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저소득층·야외 노동자 등 기후재난 취약계층 주목
탄소중립 성과도 참여 인원 아닌 ‘실제 감축량’으로 평가 제안
[이코노미세계] 기후위기 대응의 무게중심을 ‘선언’에서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구리시의회에서 나왔다. 탄소중립이나 온실가스 감축을 거창한 구호에 머물게 하지 말고 도시개발과 교통, 공원, 건축, 복지, 일자리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지방행정 전반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재난의 피해가 모든 시민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기후정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제안이 주목된다.
구리시의회 이정희 의원은 9월 21일 제362회 구리시의회 제1차 정례회 제3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이 강조한 핵심은 분명하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은 중앙정부의 정책 현장만이 아니라 시민이 생활하는 도시이며, 지방정부가 시민의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이 환경 담당 부서만의 업무라는 기존 인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개발과 교통, 건축에서 복지와 일자리까지 구리시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기후’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정책의 실질적인 성과를 온실가스 감축량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결국 이 의원의 제안은 ‘구리시는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 지방정부 행정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오랫동안 환경정책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폭염과 집중호우, 홍수 등 기후재난이 시민의 일상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지방정부 차원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 의원 역시 기후위기를 환경 분야의 단일 정책 과제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홍수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례를 언급하며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어르신과 저소득 가구,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시민, 야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일수록 기후재난에 더욱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기후정의’다. 기후위기를 단순히 기온 상승이나 탄소배출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누가 더 큰 피해를 받고 있으며, 정책 과정에서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의원의 발언이 복지정책과 기후정책의 접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폭염이 닥쳤을 때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와 실내에서 근무하는 시민이 겪는 위험은 같지 않다. 주거환경에 따라서도 기후재난을 견딜 수 있는 여건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기후대응 정책 역시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정책’에 머무르기보다 지역과 계층별 위험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이유는 시민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도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공원과 녹지를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대중교통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공공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 상당 부분이 지방행정과 연결돼 있다.
이 의원은 지방정부가 지역의 위험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실질적인 실행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가 국가적인 탄소중립 목표와 큰 정책 방향을 마련한다면 지방정부는 이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정책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구리시의 기후행정 역시 단순한 캠페인이나 일회성 행사를 넘어 일상적인 행정 체계 안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자연스럽게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걷기 편한 길을 만들고 자전거 이용 환경을 개선하며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도시숲과 그늘을 확대하는 것도 시민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기후대응 정책으로 제시됐다.
기후정책을 시민의 불편과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생활환경과 안전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의원의 제안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 주체를 환경 담당 부서에서 구리시 행정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의원은 도시개발·교통·공원·건축·복지·일자리 등 주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할 때 ‘기후’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별도의 사업 하나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행정정책 전반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도시개발 정책을 검토할 때 개발 규모와 경제성뿐 아니라 에너지 사용과 이동수단, 녹지 확보 등 기후적 요소를 함께 살펴보고, 교통정책 역시 차량 이동뿐 아니라 보행·자전거·대중교통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건축과 공공시설에서도 에너지 효율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복지 분야에서는 기후재난에 취약한 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정책 과제가 될 수 있다.
일자리 분야 역시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발언의 문제의식이다. 결국 행정 부서별로 분리돼 있던 사업에 ‘기후’라는 공통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는 지방정부의 기후정책을 몇몇 친환경 사업의 집합이 아니라 도시행정 전체를 관통하는 정책 기준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선언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고 구리시가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첫째는 공공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확대다.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시설부터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해 공공부문이 탄소감축을 선도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둘째는 걷기와 자전거, 대중교통 활성화다. 시민들이 승용차 이용을 줄이도록 단순히 권고하는 것보다 보행·자전거·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도시숲과 그늘 확대다. 이는 녹지 확대라는 환경적 의미와 함께 시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생활밀착형 기후정책으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재사용과 자원순환 확대다. 한 번 사용한 물품을 폐기하는 소비구조에서 벗어나 재사용을 활성화하고 자원이 순환하는 구조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이들 정책은 분야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시민의 일상적인 생활방식과 도시 공간을 변화시켜 실질적인 탄소배출 감소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이번 발언에서 정책적으로 주목할 또 하나의 대목은 ‘성과 측정’이다. 이 의원은 기후 관련 정책의 성과를 행사 횟수나 참여 인원으로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온실가스 감축량을 측정하고 이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방정부 정책에서 행사 횟수와 참여 인원은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나 탄소중립 정책이라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사를 몇 번 열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느냐는 것이다.
또 정책 평가의 기준 자체를 ‘사업 수행’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옮기자는 의미다. 실제 감축량을 측정하고 공개할 경우 정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사업이 실질적인 탄소감축 효과를 냈는지 시민이 확인할 수 있고, 효과가 부족한 사업은 개선하거나 정책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후정책의 성과를 시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사업을 했다’는 행정 중심의 설명에서 ‘사업을 통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는 성과 중심의 행정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지방정부의 복지정책 역시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된다. 이 의원이 어르신과 저소득 가구, 열악한 주거환경의 시민, 야외 노동자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재난의 피해가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면 지방정부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위험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복지정책이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지방정부는 지역별 주거환경과 생활환경, 취약계층의 상황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의원이 지방정부를 ‘시민의 삶과 가까운 곳에서 지역의 위험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실질적인 실행 주체’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기후정의라는 개념을 지방행정에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재난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시민을 찾아내고, 정책과 예산을 통해 그 위험을 줄여가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이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현실화하려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공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일,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만드는 일,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 도시숲과 그늘을 확대하는 일, 자원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각각 작은 정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도시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시행되면 시민의 생활방식과 도시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 의원이 강조한 것도 바로 ‘작지만 제대로 된 실천’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기간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도시의 구조와 시민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특정 사업이나 행사에 의존하기보다 도시계획과 교통, 건축, 복지 등 일상적인 행정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지속적으로 고려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5분 자유발언은 구리시 기후행정에 몇 가지 분명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환경 담당 부서의 업무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행정 전체의 공통 과제로 확대할 것인지가 첫 번째다.
탄소중립 정책의 성과를 행사와 참여 인원으로 평가할 것인지, 실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결과로 평가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 기후재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민을 지방정부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도 빠질 수 없다. 무엇보다 정책의 중심을 ‘선언’에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의원은 이날 발언을 마무리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구체적인 현장이 바로 지방정부”라고 강조했다. 이어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것이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구리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기준을 놓치지 않고 시민의 일상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을 주문했다.
기후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지만 시민이 그 영향을 경험하는 공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더욱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리시가 앞으로 도시개발과 교통, 공원, 건축, 복지, 일자리 정책 속에 기후라는 기준을 어떻게 반영할지, 탄소감축 정책의 실질적인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시민에게 공개할지가 주목된다.
기후위기를 거대한 담론에서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후재난에 더 취약한 시민을 살피는 것. 이정희 의원이 던진 ‘기후정의’의 화두는 결국 구리시 기후행정의 성패를 선언의 크기가 아니라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와 실제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모아진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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