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행정서비스의 풍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주민등록과 세금 납부, 복지 신청, 각종 민원 접수까지 과거 행정기관 창구에서 처리하던 업무 상당 부분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편리함은 커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속도를 똑같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화면이나 입력장치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디지털 환경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민에게 ‘디지털 행정’은 오히려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
또 행정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접속하기 어려운 사람’ 사이의 공공서비스 이용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이런 문제를 단순한 정보화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접근권’의 문제로 다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이채명 의원이 대표발의한 ‘경기도 디지털포용 조례안’이 18일 제393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8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미래과학협력위원회에서 원안 가결된 데 이어 본회의 의결까지 마치면서 의회 심사 절차를 마쳤다.
이번 조례의 특징은 디지털 정책의 시선을 ‘기술을 배우는 사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으로 돌렸다는 데 있다.
기존 정책이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고 기기를 지원하는 데 상대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조례는 공공 디지털서비스 자체가 도민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지를 살피도록 정책 범위를 확장했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도민이 행정의 디지털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행정이 도민의 다양한 속도를 고려해야 하는가.’ 이채명 의원은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디지털 전환 초기에는 정보 격차를 주로 기기 보유 여부나 인터넷 사용 능력의 차이로 바라봤다. 컴퓨터가 없거나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장비와 교육을 제공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AI가 공공서비스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문제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공공기관 홈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민원을 신청하고, 키오스크를 이용해 서비스를 선택하고, 본인 인증을 거쳐 각종 행정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단순히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디지털 접근권’이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
서비스의 구조가 복잡하거나 글씨가 작고, 인증 과정이 어렵다면 이용자는 사실상 서비스에서 배제될 수 있다. 장애와 연령, 소득, 거주지역, 디지털 이용역량 등에 따라 같은 행정서비스를 놓고도 접근 가능성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조례안이 마련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조례는 AI와 모바일 행정서비스, 무인정보단말기 등 지능정보기술이 공공서비스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 격차를 줄이는 것을 주요 취지로 삼았다.
특히 정책 대상을 특정 정보취약계층에서 ‘모든 도민’으로 확장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존 ‘경기도 정보취약계층 정보화 지원 조례’가 정보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교육과 기기 지원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새 조례는 공공 디지털서비스 접근성 확보와 디지털 배제 예방까지 정책 범위를 넓혔다.
이는 디지털 격차를 개인의 능력 부족만으로 보지 않고 서비스 설계와 행정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도 접근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례에는 디지털포용 정책을 실제 행정에 적용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담겼다. 우선 디지털포용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추진 성과를 점검하도록 했다. 도민의 디지털서비스 이용역량과 공공서비스 접근성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정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도민들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생활밀착형 디지털역량 및 윤리교육도 추진한다. 단순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실제 필요한 디지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이다. 디지털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상담과 현장지원, 보조인력 연계 등도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비디지털 대체수단’이다. 행정서비스가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되더라도 디지털 방식만을 사실상 유일한 통로로 만들지 않고, 필요한 경우 다른 방법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조례에는 이 밖에도 지능정보서비스 접근성 보장과 디지털포용 영향평가 지원 등이 포함됐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는 시행계획을 기존 지능정보화 시행계획에 포함해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정책 자문 역시 기존 지능정보화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행정 중복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됐다. 경기도의회 공식 자료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확인된다.
결국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방식보다는 기존 행정체계 안에 ‘디지털포용’이라는 기준을 넣겠다는 접근이다.
이어 디지털 행정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성이다. 주민이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반복적인 민원을 자동화하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AI가 행정에 본격 도입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효율성 중심의 전환 과정에서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디지털서비스 이용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5분이면 끝날 일이 누군가에게는 한 시간 넘게 걸릴 수 있고, 결국 주변 사람이나 행정기관 직원의 도움 없이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포용 정책의 핵심은 디지털 전환 자체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있다.
