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무더위와 한파를 피하고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생활의 터전이자, 사람이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낡은 벽지와 장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 외풍이 스며드는 창문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가는 이웃이 적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집을 고치지 못하는 주거 취약계층에게 계절의 변화는 곧 생존의 문제가 된다.
파주시가 이 같은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지역 건설업계 및 전문단체와 손을 잡았다. 행정이 지원 대상을 발굴하고 민간이 자금과 전문성을 보태는 ‘민관 협력형 주거환경 개선’ 모델을 통해서다. 단순한 성금 전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생활공간을 고쳐 시민의 일상을 바꾸겠다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파주시는 3일 시청 접견실에서 ‘2026년 파주형 하우징 주거환경개선사업’ 기탁식을 열었다. 이번 기탁에는 파주지역건축사회와 동문건설, 라인산업, 제일건설, 에이치엘디앤아이한라(HL디앤아이한라),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등 6개 기관·기업이 참여했다.
이들이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내놓은 기탁금은 모두 3000만원이다. 파주시는 기탁금을 활용해 지역 내 취약계층 30가구를 선정하고, 각 가구의 주거 상태와 생활 여건에 맞는 집수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은 그동안 생계비나 난방비 등 현금성 지원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이러한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노후 주택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비가 새는 지붕이나 곰팡이가 핀 벽, 단열 기능이 떨어진 창호, 고장 난 보일러는 일회성 생활비 지원만으로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주형 하우징 사업’은 지원의 초점을 집 자체에 맞춘다. 취약계층이 생활하는 주택의 문제점을 직접 살펴보고, 도배와 장판 교체부터 개수대 수리까지 가구별로 필요한 공사를 시행한다. 획일적으로 같은 품목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불편과 위험 요소를 확인해 맞춤형으로 개선하는 방식이다.
집 안의 작은 고장도 거주자의 연령과 건강 상태에 따라서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장판이 들뜨면 고령자에게 낙상사고의 원인이 되고, 습기와 곰팡이는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낡은 개수대와 배관은 위생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집수리가 단순히 주택의 외관을 깨끗하게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복지정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특히 이번 사업에는 지역에서 건축과 건설 분야의 전문성을 축적해 온 기관과 기업이 참여했다. 주거환경 개선은 공사 범위와 자재,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 경험을 갖춘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간 참여가 기탁금 제공을 넘어 전문성과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사업의 완성도도 높아질 수 있다.
파주지역건축사회와 건설사들이 참여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지역 주민의 주거 문제 해결에도 책임 있게 참여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도배나 장판을 새로 바꾸는 일반적인 집수리에 그치지 않는다. 파주시는 한국에너지재단과 협력해 단열 및 창호 공사, 냉난방기와 보일러 교체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공사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노후 주택에 사는 취약계층은 주택의 단열 성능이 떨어져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는 난방을 해도 열기가 창문과 벽을 통해 빠져나가고, 여름에는 냉방기를 가동해도 실내 온도가 쉽게 올라간다. 소득이 낮을수록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주택에 거주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냉난방비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단열재와 창호를 개선하고 노후 보일러나 냉난방기를 교체하는 것은 단순한 시설 보수가 아니다. 매달 지출되는 에너지 비용을 줄여 취약계층의 생활비 부담을 낮추는 장기적인 지원책이다. 한 번의 공사로 주거 안전성과 쾌적성, 에너지 비용 절감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함께 기대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한파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주거환경 개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냉난방 설비가 부족하거나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주택은 기상재해에 취약하다. 특히 홀몸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은 실내 온도 변화가 건강 악화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
‘파주형 하우징 사업’이 복지와 주택, 에너지 정책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취약계층의 집을 고치는 일이 곧 폭염·한파에 대비하는 안전정책이자, 에너지 빈곤을 완화하는 생활밀착형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정확하게 발굴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지원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거동이 불편해 행정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주민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와 복지 담당 부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지역 복지망을 활용한 세심한 대상자 발굴이 필요하다. 지원이 시급한 가구를 우선 선정하고, 주택 상태와 가족 구성, 건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장 진단도 중요하다. 가구마다 필요한 공사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지원 기준만 적용해서는 체감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어떤 가구에는 도배와 장판 교체가 시급하고, 다른 가구에는 보일러나 창호 교체가 더 절실할 수 있다. 누수나 전기시설 문제처럼 안전과 직결된 위험 요소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사업을 관리하며, 건축·건설 분야의 민간 전문가는 현장 조사와 공사에 힘을 보태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에너지재단과 같은 전문기관의 지원이 더해지면 복지와 건축, 에너지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형 주거지원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공사 이후의 점검도 빼놓을 수 없다. 지원 가구가 개선 효과를 실제로 체감하는지, 추가로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사 전후의 주거 상태와 에너지 사용 여건을 살피고 지원 대상자의 만족도를 점검한다면 향후 사업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근거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기탁은 지역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도시의 복지정책과 연결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개별 기업이 일회성으로 물품이나 성금을 전달하는 데서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체계 안에서 공동 목표를 세우고 자원을 모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제 선택적인 이미지 제고 활동을 넘어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건설·건축 분야 기업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현장 경험을 활용해 주거복지 분야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사회 입장에서도 민간의 참여는 복지사업의 범위와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힘이 된다. 지방재정만으로 모든 복지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과 단체의 자발적인 참여는 행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려면 선의에만 의존하기보다 참여 주체별 역할과 지원 절차, 사후관리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올해 30가구를 대상으로 추진되는 사업의 성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우수사례를 축적할 필요도 있다. 수혜 가구의 생활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냉난방비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 주민의 건강과 안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한다면 더 많은 기관과 기업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단순한 집수리를 넘어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안전시설 설치, 화재·가스 사고 예방시설 보강 등으로 지원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주거 취약계층이 처한 상황을 세분화하고 생애주기와 건강 상태에 맞는 지원으로 발전시킬 때 ‘파주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지역 특화 주거복지 모델이 될 수 있다.
손배찬 파주시장은 기탁에 참여한 파주지역건축사회 김원겸 회장과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신왕섭 전무, 동문건설·라인산업·제일건설·HL디앤아이한라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손 시장은 “사시사철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집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라며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기업과 단체의 기탁금과 재능기부를 바탕으로 주거 취약계층의 낡은 집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고치고, 단열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소중한 정성을 사용하겠다”며 “지역사회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주신 참여 기관과 기업의 나눔은 ‘상생으로 함께 사는 파주’를 만드는 든든한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또 “파주시도 소외되는 이웃 없이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밝혔다.
집 한 채를 고치는 일은 벽지와 장판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추위를 견뎌야 했던 주민에게 따뜻한 겨울을 돌려주고, 무더위에 노출됐던 이웃에게 안전한 여름을 선물하는 일이다. 낡고 불편한 집 때문에 위축됐던 삶에 안정과 존엄을 되찾아 주는 일이기도 하다.
파주시가 시작한 민관 협력형 주거복지가 일회성 기탁을 넘어 지속 가능한 지역 복지체계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 성패는 지원 가구의 숫자만이 아니라, 집을 고친 뒤 주민의 일상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해졌는지에 달려 있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저작권자ⓒ 이코노미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