이미지와 연결되면 그 자체로 상징 자산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의미의 재맥락화’라고 부른다. 동일한 지명이 새로운 서사를 통해 다른 가치로 읽히는 과정이다.
이번 사례가 도시 정책 차원에서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첫째, 글로벌 시대의 도시 경쟁력은 물리적 인프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둘째, 우연한 관심을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셋째, 도시 스토리텔링은 행정이 아닌 문화의 영역과 결합할 때 지속력을 얻는다.
대곡역 해프닝은 작은 이야기다. 그러나 도시 브랜드의 세계에서는 작은 이야기가 때로 거대한 변화를 촉발한다. 이름 하나, 사진 한 장, 방문객의 호기심이 도시 이미지를 바꾸는 시대다. 대곡역이 교통의 심장을 넘어 어떤 서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지, 이제 관심은 그 다음 장면으로 향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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