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조성된 고등지구에는 약 4000세대가 입주해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이들이 늘었지만 정작 이곳에는 중학교가 없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매일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권을 벗어나 먼 거리의 중학교로 통학해야 한다.
더욱이 고등지구 주변은 서울공항 등 지리적 여건으로 인근 지역과의 접근성마저 제한돼 있다. 학생들에게 중학교 진학은 단순히 학교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매일 상당한 거리를 오가는 ‘장거리 통학’의 시작이 되고 있다.
학교를 세울 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고등동에는 1만㎡가 넘는 학교 용지가 확보돼 있다. 그러나 현행 학교 설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중학교 신설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를 지을 땅까지 있는데 왜 중학교가 들어설 수 없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의회 문승호 의원이 이 같은 고등지구의 교육 공백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문 의원이 1일 경기도교육청 국제교육원에서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이상철 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 교육장, 관계 공무원, 고등동 학부모들과 함께 고등지구 중학교 신설 필요성을 논의했다. 핵심은 학생들이 생활권 안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였다.
고등지구 학생들이 겪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통학이다. 현재 왕남초등학교 졸업생들은 낙원중·야탑중·삼평중·이매중 등 4개 중학교로 분산 배치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등하교에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생들은 사설 통학차량까지 이용한다. 중학생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가정에서 별도의 교통비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통학 거리가 길어지면서 학생 안전 문제도 따라온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하교 후 다시 장시간 이동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장거리 통학으로 인한 수면 부족과 체력 저하, 등하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교육 문제를 단순히 ‘학교 배치’ 차원에서만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다. 학교가 생활권에서 지나치게 멀어지면 학생들의 하루 일과 자체가 달라진다. 통학에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 방과 후 학습이나 휴식, 친구들과의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특히 고등지구처럼 지리적 접근성에 제약이 있는 지역에서는 학교와 집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학생들의 교육 여건과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 의원과 학부모들이 이번 논의에서 생활권 내 중학교 설립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장거리 통학에 따른 학생들의 수면 부족과 체력적 부담, 등하교 안전 문제를 제기했다.
고등지구의 중학교 문제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학생 수 변화다. 왕남초등학교 학생 수는 2020년 222명에서 2025년 약 600명으로 늘었다. 5년 만에 약 2.7배로 증가한 것이다.
공공택지 개발과 입주가 이어지면서 지역의 교육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문제는 고등지구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주변 중학교 역시 수용 여건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2025년 기준 낙원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29.6명, 야탑중학교는 28.7명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인 24.9명보다 각각 4.7명, 3.8명 많다.
교원 1인당 학생 수도 마찬가지다. 낙원중은 교원 한 명당 학생 16.1명, 야탑중은 16.4명으로 전국 평균 11.8명을 웃돈다. 결국 고등지구에 중학교가 없다는 문제를 주변 학교로 학생을 분산 배치하는 방식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의 학생 배치는 가능할 수 있지만 지역 내 학생 수가 계속 증가한다면 기존 학교의 교육 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지구 중학교 신설 문제가 특정 아파트 단지나 일부 학부모만의 민원에 머물지 않고 성남지역 학교 배치와 교육환경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고등지구에 학교를 지을 땅이 이미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 고등동에는 현재 1만㎡ 이상의 학교 용지가 있다. 택지개발 과정에서 학교 부지를 확보해 놓았지만 실제 중학교 설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학교 설립 기준이다. 고등지구에 중학교를 설립할 경우 예상되는 학급 수는 최대 18학급이다. 그러나 단설 중학교 설립 기준은 21학급, 학생 수로는 588명이다.
