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불편부터 보육환경·틈새돌봄·오산에 바라는 점까지 청취
작은 생활민원을 도시정책으로 연결하는 이동시장실 확대
[이코노미세계] 시장실의 위치를 바꾸는 실험이 경기 오산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민이 민원을 들고 시청을 찾아가 시장과 행정을 만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이 시민의 생활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이다. 행정동 주민들과 만나던 현장 소통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와 청소년, 청년, 소상공인 등 생활과 세대별 현장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용호 오산시장의 ‘찾아가는 이동시장실’이 있다. 조 시장이 22일 오산 아이드림센터에서 관내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마주 앉았다. 시장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크고 작은 불편부터 보육환경과 육아, 틈새돌봄, 교육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부모들이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듣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참석한 학부모는 18명이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겪은 불편과 필요한 지원 등을 제안했다. 오산시는 제시된 의견을 관련 부서와 공유하고 제도와 예산,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작은 간담회처럼 보이지만 오산시가 이 자리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따로 있다. 민선 9기 오산시가 내세운 ‘시민중심 행정’이 실제 행정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조용호 시장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밝힌 이동시장실의 방향은 명확하다. “시민이 시장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시민을 찾아가겠습니다.” 이 한 문장에는 이동시장실을 바라보는 조 시장의 행정 철학이 압축돼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 간담회나 현장 방문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단체장이 전통시장이나 복지시설, 공사현장 등을 방문하고 주민과 대화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문제는 현장 방문이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거나 주민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조 시장이 추진하는 이동시장실도 결국 같은 평가 기준 앞에 서게 된다. 몇 차례 현장을 찾았는지, 몇 명을 만났는지가 아니라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가 얼마나 행정에 반영되고 해결됐는지가 중요하다.
조 시장 역시 이동시장실을 민선 9기 핵심 소통 창구로 두고 있다. 지난 7월 중앙동을 시작으로 운영에 들어간 이동시장실은 각 행정동으로 확대됐다. 주민들은 교통과 주차, 보행환경, 안전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부터 지역의 중장기 발전 과제까지 시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단순히 민원을 접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은 담당 부서를 지정해 검토하고, 처리 과정과 결과를 관리하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행정동 중심의 이동시장실이 ‘지역’을 기준으로 시민을 만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생활 분야’와 ‘세대’를 중심으로 소통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어린이집 학부모와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느끼는 도시의 모습은 행정 통계만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부터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 갑작스럽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 보육시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 놀이·교육 공간 부족 등 부모가 체감하는 문제는 일상 곳곳에 흩어져 있다.
특히 보육정책은 부모의 근무 형태와 자녀 연령, 거주지역 등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 아이드림센터 이동시장실에서 주목되는 단어가 ‘틈새돌봄’이다.
기존 보육제도가 있음에도 부모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지방정부가 풀어야 할 생활밀착형 과제 가운데 하나다.
조 시장은 학부모들이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듣고 더 많이 소통해 시민의 말이 시정에 담기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학부모의 요구 가운데 지방정부가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있는 반면 예산과 제도 변경이 필요하거나 중앙정부·경기도 등 다른 기관과 협의해야 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장 소통의 성과를 높이려면 제기된 의견을 △즉시 처리할 사안 △부서 검토가 필요한 사안 △예산 반영이 필요한 사안 △중장기 검토 과제 △상급기관 협의가 필요한 사안 등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후속 체계가 필요하다.
시민이 의견을 냈는데 이후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없다면 현장 소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반대로 작은 건의라도 처리 과정과 결과를 시민에게 설명한다면 행정에 대한 신뢰는 달라질 수 있다.
