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정신·문화유산 가치 시민과 공유
역사·예술·교육 결합한 체험형 축제로 변신
[이코노미세계] 400년 세월을 견뎌온 성곽이 다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로 채워진다. 전쟁과 위기의 순간에는 나라를 지키는 보루였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 된 남한산성. 올해는 남한산성 성곽 축성 400주년이라는 특별한 의미까지 더해졌다.
경기 광주시가 이 역사적 시간을 시민과 함께 되돌아보는 대규모 역사문화축제를 연다. 광주시문화재단이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남한산성 도립공원 일원에서 ‘제31회 광주시 남한산성문화제’를 개최한다.
올해 문화제의 핵심은 단순한 축제 개최에 있지 않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이 지켜온 가치와 호국정신을 되새기고, 역사·문화·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유산을 오늘의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도록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무엇보다 ‘성곽 축성 400주년’이라는 상징성이 축제 전체를 관통한다. 남한산성을 과거의 유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공연과 체험, 음식과 관광, 역사교육을 통해 현재의 공간으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축제의 문을 여는 첫 무대부터 ‘400년’이라는 시간이 전면에 등장한다. 9월 18일 남문주차장 메인무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서는 주제공연 ‘400년의 기억, 내일을 여는 산성’이 펼쳐진다.
남한산성 축성 당시부터 오늘날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기까지 이어진 400년의 시간을 약 20분간의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이어 퓨전국악과 팝페라 공연이 축제의 시작을 장식한다.
문화유산 축제가 자칫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나열하는 데 머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주제공연의 방향은 눈여겨볼 만하다. 남한산성이 지나온 시간을 현재의 시민 생활과 연결하면서 ‘남한산성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공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구성이다.
남한산성은 이제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 동시에 시민들이 걷고 쉬고 문화를 즐기는 생활공간이 됐다. 올해 문화제는 바로 이 두 가지 의미를 한 무대에 올린다.
둘째 날인 19일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른다. 남한산성문화제의 기원이 된 ‘대동굿’이 이날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광주시를 대표하는 예술인 단체인 광주예총의 문화예술 공연과 남한산성 권역 7개 문화원 연합회의 공연이 이어진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문화예술과 접점을 넓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광주시를 대표하는 연극단체 극단 파발극회가 대형 창작뮤지컬 ‘달을 태우다’를 무대에 올린다.
‘달을 태우다’는 남한산성을 소재로 역사와 문화를 풀어낸 작품으로, 2016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했다.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지역 예술인이 공연 콘텐츠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문화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축제는 역사 콘텐츠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는 문어’, ‘상사화’ 등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보이그룹 엠파이어(M.pire) 메인보컬 출신 가수 이승현의 공연도 마련된다.
전통문화와 대중문화, 지역 예술인과 대중가수를 한 무대에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찾을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마지막 날인 20일에도 남한산성 곳곳이 공연장이자 역사교실로 변한다. 메인무대에서는 남창동 줄타기 공연이 펼쳐진다. 팽팽한 줄 위에서 펼쳐지는 묘기와 재치 있는 입담을 통해 전통연희의 흥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한다.
인화관에서는 축제 기간 말 문화 체험이 운영되고, 남한산성 전통무예단 ‘무예도보통지’가 수어장대 건립과 이회 장군, 이름 없이 나라를 지킨 5개 장대 무사들을 기리는 전통무예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저녁 프로그램은 역사와 대중문화의 접목이 돋보인다.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이 마련되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역사 강사 최태성이 관람객들과 만난다.
최태성은 영화 속 역사적 고증과 실제 역사의 차이를 짚으며 남한산성의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할 예정이다.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을 실제 역사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역사교육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을 어렵게 느끼는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화제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축제 공간이 특정 무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통공원과 행궁, 남문주차장, 도립공원 일대 등 남한산성 곳곳에 프로그램을 배치해 관람객이 직접 움직이며 축제를 경험하도록 했다.
전통공원에서는 ‘산성빌리지’가 사흘간 운영된다. 조선시대 캐릭터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투호 던지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네컷사진을 비롯해 남한산성 관련 설화 속 인물인 서흔남을 소재로 한 체험, 떡메치기, 박 터뜨리기 등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마지막 날에는 왕좌와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사진을 인화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역사문화축제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시도다. 역사를 설명문으로 읽는 대신 놀이하고, 사진을 찍고,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한산성과 만나게 하는 방식이다.
행궁에는 ‘찾아가는 도서관’이 들어선다. 남한산성 관련 도서를 비롯해 다양한 책을 자유롭게 읽으며 쉴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민다. 축제장을 단순히 돌아본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 안에서 잠시 머물며 책을 읽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남문주차장에서는 남한산초등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매듭 체험, 손바느질, 배지 만들기 등을 즐길 수 있다. 공방과 공예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마켓’도 열린다.
성곽과 자연을 함께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도립공원 일대에서는 남한산성의 역사를 따라 걷는 ‘산성 트래킹’과 생태환경을 직접 관찰하는 ‘산성 생태체험’이 진행된다. 이는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이 가진 강점을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성곽이라는 역사문화유산뿐 아니라 산과 숲, 생태환경까지 축제의 콘텐츠로 확장한 것이다.
지역경제 측면에서는 ‘산성식객’이 주목된다. 축제 기간 남문주차장에서는 남한산성 상인협회가 참여하는 산성식객이 운영된다. 남한산성 일대의 대표 음식과 특산물을 한자리에서 소개하고 지역 상인들이 직접 참여한다.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열리는 축제가 주변 상권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사장 방문객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방문객의 움직임을 주변 음식점과 상점, 관광자원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서는 지역 상인들이 축제의 한 축으로 참여한다. 남한산성만의 음식과 특산물을 문화제 콘텐츠에 포함함으로써 역사문화축제를 지역경제와 연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실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축제 이후 방문객과 소비 관련 자료 등을 통해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올해 남한산성문화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경험’이다. 대동굿과 줄타기 같은 전통공연을 보고, 창작뮤지컬과 대중가수 공연을 즐긴다. 한복을 입고 전통놀이를 체험하며, 성곽길을 걷고 남한산성의 생태환경을 살펴본다.
영화로 역사를 접한 뒤 역사 강사의 해설을 통해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과거 문화유산 축제가 유적을 보여주고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문화제는 시민이 문화유산 속으로 들어가 직접 체험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책 속에 있던 역사를 현실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다. 부모 세대에게는 가족과 함께 문화유산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공연과 체험에 현대적인 문화예술 콘텐츠를 결합해 남한산성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겠다는 것이 주최 측의 구상이다.
남한산성은 긴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계속 달라져 왔다. 나라를 지켜야 했던 산성에서 역사적 유산으로, 다시 시민들의 휴식과 관광·문화 공간으로 역할이 확장됐다.
성곽 축성 400주년을 맞은 올해 문화제가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문화유산은 보존만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며 다음 세대에 그 가치를 전달할 때 문화유산은 현재성을 얻는다.
제31회 남한산성문화제가 공연과 역사교육, 전통문화, 생태체험, 지역상권 등을 폭넓게 연결한 이유도 이 같은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
400년 전 쌓아 올린 성벽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성곽의 의미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9월 18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남한산성문화제는 그래서 단순한 지역축제를 넘어선다.
400년 전 만들어진 성곽 위에 오늘의 문화와 시민의 이야기를 더하고, 다시 다음 400년의 남한산성을 생각해보는 자리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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