예상 학급 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학교 용지가 있어도 단설 중학교를 세우기 어려운 구조다. 초·중 통합학교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자료에 따르면 부지가 단절돼 있어 통합학교 추진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고등지구 문제는 ‘학교가 필요한가’라는 수요의 문제와 ‘현행 기준상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가’라는 제도의 문제가 충돌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통학 불편이 현실화됐고 초등학생 수도 빠르게 증가했지만, 학교 설립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학생 수와 학급 수를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 간극이 수년간 교육 공백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학교 신설은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학생 수와 학급 규모, 향후 인구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교 설립을 경제성과 규모의 논리로만 판단할 경우 고등지구처럼 특수한 지리적 조건을 가진 지역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학생 수가 학교 설립 기준에 조금 못 미친다는 이유로 학교를 만들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특히 고등지구의 경우 서울공항으로 인해 인근 지역과의 접근성이 제한된다는 지역적 특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한 직선거리만으로 통학 여건을 판단해서는 실제 학생들이 체감하는 이동 부담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왕남초 학생 수가 5년 동안 급증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택지개발지구는 입주 시점과 연령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교육 수요가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학교 설립을 검토하는 시점의 학생 수만으로 장기간의 교육 수요를 판단할 경우 실제 입주 이후 상황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고등지구 사례는 도시개발과 학교 공급 계획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아파트와 도로, 공원 등 도시 기반시설을 조성하면서 학교가 적기에 공급되지 못하면 결국 학생들이 생활권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승호 의원과 학부모들은 기존의 단설 중학교 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제도를 활용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도시형캠퍼스’다. 2025년 12월 '경기도교육청 도시형캠퍼스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으며, 2026년 1월에는 '도시형캠퍼스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다.
문 의원과 학부모들은 이를 근거로 변화하는 교육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교육감에게 요청했다. 이는 고등지구 중학교 문제의 접근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학교 설립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학생 수와 통학 여건,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학교 모델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특히 학생 수 감소가 전국적인 교육 현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모든 지역에 대규모 학교를 세우는 방식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일정 규모 이하라는 이유로 학교를 전혀 설치하지 않는다면 개발지역이나 교통 취약지역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될 수 있다. 소규모·도시형 학교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다.
문승호 경기도의원은 이번 논의를 통해 고등지구 중학교 문제를 단순한 학교 신설 민원이 아닌 학생들의 통학 안전과 교육권의 문제로 제기했다. 특히 단설 중학교 설립이 현행 기준상 어렵다면 도시형캠퍼스 등 새로운 제도를 활용한 현실적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학교를 ‘세우느냐, 세우지 않느냐’의 이분법을 넘어 학생들의 실제 통학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고등지구에는 이미 약 4000세대 규모의 생활권이 형성돼 있고 초등학생 수는 크게 증가했다. 그럼에도 중학교가 없어 아이들은 매일 생활권을 벗어나야 한다. 주변 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도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반면 지역에는 1만㎡가 넘는 학교 용지가 확보돼 있다. 필요성과 공간이 존재하지만 ‘21학급’이라는 기준을 넘지 못해 학교 설립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고등지구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학교를 세울 만큼 학생이 많은가’만 따질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안전하고 적정한 거리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가’까지 학교 설립 정책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다.
학교 신설 기준은 한정된 교육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획일적인 수치 기준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통학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보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규모 택지개발지역에서는 주택 공급과 학교 공급 시점이 어긋날 경우 그 피해를 입주민과 학생들이 장기간 떠안게 된다.
도시계획 단계부터 향후 학생 수 변화와 통학권을 세밀하게 예측하고, 기존의 대규모 단설학교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소규모 학교나 도시형캠퍼스 등 다양한 모델을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고등지구 문제 역시 이제 교육당국의 구체적인 해법이 필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학생 수가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주변 학교로 계속 분산 배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마련된 제도를 활용해 생활권 안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학교 부지는 이미 있다.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매일 왕복 1시간 이상을 통학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기존의 숫자와 기준을 넘어 학생들의 실제 생활과 교육권을 반영한 해법을 마련하는 일이다. 성남 고등지구 중학교 문제가 경기도교육청의 새로운 학교 설립 정책을 시험하는 사례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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