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존중부터 딥페이크까지 또래의 시선으로 재해석
김보라 시장 “좋아하는 일에 도전할 기회 확대”
[이코노미세계]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무대 위에 선 청소년들이 춤과 연기, 영상으로 세상에 던진 메시지다. 완성된 작품은 전문 예술가의 공연처럼 화려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학생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청소년 자살과 딥페이크 범죄 등 우리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자신들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청소년들은 누군가가 정해준 대본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보고, 또래가 겪는 고민을 꺼내 문화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춤은 몸짓을 넘어 하나의 발언이 됐고, 연극은 사회문제를 비추는 거울이 됐다. 영상은 청소년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또 다른 창이 됐다.
경기 안성시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가 함께 마련한 ‘2026 K-런케이션(Learncation) 캠프’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문화예술 체험행사가 아니라 지역 대학의 전문 교육 역량과 시설을 청소년 진로교육에 연결하고, 학생들이 창작의 주체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다.
김보라 안성시장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열린 캠프 폐막식에 참석한 소식을 전했다. 김 시장은 학생들이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영상을 완성하고 연극과 댄스 공연까지 무대에 올린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 시장은 “완성도도 놀라웠지만, 학생들이 작품에 담아낸 생각은 더욱 인상적이었다”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부터 청소년 자살 문제, 딥페이크 문제까지 지금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진지하면서도 재치 있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번 캠프는 안성시 RISE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안성지역 중·고등학생들이 댄스와 연기, 영상 제작 분야를 직접 배우고 체험하는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대학의 전문 시설에서 분야별 교육을 받고,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하나의 작품을 기획해 무대와 영상으로 구현했다.
4박 5일은 예술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기에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낯선 참가자들과 팀을 이루고, 주제를 정하고, 대본과 동선을 맞추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상 제작은 기획과 촬영, 편집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연극과 댄스 공연 역시 반복적인 연습과 협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학생들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각자 역할을 나누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수업을 듣는 수강생에 머물지 않고 직접 기획하고 표현하는 창작자로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술적 기술뿐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의견을 조율하는 법,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책임지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문화예술 교육의 가치는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하나의 공연과 영상을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겪은 고민과 협력, 시행착오가 모두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 몇 분의 공연 뒤에는 수없이 반복한 연습이 있고, 짧은 영상 한 편 뒤에는 기획과 촬영, 편집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가 있다.
이번 캠프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교육의 본질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와 어려워하는 분야를 확인하고, 타인과 협력할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교실에서 지식을 전달받는 방식과 달리, 자신이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가 무대와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학생들이 선택한 작품의 주제다. 청소년들은 다름에 대한 존중, 청소년 자살, 딥페이크 등 자신들의 일상과 밀접하거나 또래 사회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를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익숙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청소년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절실한 과제다. 외모와 성격, 관심사, 가정환경, 성적 등 다양한 차이가 때로는 편견과 배제의 이유가 된다. 학생들은 작품을 통해 차이를 서열화하거나 틀린 것으로 규정하지 말고, 한 사람의 고유한 모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청소년 자살 문제는 더욱 무거운 주제다. 학생들이 이 문제를 작품에 담았다는 것은 또래의 고통을 자신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고민을 알아차리고, 혼자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청소년들의 문제의식이 문화예술을 통해 표현된 셈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악용한 딥페이크 문제 역시 청소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기기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청소년에게 온라인 공간의 범죄와 폭력은 현실 세계의 문제만큼 직접적이다. 장난이나 호기심으로 시작한 행위가 타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줄 수 있고, 개인의 인격과 존엄을 침해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딥페이크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기존의 예방교육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캠프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석하고 또래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청소년이 교육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윤리를 이야기하는 주체로 나선 것이다.
김 시장은 “단순히 춤을 배우고, 연기를 하고, 영상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었다”며 “학생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 생각을 문화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해보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재치 있는 표현 방식을 선택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무거운 주제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면 관객이 쉽게 거리감을 느낄 수 있지만, 춤과 연극, 영상은 메시지를 보다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사회문제를 가르치는 도구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통로가 된 것이다.
이번 캠프의 또 다른 의미는 지역 대학의 전문성과 시설을 지역 청소년과 공유했다는 데 있다. 안성에는 방송·영상·공연예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동아방송예술대학교가 있다. 지역 청소년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전문적인 문화예술 교육을 접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지역에 대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학의 교육 자원이 자동으로 지역사회에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학교가 협력해 청소년이 대학의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도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넓히고, 지역은 대학의 전문 역량을 주민의 삶과 교육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K-런케이션 캠프는 대학을 지역사회와 분리된 교육기관이 아니라, 청소년의 배움과 도전을 지원하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했다. 학생들은 멀리 떠나지 않고도 전문 시설과 교육환경을 경험했다. 방송과 공연, 영상 제작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에게는 막연했던 진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됐다.
