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어둠이 내려앉은 화성행궁에 정조대왕의 행렬이 들어선다. 궁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예와 무용, 그리고 빛과 소리가 수백 년 전 역사의 공간을 오늘의 무대로 바꿔놓는다.
수원의 가을이 ‘역사’를 입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63회를 맞은 수원화성문화제가 단순히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지역축제를 넘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역사와 첨단 미디어, 야간 공연을 결합하는 복합 문화축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새롭게 선보이는 ‘행궁야화’를 비롯해 5일간으로 확대된 야간 군사훈련 ‘야조’, 용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상공연 ‘선유몽’ 등이 가을밤 수원화성을 무대로 관람객을 맞는다.
축제의 중심에는 정조대왕 능행차가 있다. 이번 능행차에는 1200여 명의 ‘시민 행렬’과 1000여 명 규모의 ‘왕의 행렬’이 함께한다. 역사 속 왕의 행차를 단순히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직접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구조다. 수원시는 이를 ‘K-컬처로드’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원 3대 가을 축제 프레스데이 소식을 전하면서 “어둠이 내려앉은 화성행궁에 정조대왕의 행렬이 들어서고, 무예와 무용, 빛과 소리가 밤의 궁궐을 아름답게 물들인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역사문화 자원을 오늘의 문화콘텐츠로 재구성하고 시민 참여를 확대해 수원의 가을 자체를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방향성이 읽힌다.
63회를 맞은 올해 수원화성문화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프로그램의 확장이다. 전통적인 역사문화축제가 과거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 수원화성문화제는 ‘밤’과 ‘빛’, ‘공연’,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 중심에 야간 콘텐츠가 있다. 지난 19일 시작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역사적 공간인 수원화성에 현대적인 빛과 영상 표현을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이 시장은 미디어아트의 ‘빛의 향연’에 시민들의 호응이 뜨겁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새롭게 선보이는 ‘행궁야화’가 가세한다. 화성행궁이 낮의 역사문화유산에서 밤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낮 시간 문화재를 둘러보고 떠나는 전통적인 관광 방식에서 벗어나 밤에도 사람들이 머물며 역사와 공연을 경험하도록 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축제의 시간대를 밤까지 확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운영 시간을 늘리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같은 공간도 낮과 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성곽과 행궁, 누각과 연못 등 역사적 건축물에 조명과 공연, 음악이 더해지면 관람객은 문화유산을 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수원화성이라는 역사적 공간 자체가 거대한 공연 무대가 되는 셈이다.
‘야조’도 올해 축제에서 눈여겨볼 프로그램이다. 야조는 야간 군사훈련을 소재로 한 콘텐츠다. 올해는 운영 기간이 5일간으로 확대됐다.
수원화성은 그 자체로 정조 시대의 정치·군사·도시적 의미가 집약된 공간이다. 따라서 군사훈련을 현대적인 공연 콘텐츠로 풀어내는 것은 수원화성이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관람객에게 역사를 설명문이나 전시물로 전달하는 것과 실제 인물과 움직임, 소리와 조명으로 보여주는 것은 체감도가 다르다. 특히 야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군사훈련이 갖는 긴장감과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수원화성문화제가 역사적 사실을 박제된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날 관람객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공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아름다운 용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상공연 ‘선유몽’도 수원의 가을밤을 장식한다. 공연장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원화성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공연의 배경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화유산 관광의 경쟁력은 결국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에서 나온다. 공연 자체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다른 도시에서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면 지역 관광콘텐츠로서의 차별성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용연이라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장소와 공연이 결합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그대로 복제하기 어려운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행궁야화와 야조, 선유몽을 각각의 프로그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수원화성의 밤’이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정조대왕 능행차가 될 전망이다. 능행차에는 1200여 명의 ‘시민 행렬’에 1000여 명의 ‘왕의 행렬’이 더해진다.
단순 합산하면 2200여 명 규모다. 숫자의 크기만큼 중요한 것은 구성이다. 1200여 명이 ‘시민 행렬’이라는 점 때문이다. 전문 공연단이나 행사 관계자들만 참여해 정조 시대 행렬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해 행렬을 완성한다.
지역축제에서 시민 참여는 축제의 성격을 바꾸는 핵심 요소다. 시민이 객석에서 공연을 바라보는 관람객에 머무는 것과 직접 행렬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참여자는 축제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 이 때문에 정조대왕 능행차의 1200여 명 시민 행렬은 올해 수원화성문화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수원의 역사적 자산을 행정기관이나 전문가만의 영역으로 두지 않고 시민과 함께 재현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1000여 명 규모의 ‘왕의 행렬’이 더해진다. 왕의 행렬과 시민 행렬이 결합하면서 정조대왕 능행차는 대규모 역사문화 퍼레이드로 완성된다. 수백 년 전의 행렬이 2026년 수원의 거리에서 다시 움직이는 것이다.