오산시 이동시장실의 또 다른 특징은 소통 대상을 점차 세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는 그동안 8개 행정동을 순회하며 주민들의 생활불편과 지역 현안을 들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린이집 학부모를 시작으로 학생자치회 소속 청소년과 지역 청년 등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조 시장도 “지금은 각 동, 학부모님, 소상공인 등 분야별로 찾아가는 이동시장실을 열고 있다”며 분야별 이동시장실 일정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대상과 분야에 관계없이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역별 이동시장실과 분야별 이동시장실은 성격이 다르다. 동 단위 만남에서는 도로와 교통, 주차, 공원, 안전, 도시개발 등 특정 지역과 연관된 민원이 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학부모·청소년·청년·소상공인 등으로 대상을 구분하면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거, 창업, 골목상권 등 계층별로 체감하는 문제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이동시장실은 단순한 민원 청취 창구를 넘어 오산시의 정책 수요를 찾아내는 현장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오산시가 이동시장실과 함께 추진하는 ‘오산 희망지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시는 교통, 주거·도시환경, 청년·일자리, 보육·교육, 복지, 상권·지역경제, 문화·체육, 안전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시민 의견을 모아 지역별·분야별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동시장실에서 직접 들은 목소리와 설문 등을 통해 수집한 시민 요구를 함께 분석한다면 어느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령 특정 지역에서는 교통 문제가 집중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교육·보육시설 문제가 반복된다면 예산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청년층에서 일자리와 주거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학부모층에서는 돌봄과 교육 문제가 반복된다면 세대별 정책 수요 역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동시장실의 장기적인 성패는 ‘소통’을 ‘데이터’와 ‘정책’으로 어떻게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용호 시장이 내세운 민선 9기 시정 방향은 ‘시민과 함께 여는 성장도시 오산’이다. 성장의 범위도 넓다. 세교3지구 개발과 광역교통망 확충, AI·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굵직한 개발·경제 정책이 포함돼 있다.
GTX-C노선 오산 연장과 분당선 연장, 수원발 KTX 오산 정차 등 광역교통 현안도 오산의 중장기 성장과 연결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도시의 성장은 대형 개발사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지, 출퇴근이 편리한지, 청년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 소상공인이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지처럼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생활환경도 도시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번 학부모 이동시장실을 단순한 보육 간담회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거대한 도시계획과 부모 한 사람의 작은 불편은 서로 동떨어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현장행정에는 장점과 함께 분명한 과제도 있다. 우선 시장이 모든 민원을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행정에는 법률과 예산, 행정절차가 있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도 많다.
따라서 시장과 시민이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기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당장 하기 어려운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 현장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의 요구만 정책에 반영되지 않도록 참여 구조를 다양화할 필요도 있다. 직장 때문에 평일 간담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시민, 육아 때문에 외부 활동이 어려운 부모, 행정기관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청년 등도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현장 간담회와 온라인 의견 수렴, 설문조사 등을 함께 운영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다. “말씀을 잘 들었다”에서 끝나는 소통과 “말씀하신 내용을 이렇게 처리했다”고 답하는 행정은 전혀 다르다.
접수된 의견 가운데 어떤 내용이 정책에 반영됐는지, 어떤 내용은 검토 중인지, 반영하지 못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과정이 정착돼야 이동시장실도 제도적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민선 9기 출범 이후 조용호 시장이 강조해 온 것은 ‘현장’이다. 시민이 시장실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기보다 시장이 직접 시민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중앙동에서 출발한 이동시장실은 8개 동을 거쳐 이제 어린이집 학부모와 청소년, 청년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2일 아이드림센터에서 학부모들과 마주 앉은 장면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작은 불편, 보육환경에 대한 요구, 육아와 틈새돌봄 문제, 오산이라는 도시에 바라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시장에게 직접 전달됐다. 조 시장은 시민의 말이 시정에 온전히 담길 수 있도록 더 가까이 듣고 더 많이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시민들의 관심은 그다음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현장 소통 행정을 평가하는 가장 분명한 질문이다. 시민을 몇 번 만났는지보다 그 만남 이후 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민의 불편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중요하다.
학부모가 꺼낸 보육과 돌봄의 고민이 관련 부서의 검토를 거쳐 실제 정책과 예산으로 이어지고, 청년의 요구가 일자리와 주거 정책에 반영되며,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골목상권 정책 변화로 연결될 때 ‘찾아가는 이동시장실’은 비로소 이름에 걸맞은 의미를 갖게 된다.
시장실은 건물 안의 특정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행정이 답하는 곳이라면 어린이집도, 골목상권도, 청년들이 모인 공간도 시장실이 될 수 있다.
“시민이 시장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시민을 찾아가겠다”는 조용호 시장의 약속. 오산의 이동시장실이 단순한 현장 방문을 넘어 ‘시민의 말→행정 검토→정책·예산 반영→처리 결과 공개’로 이어지는 지방행정의 새로운 소통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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