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설계 단계부터 주민 참여”, 현장 중심 행정 강조
[이코노미세계] 행정의 성패는 정책을 얼마나 많이 내놓느냐보다 시민이 겪는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고서와 회의 자료만으로는 골목의 불편이나 재난 현장의 위험을 온전히 읽기 어렵다. 단체장이 읍·면·동으로 직접 출근해 주민을 만나고 현장을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현덕 남양주시장이 6일 다섯 번째 ‘현장시장실’ 일정으로 호평동을 찾았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주요 현안을 보고받은 뒤 백봉산 일대 수해 현장과 노인복지시설을 점검하고, 주민들과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시장이 하루 동안 읍·면·동에 머물며 현장을 살피는 방식으로, 지역별 생활 민원을 시정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호평동 현장시장실에서는 수해 예방과 노인복지, 공공의료원, 하천 관리, 주차 공간 확충, 경로당 신설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과거 수해가 발생했던 백봉산 일대에서는 사방공사가 끝난 뒤에도 토사 유출이 계속되는 것으로 확인돼 추가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 시장은 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호평동 현장시장실 운영 내용을 공개하며 “현장을 찾길 잘했다”며 “주민 안전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 시장은 이날 오전 호평동 행정복지센터로 출근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 공간과 민원 현장을 둘러봤다. 이어 관계 공무원들로부터 지역의 주요 사업과 현안에 관한 보고를 받은 뒤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첫 현장 점검지는 백봉산 아래 수해 우려 지역이었다. 이곳은 몇 년 전 두 차례 수해 피해가 발생한 뒤 올해 봄 사방공사가 시행된 지역이다. 사방공사는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토사와 빗물을 조절해 산사태와 하류 지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상황은 공사를 마쳤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 어려웠다. 공사 구간 주변에서 토사 유출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는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유출된 토사가 인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난 대응은 과거 피해를 복구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사 완료 여부보다 실제 현장에서 시설이 제 기능을 하는지, 새로운 위험 요인이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최 시장은 현장에서 토사 유출 상태와 주변 지형, 아파트 단지와의 거리 등을 살핀 뒤 관계 부서 회의를 지시했다. 단순 보완 공사를 넘어 배수 체계와 토사 이동 경로, 추가 사방시설 설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최 시장은 “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토사 유출이 진행되고 있었다”며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질 경우 바로 옆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피해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점검은 재난 예방 행정에서 현장 확인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서류상으로 공사가 완료됐더라도 실제 위험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산지와 주거지가 맞닿은 지역은 작은 토사 유출도 집중호우 때 큰 피해로 번질 수 있어 선제적인 점검과 보강이 필요하다.
최 시장은 이어 해피누리복지관을 방문해 폭염 대응 상황과 프로그램 운영 실태를 살폈다. 복지관은 무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하고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복지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복지관에서는 스마트폰 사용법을 비롯해 일본어·중국어 강습, 포켓볼, 탁구,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부터 외국어와 체육·문화 활동까지 어르신들의 사회 참여와 건강한 일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다.
노인복지관은 단순한 여가시설을 넘어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을 막고 건강과 돌봄을 연결하는 지역 복지의 거점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폭염이 장기화할 때는 냉방시설을 갖춘 안전한 쉼터이자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
남양주시는 별내 지역에도 노인복지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시설 확충과 함께 프로그램의 질과 이용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건물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별 인구 구조와 이용자의 수요를 반영한 운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최 시장은 해피누리복지관의 운영 현황을 살핀 뒤 “복지시설은 건립 자체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시설의 내실 있는 운영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현장시장실의 핵심 일정은 호평동 주요 기관·단체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한 주민 간담회 ‘시장 쫌 만납시다’였다. 간담회에서는 호만천 관리와 공공의료원, 주차시설 확충, 경로당 신설, 평내호평역 주차장 부지의 주민 편의시설 확충 등 지역 현안이 폭넓게 논의됐다.
주민들이 제기한 문제는 일상생활과 직결된 사안이 대부분이었다. 하천 관리와 수해 예방은 안전 문제이고, 주차장과 주민 편의시설은 생활환경의 질을 좌우한다. 공공의료원과 경로당은 고령화와 의료 접근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 기반 시설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간담회에서는 사업 추진이 가능한 사안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요구도 다뤄졌다. 최 시장은 산 정상 전망대 설치 등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에 대해서는 불가 사유를 설명했다. 재정 부족으로 사업 일정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예산 상황과 지연 원인을 알리고, 관계 기관 또는 부서 간 협의가 늦어지는 사업은 절차를 서두르겠다고 답했다.
주민과의 소통은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업 추진이 어렵다면 법적·재정적 한계와 불가능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가능한 대안이나 향후 검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행정의 답변이 명확할수록 주민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정책에 대한 신뢰도 높일 수 있다.
다만 현장 간담회가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으려면 주민 건의 사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후속 절차가 필요하다. 건의 내용을 담당 부서에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토 결과와 추진 일정, 불가 사유를 주민에게 다시 알려야 현장 소통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 시장은 지역에 조성되는 공공시설의 설계와 공간 배치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시설이 완공된 뒤 의견을 듣는 방식에서 벗어나 초기 계획과 설계 단계부터 실제 이용자인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시설은 건립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고 한 번 완공하면 구조와 공간을 변경하기 쉽지 않다. 설계 과정에서 주민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추가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이용 대상과 동선, 프로그램 운영 방식 등을 사전에 주민과 논의하면 시설의 활용성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주민 참여를 제도화하려면 대표성이 확보된 의견 수렴 구조도 필요하다. 일부 단체나 특정 연령층의 의견에 치우치지 않도록 아동과 청소년, 청년, 고령층, 장애인, 영유아 양육 가정 등 다양한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설문조사와 주민 설명회, 이용자 협의체, 설계안 공개 등의 방식을 사업 특성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최 시장은 “주민들이 사용할 공간인 만큼 그 누구보다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주민자치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최 시장은 이날 일정을 마친 뒤 호평동 행정복지센터 직원들과 지역 음식점을 찾아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음식점은 축구선수 오현규의 부모가 운영하는 곳으로 소개됐다. 최 시장은 오 선수의 부모와 인사를 나누고, 튀르키예에서 활동하는 남양주 출신 오 선수를 응원하며 호평동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현장시장실은 시장이 주민 생활권으로 직접 들어가 지역의 문제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읍·면·동마다 인구 구조와 교통, 주거환경, 복지 수요가 다른 만큼 시청 중심의 일률적인 행정만으로는 지역별 문제를 세밀하게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 방문 자체가 성과가 될 수는 없다. 백봉산 수해 우려 지역에 어떤 보완책이 마련되는지, 호만천과 주차시설 등 주민 건의 사항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공공시설 설계 과정의 주민 참여가 실제 제도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현장에서 확인된 재난 위험은 신속성이 생명이다. 관계 부서 회의 이후 정밀점검과 대책 수립, 예산 확보, 공사 시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구체화해야 한다. 주민 건의 사항 역시 단기·중기·장기 과제로 구분하고 진행 상황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현장 행정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단체장이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지가 아니라, 방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다섯 번째를 맞은 남양주시 현장시장실이 단순한 소통 행사를 넘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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