이채명 의원도 이 점을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은 행정의 효율성과 도민의 편의를 높이는 혁신이어야 한다”며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도민이 공공서비스 이용에서 불이익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기술의 속도를 도민이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도민의 속도를 함께 살피도록 하는 것이 이번 조례의 취지”라고 했다. 디지털 정책의 기준을 ‘얼마나 빨리 전환했는가’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전환했는가’로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아울러 디지털 소외는 거창한 곳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음식점이나 병원, 공공시설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이용 방법을 몰라 한참을 머뭇거리는 고령층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공공서비스가 모바일 중심으로 바뀌면서 본인 인증이나 앱 설치, 비밀번호 입력, 각종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 단계씩 놓고 보면 어렵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단계가 겹치면 디지털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특히 공공서비스는 일반 소비 서비스와 성격이 다르다. 음식점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어렵다면 다른 가게를 찾을 수도 있지만 복지나 세금, 민원 등 공공서비스는 이용 자체를 포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공영역에서 디지털 접근성은 편의의 문제를 넘어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연결된다. 이번 조례가 단순한 디지털기기 교육을 넘어 서비스의 접근성과 사용성, 대체수단까지 정책 대상으로 포함시킨 배경이다.
이 의원은 조례가 “공공 디지털서비스의 접근성과 사용성, 대체수단까지 살피는 제도적 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례 제정만으로 디지털 격차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시행계획과 실태조사, 사업 설계, 예산이 뒤따라야 한다.
어떤 계층이 어떤 디지털서비스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정책 역시 공급자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것과 실제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 교육이 도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복지관과 도서관, 주민센터 등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설과 연계한 현장형 교육과 상담이 중요한 이유다.
이채명 의원 역시 조례 통과 이후의 실행을 강조했다. “조례 통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시행계획이 실질적으로 수립되는지, 실태조사가 도민의 어려움을 제대로 담는지, 필요한 예산이 뒷받침되는지 계속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정책의 성패를 판단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몇 차례 교육을 실시했는지, 몇 명이 참여했는지와 같은 단순한 실적을 넘어 교육을 받은 주민이 실제 공공서비스를 스스로 이용할 수 있게 됐는지까지 확인하는 평가 체계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지역 현장을 활용한 구체적인 모델도 제시했다. 안양지역 장애인복지관과 노인복지관, 도서관 등을 연계해 ‘찾아가는 디지털·AI 교육’을 추진하고 이를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하는 방안이다.
교육 대상자가 교육장을 찾아오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으로 교육과 지원이 찾아가는 형태다.
이 같은 방식이 현실화된다면 디지털 교육의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AI 활용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디지털 교육의 범위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이용법을 익히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AI 기반 서비스의 이용법과 개인정보 보호, 정보의 신뢰성 판단, 디지털 윤리 등까지 교육 범위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조례가 생활밀착형 디지털역량뿐 아니라 윤리교육까지 포함한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경기도의회 공식 회의록에 따르면 ‘경기도 디지털포용 조례안’은 18일 열린 제393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제107호 안건으로 상정됐다. 경기도의회 공식 보도자료 역시 이채명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례안이 이날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확인했다.
조례가 던지는 문제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가깝다. AI까지 행정서비스에 접목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의 초점은 ‘디지털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디지털로 가는 과정에서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
빠른 서비스가 반드시 모두에게 편리한 서비스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모바일 민원은 몇 번의 터치만으로 끝나는 편리한 행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본인 인증부터 막히는 높은 장벽일 수 있다.
공공서비스라면 그 차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조례가 담고 있는 기본 방향이다. 결국 조례의 실효성은 앞으로 경기도가 마련할 시행계획과 실태조사, 예산, 현장 지원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채명 의원이 밝힌 대로 기술의 속도에 도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도민의 서로 다른 속도를 얼마나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AI 시대의 행정 경쟁력도 결국 가장 빠른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필요한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 역시 행정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 디지털포용 조례’가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민원 현장과 복지관, 도서관, 주민들의 스마트폰 화면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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