직접 카메라를 다루고, 무대에 서고, 작품 제작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직업과 전공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결과뿐 아니라 그 뒤에 필요한 연습과 협업, 전문성까지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캠프 참여를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학생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자신의 적성과 다른 점을 확인한 학생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진로를 찾아가는 데 필요한 값진 경험이다.
김 시장은 “안성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라는 훌륭한 문화예술 교육 자원이 있다”며 “지역 대학의 전문성과 시설을 청소년들과 나누고, 청소년들은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끼와 가능성, 진로를 직접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역과 대학이 함께 성장하는 RISE사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RISE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고, 대학의 역량을 지역 발전과 연계하려는 사업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교육과 산업, 문화, 정주 여건을 잇고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역 안에서 성장시키는 것이 핵심 방향이다.
지역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일부 지역 집중과 지역 이탈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유리된 채 학생 교육에만 머문다면 지역과 대학이 함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이 보유한 교수진과 시설, 교육 프로그램을 청소년과 주민에게 개방하면 대학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넓힐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새로운 시설을 별도로 건립하지 않고도 지역에 있는 전문 교육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청소년은 거주지역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화예술 교육의 격차를 줄이고, 가까운 곳에서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얻는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지역과 대학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전문적인 무대와 촬영·편집 장비, 분야별 지도 인력 등을 개별 학교가 모두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관련 학과와 시설을 갖춘 대학이 지역 청소년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면 기존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교육의 전문성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일회성 캠프에 그치지 않으려면 후속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 캠프에서 재능과 관심을 발견한 학생이 관련 동아리나 심화교육, 진로 상담으로 이어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교육 참여 기회를 더 많은 학생에게 넓히고, 가정환경이나 정보 격차 때문에 참여에서 소외되는 청소년이 없도록 세심한 지원도 요구된다.
학생들의 작품을 지역 축제나 청소년 행사,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창작 결과물이 캠프 폐막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지역사회 역시 청소년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이해하는 계기를 얻는다.
청소년 진로교육은 직업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학생이 직접 해보고 실패도 경험하며 자신의 흥미와 역량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 분야는 이런 체험의 중요성이 특히 크다. 춤과 연기, 영상 제작은 책이나 설명만으로 적성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캠프에서 학생들은 관객이 아니라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영상을 소비하는 데서 벗어나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공연을 관람하는 대신 자신들이 대본을 만들고 연기했다. 수동적인 문화 향유자에서 능동적인 창작자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청소년들의 생각도 중요한 지역 자산이다. 어른들이 청소년을 정책과 교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학생들의 실제 고민은 가려지기 쉽다. 청소년들이 작품으로 제기한 다양성, 생명 존중, 디지털 범죄 문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듣고 답해야 할 목소리다.
캠프가 보여준 것은 청소년에게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이 예상보다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관찰하고 있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그 생각을 밖으로 꺼내고 다른 사람과 나눌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을 뿐이다.
문화예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 학교생활이나 또래 관계에서 겪은 고민, 디지털 공간에서 느낀 불안,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받은 상처도 춤과 연기, 영상 안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표현될 수 있다. 표현의 경험은 학생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캠프는 4박 5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학생들이 얻은 경험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처음 무대에 올랐던 기억, 팀원들과 의견을 조율했던 과정, 자신들의 이야기에 관객이 반응했던 순간은 앞으로의 진로와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런 경험이 한 번의 특별한 추억으로만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이 관심 분야를 계속 탐색할 수 있는 교육과 활동을 연결하고, 지역 대학과 학교, 지방자치단체가 지속 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김 시장은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직접 도전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캠프를 함께한 김상교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총장과 대학 관계자, 학부모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4박 5일 동안 치열하게 배우고 준비해 멋진 결과를 보여준 학생들의 생각과 꿈을 응원한다”고 했다.
교육은 학생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질문을 발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타인과 함께 답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또 다른 역할이다.
안성의 청소년들은 이번 캠프에서 춤과 연기, 영상 제작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확인했고,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웠다. 지역 대학은 학생들에게 교실과 무대를 내줬고, 학생들은 그 공간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채웠다.
지역의 대학이 청소년에게 문을 열고, 지방자치단체가 그 만남을 연결할 때 대학은 지역의 교육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 청소년 역시 익숙한 생활권 안에서 자신의 재능과 진로를 발견할 수 있다.
2026 K-런케이션 캠프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완성된 공연과 영상만이 아니다. 청소년이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는 교육의 객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주체임을 보여준 데 있다. 4박 5일의 짧은 도전이 의미 있는 이유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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