정조대왕 능행차가 갖는 강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 사건을 전시관이나 책 속에 가둬두지 않고 도시의 실제 공간으로 끌어낸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행렬을 따라 이동하면서 도시와 역사를 동시에 경험한다.
문화유산이 ‘찾아가서 보는 대상’이었다면 능행차는 역사문화 콘텐츠가 시민들이 생활하는 도시 공간으로 직접 들어오는 형태다. 이 시장이 이번 능행차를 ‘K-컬처로드’로 표현한 것도 이러한 확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한국 문화콘텐츠의 영역은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영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통문화와 역사, 음식, 지역축제와 문화유산 등으로 관심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역사문화 자산 역시 중요한 콘텐츠가 되고 있다.
수원은 이런 측면에서 분명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정조대왕이라는 역사적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에 능행차와 무예, 전통공연을 결합하고 다시 미디어아트와 야간관광 콘텐츠를 접목하는 방식은 수원의 역사적 자산을 현대적인 문화상품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K-컬처로드’라는 표현 역시 이 같은 방향성을 함축한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관람객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해 공개된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야간’이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부터 행궁야화, 야조, 선유몽까지 주요 프로그램 상당수가 밤의 수원화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관광도시에서 야간 콘텐츠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낮에 문화유산을 둘러본 관광객에게 밤까지 즐길거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의 역사적 경관에 빛과 소리, 공연을 더해 낮과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면 관광객 입장에서는 수원에 머물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다만 첨부자료에는 관광객 체류시간이나 숙박 증가, 소비 효과 등 구체적인 경제지표가 제시돼 있지 않아 실제 지역경제 효과를 수치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향후 수원화성문화제가 관광축제를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 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방문객 규모뿐 아니라 체류시간과 소비, 숙박 등 실질적인 효과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 역시 이를 직접 강조했다. 그리고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역사와 예술, 즐거움이 가득한 수원의 가을을 놓치지 마세요. 꼭 오셔서 직접 즐겨보시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수원 방문의 해’를 외부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관광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도시 관광의 경쟁은 결국 방문객에게 ‘왜 그 도시를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수원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문화유산이 있고 정조라는 분명한 역사적 서사가 있다. 문제는 이를 현대 관광객이 어떻게 경험하도록 만드느냐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는 이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야간 콘텐츠와 시민 참여, 대형 역사행렬, 미디어아트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축제가 오랫동안 안고 있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주민과의 관계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유명 공연자를 부르고 관광객을 모으는 방식만으로는 그 도시만의 정체성을 만들기 어렵다.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주목할 부분은 1200여 명의 시민이 정조대왕 능행차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거대한 역사행렬의 일부가 된다. 가족과 이웃이 행렬에 참여하고 또 다른 시민이 이를 바라보는 구조는 지역 공동체와 축제를 연결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6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축제가 앞으로도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시민 참여가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은 얼마나 화려한 공연을 한 차례 보여줬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민이 자신의 도시 축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도 중요하다.
수원화성문화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는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과거 문화유산 정책에서 ‘보존’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면 최근에는 보존을 전제로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축제 프로그램은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화성행궁과 수원화성, 용연 등을 단순한 관람 대상이 아니라 공연과 미디어아트가 펼쳐지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역사성과 공간적 매력을 살리고, 동시에 현대적인 문화콘텐츠를 결합하는 균형이 중요하다. 그 균형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내느냐가 향후 수원화성문화제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지역마다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그만큼 축제 간 경쟁도 치열하다. 비슷한 공연과 먹거리, 체험행사만으로는 관광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어려워졌다. 결국 지역축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축제를 보기 위해 그 도시까지 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수원화성문화제에는 그 답을 만들 수 있는 소재가 있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의 역사와 직접 연결돼 있다.
여기에 행궁야화와 야조, 선유몽, 미디어아트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낸다면 수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축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정조대왕 능행차에 참여하는 1200여 명 시민과 1000여 명 왕의 행렬은 ‘시민이 만드는 역사문화축제’라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 콘텐츠다.
수원화성문화제가 바라보는 곳은 과거지만 축제가 던지는 질문은 미래를 향한다. 역사도시는 수백 년 전의 유산만으로 관광객을 계속 불러들일 수 있을까. 문화유산을 지키면서도 젊은 세대와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역 주민은 축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수원을 찾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숙제가 붙었다.
올해 63회를 맞은 수원화성문화제는 이런 질문에 ‘야간 콘텐츠’와 ‘시민 참여’, ‘역사와 첨단기술의 결합’이라는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화성행궁에 다시 불이 켜진다. 정조대왕의 행렬이 들어서고 무예와 무용이 펼쳐진다. 용연에서는 공연이 이어지고 수원화성은 빛과 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1200여 명의 시민이 선다.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민이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63년을 이어온 수원화성문화제가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를 맞아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수원의 가을밤, 정조의 시간은 그렇게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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