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자산화·혁신센터 앞세워 민생경제와 사회적 가치 연결
[이코노미세계] 13년을 기다린 법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14년 처음 발의된 뒤 세 차례 국회를 거치면서 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했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적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역 곳곳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버텨온 사회연대경제 조직들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련된 제도적 전환점이라는 의미가 크다.
법 통과 소식에 누구보다 남다른 감회를 밝힌 사람이 박승원 광명시장이다. 박 시장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법 국회 통과 소식을 전하면서, 2010년 경기도의원 당선 이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의원 연구모임을 만들고 현장 학습과 토론회를 이어온 과정을 되짚었다. 2021년에는 사회연대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법 통과를 단순한 정치권의 성과로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적 울타리 없이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오늘 기본법이 제정된 소식을 접했을 때 기쁨보다 먼저 온 것은 지난 시간을 법도 없이 견뎌낸 현장에 대한 미안함이었다”며 “오늘의 통과는 국회가 만든 성과이기 이전에 그 자리를 지켜온 분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했다.
이 발언에는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걸어온 지난한 과정과 함께, 제도가 현장의 변화보다 뒤늦게 따라왔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 통과를 계기로 광명시의 지난 8년간 정책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광명시는 사회연대경제를 단순한 복지정책이나 특정 조직 지원사업으로 한정하기보다 지역의 문제를 시민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는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접근해왔다.
특히 정책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역공동체 자산화’,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 설립’, 돌봄·지속가능관광·공정무역 등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연대경제조직 육성을 추진해왔다. 또 시는 이 같은 사업들을 지난 8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지역에서 벌어들인 가치가 다시 지역에 축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지역공동체 자산화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공간과 자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장기간 지역 활동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역경제가 외부 투자와 대규모 개발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과 지역 조직이 주체가 돼 자산을 축적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 역시 이러한 생태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거점으로 볼 수 있다. 개별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지역 안에서 조직과 시민, 행정이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돌봄과 지속가능관광, 공정무역 등을 사회연대경제 영역으로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령화와 돌봄 공백, 지역 상권 침체, 환경 문제 등 지방정부가 직면한 문제를 행정의 재정 투입만으로 해결하기보다 시민과 지역 조직이 경제활동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광명시가 강조하는 것도 결국 ‘시민’이다. 박 시장은 지난 8년간의 성과를 언급하며 “이 모든 성과에는 결국 시민이 함께했다”고 평가했다.
사회연대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시장경제를 대체하기 때문이 아니다. 시장과 공공 부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의 빈틈을 시민과 공동체,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조직 등이 경제활동을 통해 메우는 데 의미가 있다.
지역경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구구조 변화와 골목상권 위축, 돌봄 수요 증가, 청년층 유출, 지역 간 격차 등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대규모 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축이라면, 주민의 삶과 밀접한 영역에서 경제적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요소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연대경제 조직은 지역 문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돌봄이 부족한 곳에서 돌봄 서비스를 만들고, 침체한 지역에서는 관광과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며, 공정무역과 친환경 소비 등을 통해 시민의 소비를 사회적 가치와 연결하는 식이다.
그동안 이러한 활동이 개별 지방정부의 조례나 사업, 정책 의지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다면 기본법 통과는 사회연대경제를 보다 안정적인 제도 영역에서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박 시장이 법 통과 이후에도 “앞으로 우리는 할 일이 더 많이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 하나가 만들어졌다고 지역 현장의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관심은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지역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에 모인다. 제도가 실제 지역경제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연대경제 조직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동시에 기존 민생경제 정책과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 시장이 향후 과제로 제시한 것도 사회연대기금, 지역공동체 자산화, 민생경제 활성화다. 그리고 이들 정책을 통해 “함께 따뜻한 경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사회연대기금은 향후 사회연대경제 생태계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사업 초기뿐 아니라 성장 단계에서도 안정적인 금융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 자산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임대료 상승이나 개발 여건 변화로 공동체 활동 기반이 사라지는 문제를 줄이고, 지역에서 만들어진 경제적·사회적 가치가 다시 지역에 남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사회연대경제와 민생경제를 어떻게 결합할지도 관건이다. 사회연대경제가 별도의 정책 영역에 머물 경우 시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돌봄, 일자리, 관광, 문화 등 주민 생활과 맞닿은 정책과 결합될 때 비로소 지역경제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본법 제정은 사회연대경제 정책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선에 가깝다.
이번 기본법 통과로 광명시에도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지난 8년 동안 축적해온 정책을 법적·제도적 변화와 어떻게 연결하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성과로 확장하느냐가 중요해졌다.
특히 지역공동체 자산화와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 돌봄·관광·공정무역 분야의 사회연대경제 조직 육성 경험을 하나의 지역경제 생태계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정책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사회연대경제는 단기간에 수치로 성과를 평가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조직이 성장하고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확보하며 일자리와 서비스, 공동체 활동으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정책 의지가 바뀌더라도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시민 참여 구조를 만드는 것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광명시가 지난 8년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러한 구조를 구축한다면 기본법 통과 이후 지방정부 차원의 사회연대경제 모델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과 제도가 실제 시민의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 자체는 시민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돌봄과 일자리, 골목상권, 관광, 공정무역, 공동체 공간 등으로 구체화하면 주민의 일상과 직접 연결된다. 행정 역시 제도와 조직 중심의 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이 실제 어떤 변화를 체감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2014년 발의된 이후 세 차례 국회를 거치는 긴 시간을 지나야 했다. 폐기와 재발의가 반복되는 동안에도 현장의 사회연대경제 조직들은 활동을 이어갔다. 박 시장은 이들을 향해 “긴 시간을 견뎌낸 사회연대경제 조직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며 응원의 뜻을 전했다. 또 “13년의 기다림에 응답해 준 국회의 노력을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법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법률의 존재만으로 지역경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연대경제가 지역의 일자리와 돌봄, 공동체 회복, 골목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시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광명시가 지난 8년 동안 추진해온 정책 역시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지역공동체 자산화와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구축한 기반을 민생경제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
13년에 걸친 기다림 끝에 법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리고 광명에서는 이미 8년 전부터 준비해온 ‘현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기본법이라는 제도적 토대 위에서 광명시의 사회연대경제 실험이 시민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지역경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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