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의회·지역 의료계·보건소 협력으로 공공 출산 기반 마련
현금성 지원 넘어 출산·산후조리 인프라 강화에 정책 초점
“민간과 공공이 함께 상생하는 시흥시”, 지속가능한 운영이 과제
[이코노미세계]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로 굳어진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출산정책도 변하고 있다. 출산지원금이나 육아수당 같은 현금성 지원을 넘어, 임신과 출산·산후조리·돌봄까지 이어지는 생활밀착형 인프라를 지방정부가 직접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가 문을 연 ‘공공산후조리원’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공산후조리원 개원 소식을 알리며 “뜻깊은 시작이다. 드디어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이 문을 열었다”며 “출산과 육아정책에 공공이 더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단순히 산후조리시설 하나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저출생 시대 지방정부가 출산 인프라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시흥시의 정책적 선택이라는 의미다.
출생아 감소는 단순히 인구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출산과 관련된 지역 의료·돌봄 인프라가 약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출생아가 줄면 분만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이나 산후조리시설의 안정적인 운영도 어려워질 수 있다. 출산 인프라가 위축되면 산모들은 거주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의료기관과 산후조리시설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되고, 이는 다시 지역의 출산·육아 여건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임 시장 역시 이런 현실을 공공산후조리원 설립의 배경으로 꼽았다. “저출산 시대 분만 인프라가 하나둘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산후조리원도 그렇다. 그래서 공공이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모분들과 어린 생명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출산과 산후조리를 개인과 가정의 책임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특히 지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출산 장려를 넘어 의료와 돌봄을 포함한 기반시설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 시흥시의 공공산후조리원은 출산 이후 산모와 신생아를 지원하는 공공 인프라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공산후조리원 개원까지는 약 3년의 준비 과정이 있었다. 임 시장은 공공산후조리원이 문을 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시흥시의회와 지역 의료계, 보건소 공직자들의 협력을 꼽았다.
그러면서 “지난 3년 전 시흥시의회 김선옥 의장님과 의원님들의 적극적인 조례 제정과 예산 승인이 있었다”고 밝혔다.
공공시설은 행정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근거와 예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방의회의 동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의 경우도 조례와 예산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 선행됐다는 점에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함께 출산정책의 틀을 만든 사례로 볼 수 있다.
지역 의료계의 역할도 있었다. 임 시장은 “중앙산부인과를 사명감으로 지켜오셨던 최준열 원장님의 큰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출생 시대에 지역의 분만 의료기관을 유지하는 문제는 지방정부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실제 현장에서 산모를 진료하고 출산을 담당하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참여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정의 실행력이 더해졌다. 임 시장은 “보건소 공직자들의 적극행정이 함께했다. 모두 다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지역 의료계, 행정조직이 각각의 역할을 맡아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공공산후조리원의 또 다른 의미는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생 대응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방정부의 출산정책은 출산축하금이나 각종 지원금 등 경제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저출생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현금성 지원만으로 출산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가까운 곳에 있는지, 출산 이후 산모와 신생아가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지, 육아 과정에서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등 실제 생활환경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공공산후조리원은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지역의 출산·육아 인프라 가운데 하나로 볼 필요가 있다. 임신에서 출산, 산후조리와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어느 지점까지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생아 감소로 민간 서비스의 공급이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공공이 일정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시흥시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공공산후조리원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공공이 산후조리 영역에 직접 참여할 경우 기존 민간 산후조리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공공서비스 확대가 자칫 민간 영역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지역 전체의 출산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당초 취지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시장이 개원 메시지에서 ‘민간과 공공의 상생’을 별도로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민간 분만 인프라와 민간 산후조리원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며 “민간과 공공이 함께 상생하는 그런 시흥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공산후조리원의 역할을 민간시설을 대체하는 데 두기보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하고 지역 전체의 출산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앞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과 민간이 각각의 장점을 살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산모들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면 지역의 출산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공공과 민간이 단순 경쟁구도를 형성한다면 장기적으로 지역 출산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개원 이후에는 시설 운영 자체뿐 아니라 기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 등 지역 의료·돌봄기관과 어떤 협력체계를 구축하는지가 중요하다.
저출생 문제는 한두 개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교육비와 양육비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정부가 출산율 자체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지방정부의 역할이 작은 것은 아니다. 시민이 실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을 때 안전하게 출산할 의료환경이 있는지, 출산 이후 산모와 아이가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공공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도시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 개원을 단순한 시설 개관 뉴스가 아니라 ‘도시의 출산 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 저출생이 장기화할수록 민간의 경제성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필수서비스 영역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디까지 민간과 협력할 것인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산후조리원은 바로 그 경계선에 놓여 있다.
이제 시흥시의 과제는 공공산후조리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시설을 만드는 것과 시민들이 신뢰하는 공공서비스로 정착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산모와 신생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이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공공산후조리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산부인과와 보건소, 육아지원기관 등 기존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정책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공공산후조리원의 성과 역시 단순한 이용자 숫자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산모들의 만족도와 접근성, 지역 출산 인프라 유지에 미친 영향, 민간 의료·산후조리기관과의 협력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원은 정책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임 시장도 “잘 운영해 가겠다”고 밝혔다.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의 문이 열리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다. 지방의회가 제도와 예산의 토대를 마련하고 지역 의료계가 힘을 보탰으며 보건소 공직자들이 행정력을 더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민들의 평가다. 저출생 시대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려는 시민들이 지역에서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시흥시 공공산후조리원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지방정부의 저출생 대응이 단순한 ‘출산 장려’를 넘어 ‘출산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정책’으로 전환되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지역의 출산 인프라를 지키겠다는 시흥시의 실험은 이제 시작됐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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